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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 공양을 올리며

안현숙
소설가


사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 올수록 연등을 만드는 보살님들의 손길이 무척이나 바빠 보인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한 장, 한 장 연잎을 비벼 정성스레 이어 붙이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꽃도 피어나,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연잎과 버무려져 연꽃으로 예쁘게 피어난다. 연등을 만들고 있는 보살님들의 얼굴도 하나 같이 활짝 핀 연꽃처럼 곱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월 초파일이 되기 두어 달 전 부터 보살님들은 조를 짜 절에 와서 갖가지 봉사를 한다.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탐진치로 가득 찬 어리석은 마음에 깨달음을 얻게 해 주신 마음의 스승 부처님이 탄생하신 날을 봉축하기 위하여 불자들은 있는 힘껏 마음을 낸다.

이런 봉사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하나의 보살행이 아닐까 싶다. 하나하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알게 해 주신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겐 그저 고맙기만 하다.
나는 석가탄신일인 사월 초파일이 한 해의 중간 무더운 여름도 아니고 한 해의 끝 추운 겨울도 아닌, 따뜻한 날씨와 화창한 햇빛,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는 것에도 의미를 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해 첫날이 되면 지난해의 일들을 되돌아보며 미진했던 부분을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새해를 맞이하듯이, 나는 활기찬 봄날,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연등을 내걸고 어둠을 밝히면서 새해 첫날 다짐했던 마음을 다시 한 번 가다듬어 앞으로의 생활을 더욱 알차게 하리라 마음먹는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불자이기를 바라고 더불어 내 마음의 어리석음도 환한 연등 불빛에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아마 불자들이라면 모두 나와 같은 마음들이리라…….

나는 가끔 법당에 홀로 앉아 부처님을 한참 동안이나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있다.
마음에 화가 차서 도저히 편안해지지 않거나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고통스러울 때 부처님을 쳐다보며 혼자 속으로 묻고 대답한다.
그렇게 한참을 묻고 대답하다 보면 어느 틈에 스르르 마음이 풀리고 문제도 해결된다.

‘일체유심조’,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느 순간 생각나고, 그러면 또 혼자 묻고 대답하는 사이에 내 자신의 어리석음과 풀리지 않던 화들이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그것이 부처님의 힘이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나는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삼배를 올리고 법당 문을 나선다. 부처님은 내 등 뒤에서 그런 내게 은은한 미소를 보내고 계시겠지…….

그래서 내게는 부처님이 아주 좋은 약이다. 부처님을 바라보며 묻고 대답하는 그 순간에 극락과 지옥이 한 마음 안에 있고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수도 있다는 것을 부처님이 내게 깨우쳐 주시기 때문이다. 잊어버리기도 잘하는 약이지만 찾기도 잘 하는 약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혼자서는 좋은 일에 행복한 기분으로 부처님을 찾아 뵙던 횟수보다 그렇지 못한 일에 부처님을 더 많이 찾아뵌 것 같아 그것도 민망하다. 앞으론 좋은 일에도 자주 찾아뵙고 말씀드려야겠다.

절에 와서 부처님을 뵙다 보면 가끔은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피해 갈 수 없는 생로병사의 고뇌를 가지고 우리에게 무엇을 깨우쳐 주려고 하셨던 걸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좁은 소견으로는 우리 모두를 같이 잘 살게 하려고 그러셨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르게 잘 사는 것!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고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데,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는 상호간에 시비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인데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욕심이 있고 또 제 잘난 맛에 살기도 하는 세상인데, 양보하는 삶, 자비를 베푸는 삶이 결코 쉬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바르게 잘 사는 법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부처님께서는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사상으로 혼자만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행 복해지도록 열심히 기도하고 자비를 베풀며 모든 사람을 내 몸 같이 위해 주는 그런 삶을 살도록 가르치신 것 같다.
내가 처음 절을 찾은 것은 친구를 따라서였다. 우연찮게 친구를 따라 절에 와서 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는데, 그날 스님의 법문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불법은커녕 불경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때 그 스님의 법문이 내게는 단비와 같았다.
‘좋은 말씀이구나. 그래, 나도 불교 공부를 좀 해보자.’
그렇게 시작한 불교 공부였지만 아직도‘상구보리하화중생,’위로는 깨달음을 얻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건 별로 없고 그저 때가 되면 알게 되려니 왔다 갔다 하면서 귀동냥, 눈동냥, 입동냥만 하고 다닌다.
스님 말씀에 불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
살아가는 모든 일이 다 불법이라고 했지. 오늘 하루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한 방법이라고 했으니 그저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뿐이다.

부처님오신날은 축제의 날이다.
탐진치에 물들어 불성이 있는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고 어리석음 속에 욕심 가득 안고 괴로움에 빠져 사는 미욱한 중생들에게 밝은 빛을 비추어 깨달음의 길로 인도해 주기 위해서 2천 6백 년 전에 우리에게 오신 부처님을 기리는 축제의 날이다. 그런 날,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연등이 하나 둘, 축제와 더불어 환히 밝혀지는 것을 보는 것은 감동이다. 한 등, 한 등 조심스런 손길로 불을 붙이며 환희심에 가득 차서 행복해 하는 불자들의 연꽃 같이 환한 얼굴을 보는 것 또한 감동이다.

어둠을 밝히는 불빛을 보며 부처님 제자 된 것을 기뻐하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기를 서원하는 불자들의 앞날에 꺼지지 않는 등불 하나 함께하기를 기원해 본다. 더불어 내 마음의 어리석음과 무명도 불빛에 어서 빨리 사라지기를 함께 기원한다.
어둠을 밝히는 불빛을 보며 부처님 제자 된 것을 기뻐하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기를 서원하는 불자들의 앞날에 꺼지지 않는 등불 하나 함께하기를 기원해 본다. 더불어 내 마음의 어리석음과 무명도 불빛에 어 서 빨리 사라지기를 함께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