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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수행 공덕의 출발점입니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통도사 화엄산림 법회에서 『화엄경』 「정행품」과 「현수품」을 법문한 바 있습니다. 그 「현수품」을 다시 정리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현수품」은 문수보살이 현수보살에게, 현수보살이 그 물음에 답하는 『화엄경』입니다. 문수보살의 질문에 현수보살이 357게송으로 답 하시는데, 그 핵심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화엄경』은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迴向, 십지十地, 등각等覺, 묘각妙覺,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에 이르는 53지위를 설명합니다.
이 모든 수행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를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습니다.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元功德母”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다.
믿음은 믿는다는 생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은 수행을 일으키고 지속하게 하는 근본 바탕이 바로 믿음입니다.
출가하여 60여 년을 살아오며, 자연스레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열다섯에 출가했습니다. 흔히 동진 출가라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출가했지만, 살아가며 다양한 인연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군시절의 인연입니다. 맑은 공기 속에 오래 있으면 그 맑음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탁한 공기 속에 있어 보면 그 소중함을 절실히 알게 됩니다. 저 역시 군 생활을 하면서 불교의 사찰이 얼마나 소중하고 그리운 곳인지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입대 후 훈련소 생활은 전북 전주시 덕진구에 있던 35사단에서 있었습니다.
훈련병으로 모범을 보여 퇴소식에서 사단장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전방부대에 배치되고, 당시 불교 활동은 전혀 없었고, 종교 활동은 기독교만 있었습니다. 자대 배치 후, 한 달 이상 하루도 빠짐없이 기독교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찬송가도 함께 부르고, 기도 시간에는 눈을 감고 함께 자리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중대장실로 불려갔습니다. 중대장이 “스님이라면서 왜 매일 기독교 활동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불교가 한국식이고 동양식이라면, 기독교는 서양식입니다. 한국 음식이 없으면 서양 음식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중대장은 무척 반가워하며, 전 중대원을 모아 불교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눈을 감고, 서로 눈치 보지 말고 손을 들어 보십시오. 불교를 믿고 있거나 알고 싶거나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따로 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
눈을 감고 손을 들게 하니, 중대원의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책을 모으고, 여러 스님들께 연락하여 불교 서적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총무원에도 찾아가 책을 받아 오고, 양손 가득 들고 부대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작은 도서관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를 돌봐주셨던 스님께 부탁하여 광목천을 구해 태권도 도복을 만들어 중대원들에게 입히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한 중대가 불교와 인연을 맺고 불교중대가 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연대장님이 연대 본부에 사찰을 세워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여러 사찰에서 지원을 받아서 부처님을 모시고 법당을 세웠습니다. 호국 황룡사입니다. 사단에서도 사찰을 세우게 되었는데, 그 절이 호국 일월사입니다.
그때 작은 인연의 씨앗이 오늘의 정우를 있게 한 인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의 출발점은 결국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은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모든 선법善法을 자라나게 하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불안과 강박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물 흐르듯 순리에 맡길 수 있습니다. 늘 공식적으로는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절에서는 소원등을 달고 불사를 권하기도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불자들에게 직접 시주를 권한 적은 없습니다. 어린 시절 교회에 다녔을 때, 헌금 바구니가 돌아올 때 헌금 낼 돈이 없어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구룡사에서 운영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여러 곳 있지만, 원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님을 보면 합장하고 인사하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훗날 그 아이들이 자라서 스스로 종교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모든 선법을 길러내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의심이 사라지고, 집착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길이 열립니다.
그래서 믿음을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맹목적인 추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의 때가 사라진 맑고 밝은 상태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마음이 청정해지면 지혜는 저절로 드러납니다. 마치 구름이 걷히면 달빛과 별빛이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유혹과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현수품」에는 또 이런 비유도 있습니다.
“눈먼 사람이 등불을 들고 서 있는 것과 같다.”
등불이 아무리 밝아도 눈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부처님의 법을 듣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법은 밝은 등불이지만, 믿음이라는 눈, 안목이 없으면 그 빛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배로운 손과 같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부처님의 공덕과 지혜를 삶 속에서 직접 길어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늘 말씀드리는 또 하나가 있습니다. “3초의 여유를 가지십시오.”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었다고 바로 뛰어들지 말고 잠시 멈추어 주위를 살피고 건너가세요. 서두르다 보면 사고를 당하기 쉽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급한 것만은 아닙니다. 믿음이란 바깥의 어떤 존재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불성, 곧 깨달음의 빛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수행이며, 보리심입니다. 이 믿음이 굳건해지면 걸림 없는 변재를 얻어 중생에게 법을 설할 수 있게 되고,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제도하게 됩니다. 그때에 비로소 대자대비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육바라밀이든 십바라밀이든 모든 수행은 믿음 위에서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특히 보시바라밀을 행할 때 큰 환희가 일어납니다. 주었다는 생각도 없이,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없는 보시하는, 그것이 참된 보시입니다.
저 역시 인연이 닿는 곳이라면 작은 보시라도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필리핀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한 선교사로부터 보내온 현지의 어려운 사정을 담은 사진을 보고, 그 선교사님의 힘든 상황을 알게 되어 작년과 올해 3천만 원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인연을 함께하는 것 또한 보시의 실천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환희지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입니다.
믿음에서 수행이 시작되고, 믿음에서 보리심이 일어나며, 믿음에서 깨달음의 길이 열립니다.
우리 모두 마음의 때를 씻어내고 맑은 믿음을 지녀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삶 속에서 온전히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