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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깨달음

이중표
전남대 철학과


월간 [붓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달부터 4개월 동안 여러분과 함께 12연기설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편집인의 청탁은 이전에 조준호 선생님께서 4개월 동안 12연기의 무명, 행, 식, 명색 네 가지 지분에 대한 설명을 했으니 저에게 그 다음의 네 지분, 즉 6입, 촉, 수, 애에 대하여 설명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일단 원고 청탁에 승낙은 했으나 그런 식으로 12연기설을 살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12연기설의 의미는 12개의 지분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상호간의 구조와 작용에 있습니다.
따라서 각각의 개념을 하나씩 분리하여 설명을 하는 것은 사전을 찾아보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12연기설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으로서 그 의미가 매우 심오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석이 수없이 많습니다. 12연기에 대하여 저는 저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기회에 저에게 주어진 네 가지 개념을 설명하기보다는 경전의 말씀을 토대로 제 나름의 이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달에는 앞으로 우리가 12연기설을 이해할 때 참고할 경전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래에 인용한 경전은 『쌍윳따 니까야』에 실린 것으로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과정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과거에 내가 정각을 성취하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실로 이 세간은 고난에 빠져있다. (이 세간은) 태어나고, 늙어지고, 죽고, 쇠락하고, 다시 태어고 있지만,
늙고 죽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르고 있다. 실로 언제쯤이나 늙고 죽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게 될까?”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무엇이 있기에 늙어 죽음(老死)이 있는 것 일까? 늙어 죽음은 무엇에 의존하는 것일까?”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반야에 의해 이치에 합당한 분명한 이해가 생겼다.
“태어남(生)이 있는 곳에 늙어 죽음이 있다. 늙어 죽음은 태어남에 의존한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무엇이 있기에 태어남이 있는 것일까?”…
“… 유(有)가 있는 것일까?”…“… 취(取)가 있는 것일까?”…“… 애(愛)가 있는 것일까?”…“… 수(受)가 있
는 것일까?”…“… 촉(觸)이 있는 것일까?”…“… 육입(六入)이 있는 것일까?”…“… 명색(名色)이 있는 것일까? 명색은 무엇에 의존하는 것일까?”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반야에 의해 이치에 합당한 분명한 이해가 생겼다.
“식(識)이 있는 곳에 명색(名色)이 있다. 명색은 식에 의존한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무엇이 있기에 식이 있는 것일까? 식은 무엇에 의존하는 것일까?”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반야에 의해 이치에 합당한 분명한 이해가 생겼다.
“명색이 있는 곳에 식이 있다. 식은 명색에 의존한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식은 명색으로 되돌아가 그 이상 가지 못한다.”
“이제까지 늙게 되거나, 태어나게 되거나, 죽게 되거나, 쇠락하게 되거나,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명색에 의존하고 있는 이 식이다. 식을 의지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의지하여 육입(六入)이 있으며, 육입을 의지하여 촉(觸)이 있고 … 이와 같이 오로지 괴로움인 온(蘊)의 집(集)이 있다.”
“집(集)이다! 집(集)이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와 같이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法)에 대한 안목이 생기고, 지식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광명이 생기고, 통찰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없으면 늙어 죽음이 없을까? 무엇이 소멸하면 늙어 죽음이 소멸할까?”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반야에 의해 이치에 합당한 분명한 이해가 생겼다.
“태어남이 없으면 늙어 죽음이 없다.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어 죽음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없으면 태어남이 없을까? … 유(有)가 없을까? … 취(取)가 없을까? … 애(愛)가 없을까? … 수(受)
가 없을까? … 촉(觸)이 없을까? … 육입(六入)이 없을까? … 명색(名色)이 없을까? 무엇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할까?”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반야에 의해 이치에 합당한 분명한 이해가 생겼다.
“식이 없으면 명색이 없다. 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없으면 식이 없을까? 무엇이 소멸하면 식이 소멸할까?”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반야에 의해 이치에 합당한 분명한 이해가 생겼다.
“명색이 없으면 식이 없다. 명색이 소멸하면 식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그때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나는 깨달음의 길을 성취했다. 그것은 명색이 소멸하면 식이 소멸하고, 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며, 명색이 소멸하면 육입이 소멸하고, 육입이 소멸하면 촉이 소멸하며, … 이와 같이 오로지 괴로움인 온의 멸(滅)이 있다는 것이다.”
“멸(滅)이다! 멸이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이와 같이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法)에 대한 안목이 생기고, 지식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광명이 생기고, 통찰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산기슭 숲속을 거닐다가 옛길을, 옛날 사람들이 다니던 오래된 지름길을 발견한 것과 같다. …

비구들이여, 나도 실로 그와 같이 옛길을, 옛날의 정각을 성취한 분들이 따라간 오래된 지름길을 보았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그 옛길, 옛날의 정각을 성취한 분들이 따라간 오래된 지름길인가? 그것은 성스러운 팔정도, 즉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 이다.」

이 경전을 통해 우리는 부처님의 깨달음이 4성제이며, 그 4성제를 이루고 있는 내용이 12연기와 8정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12연기는 사성제의 구조속에서 8정도와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다음달에는 이 경전을 중심으로 12연기 4성제 팔정도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