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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은 캠퍼스로 들어가야 한다 ④

 


성운대사 지음
조은자 옮김


<지난 호에 이어서>


처음 제 의도는, 개교 첫해에 입학하는 학생에 한해 여기에서 4년 간 무료로 공부를 하게 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에도 모두들 개교하고 나서 4년 동안 남화대학에서 무료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제가 그럴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마지못해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초기 4년 동안 저는 학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학교에서는 다시 제게 “스님께 서 4년간 학비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해에 학생을 모집하면 매년 천 명 이상의 신입생이 들어올 것 같습니다. 4년이면 대략 6, 7천 명의 학비를 매년 면제해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한순간 저는 비참해졌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이 대학의 짐을 짊어지기도 버겁고, 계속해 나갈 힘도 제게는 없었습니다.
대학 설립 후 흡사 깊은 구덩이를 메우는 듯 끝이 없는 지출은 1인당 매월 백 원씩 도와주시는 ‘백만인흥학’ 운동이 있기에 가능했지, 저 혼자서는 수십억에 달하는 재무를 감당하기 버거웠을 것입니다. 설령 불광산의 모든 재물을 이 구덩이에 다 가져다 메운다 해도, 심지어 불광산을 빈털터리로 만들어도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광대학도 개교했고 이렇게 두 대학의 강의실·기숙사·운동장 등의 건설에 이미 수억 원을 지출한 것을 제외하고도 매년 두 대학의 경상경비 예산으로 수억 원 이상 들어갔습니다.
20년 동안 저는 두 대학을 위해 계속 노력했고, 불광산 역시 따라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진정으로 불교를 위해 대학을 설립했다는 이 기쁨은 지난날의 고난을 말끔히 잊게 해주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일을 이룬다’는 말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어려움에 직면하면 해결책을 생각해 내는 것이 관리입니다. 교육이 발전하려면 정책이 있어야 하고, 교육에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려면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 설립 초기 건학교육은 불관산을 ‘빈곤’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빈곤’은 불광산 제자들이 수행하는 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빈곤하기에 모두가 향상하고자 분발하고, 근면하게 노력하고, 나태하지 않고 정진하며, 높은 목표를 위해 힘쓰고, 발심하여 사람을 더욱 빛낼 것입니다. 빈곤하지 않으면 이러한 역량이 어디에서 생겨나겠습니까? 더구나 제가 제창한 ‘백만인흥학’ 운동에 수십만의 신도가 응답하여 매월 백 원씩 기부하여 메워준 덕분에 이렇게 평안하게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저도 학교의 교수들께 ‘백만인흥학’의 어려움과 고생을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고, 학생에게도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라 끊임없이 당부했습니다. 그리하여 남화대학은 ‘혜도중류慧道中流’의 건학이념을 수립하였고, 불광대학은 ‘의정도자義正道慈’의 건학이념을 수립하여 도덕군자·성현·사대부를 길러내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모두가 이 일필자一筆字로 저를 도와 ‘공익신탁교육기금公益信託教育基金’을 설립해 주어 늙고 몸도 불편한 제가 여전히 ‘일필자’로 모두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대학 발전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며, 이런 것들은 또한 관리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어느 단체이든 사람이나 처세에 있어 관리상 모두 방침을 정해야 하고, 모두가 서로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이해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공생공영共生共榮’이야말로 적은 노력으로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성취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총장 인선에 대해서는 매우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건학 경험이 풍부한 성공대학의 전 총장 옹정의翁政義선생을 초청했고, 그가 퇴직한 뒤에는 다시 불광대학 총장을 맡겼습니다.
또한 사랑이 가득하고 낙관적이고 적극적이시며, 교육에 대한 이념도 있고 담력도 있으신 전 교육부장 양조상楊朝祥 선생에게 청해 불광대학 총장을 맡겼습니다.
그 후에도 교육부 차장을 지낸 임총명林聰明선생을 적극 초빙하여 남화대학 총장을 맡겼습니다.
유망하고 사상적으로 뚜렷한 주장을 가지신 많은 총장들과 교수진의 협조 아래, 출생률이 점점 줄어드는 저출산 사회 속에서도 드디어 매 학기마다 저는 두 대학에 들려오는 “신입생 정원이 꽉 찼습니다.”라는 희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비록 건학 과정은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저들의 진지한 건학 노력 덕분에 저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위로를 느꼈으며, 또한 불교를 대신해서 광영을 느꼈습니다.


해외 건학


타이완에서 불광대학과 남화대학을 세운 뒤, 처음으로 세운 분별원은 미국의 서래사西來寺입니다. 서래사 건설 초기, 우리는 많은 교실을 준비해 외국의 청년과 아동들이 중화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곳이 되길 희망하는 뜻에서 ‘중화학교’라고 지었습니다.
당시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박사과정까지 밟은 장유주 張幼珠라고 하는 한 젊은 여성 불자가 있었는데, 제게 거듭 ‘서래대학’을 건립해도 좋지 않겠냐며 권선하였습니다.
저는 ‘불교를 위해 발심하여 발 벗고 나서는 이런 인재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자장 스님과 자혜 스님에게 서래대학 건설에 착수하게 했으며, 처음에는 미국의 서래사에 대학을 세웠습니다. 나중에 로스앤젤레스 로즈미드에서 저 멀리 샌가브리엘 산맥(San Gabriel Mountains)이 보이는 곳의 성경학교를 우리에게 양도한다는 천주교 교회의 동의를 얻어 우리는 서래대학을 정식 교육부지로 옮기고 1990년 ‘서래대학’이라 명명했습니다.
제가 해외에 대학을 설립하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과거 천주교와 기독교는 동방에 와서 보인대학, 성요한대학, 금릉대학 등과 같은 많은 교회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이라고 미국에 대학을 설립하지 못하란 법이 없습니다. 받았는데 돌려주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저는 중국인을 위해 분발해야겠다는 뜻을 세웠습니다.
물론 미국에서 대학을 세우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사람은 많습니다만 많은 사람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 중도에 포기하거나 무르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관리에 있어 저의 가장 기본 관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서래대학은 수년이 걸려 드디어 미국 정부의 인가를 득하고 I-20 신청을 받아 국제적으로 학생을 모집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후 또 WASC(미국서구지역 대학연맹)의 인증을 통과하여 그 일원이 되었습니다. 학생에게는 매우 커다란 보장이 생긴 것입니다. 이 20년 동안 정부와 오가며 대처하느라 시간을 소비하긴 했어도, 오늘날 서래대학은 중국인이 미국에 설립한 유일하고도 세계가 인정한 대학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