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주
조계종 총무원 주임
서울 정릉 봉국사 앞 내부순환로는 쉴 새 없이 오가는 차들로 붐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시간표를 좇아 사람들은 헐떡거리는 숨을 뒤로 하고 도로 위를 뛰고 또 달린다.
그런데 도로에서 ‘한 생각’만 돌리면 마주하게 되는 봉국사는 전혀 딴 세상이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니 고요함만 가득하다. 천왕문(天王門)에는 ‘신광불매만고휘유 입차문내막존지해(神光不昧萬古輝猷 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쓴 주련이 걸려있다. ‘(부처님의) 신비스러운 빛은 어둡지 않아서 오랫동안 빛나도다. 이 문안에 들어 올 때는 알음알이를 두지 마라.’ 어줍지 않은 지식은 집어치우고 참 나를 찾으라는 부처님의 채찍질이다.
봉국사(奉國寺)는 1395년 무학대사가 세운 사찰로, 창건 당시에는 약사불을 모시고 약사사(藥師寺)라 불렀다. 태조의 두번째 비 신덕왕후(神德王后)를 모신 정릉의 원찰이기도 하며, 나라를 받드는 절이라는 뜻으로 봉국사라 하였다고 한다. 십 수 년째 봉국사에서 주석하고 있는 천호월서(千湖月棲) 대종사는 도심사찰 한 가운데서 세상사를 살핀다.
봉국사 염화실(拈花室)에서 만난 월서스님은 호탕한 웃음만큼이나 시원시원하게 수행과정을 설명했다.  
-큰스님의 출가인연이 궁금합니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지리산 공비토벌에 참가했습니다. 7~8개월 정도 참전했는데, 당시 유격대에 선발돼 들어갔습니다. 무수히 많은 전투를 치렀습니다. 유격대는 30명으로 구성됐는데, 일주일 지나면 2~3명씩 숫자가 줄어들 정도로 엄청난 격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유격대에서 보초를 서다가 북한 인민군에 생포되기도 했는데, 간신히 도주해서 살아났습니다. 전쟁을 치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남원 실상사 신도인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습니다. 그때 실상사 약수암에서 금오스님을 만났습니다. 엄청난 카리스마가 느껴졌습니다. 1개월 후에 금오스님이 화엄사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화엄사로 가서 출가했습니다.”
-스님께서도 정화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일화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화가 한창 진행될 때는 정말 치열했습니다. 수백 명이 한자리에서 육탄전을 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몸집이 좋은 저는 항상 선두에 섰습니다.
화엄사, 동화사, 법주사, 금산사 등에서 벌였던 정화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화가 오늘날 한국불교에 던지는 화두가 있을까요?
“정화를 거친 후 한국불교는 질적, 양적으로 많은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특히 매 안거 때마다 100개가 넘는 선원에서 2200명 이상이 정진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수행하는 스님들이 늘었습니다. 물론 일부스님들이 계율을 소홀히 하는 등 일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질서가 잡혔다고 생각합니다. 정화 당시에는 스님들이 승가교육 정상화와 불교방송, 불교병원 설립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했고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오늘날 일정부분 이것들이 가능해졌습니다. 1994년 개혁이후 불교의 위상은 많이 올라갔습니다. 그런 만큼 앞으로는 더 잘해야 합니다. 스님들은 청정해야 하고, 계율을 철저히 지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깨달음은 확철대오(廓徹大悟·철저하게 크게 깨달음)와 같은 큰 깨달음이 아니더라도 열심히 하면 점차적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동이 트면 해가 떠서 점점 밝아지듯이 깨달음의 문도 조금씩 열어 갈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바로 얻을 수 없어도 계속해서 열심히 정진하면 무엇인가 맑아지는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공부에 대한 이해가 되고 많이 진전된 경험을 할 것입니다.” 스님은 “나는 구경각을 얻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공부를 할수록 점점 더 힘을 얻는다”고 전했다.
-어떤 화두로 공부를 하셨나요?
“처음에는 금오스님께 받은 ‘이뭣고’를 들었습니다. 금오스님은 제가 참선하고 있으면 ‘월서야 들고 있느냐? 놓치고 있느냐? 놓치면 죽은 사람이다’고 경책해 주셨습니다. ‘이뭣고’를 들고 정진을 하다가 성철스님께 ‘마삼근’을 받고 계속 정진하고 있습니다.”
1990년 스님은 중앙종회의장 소임을 내려놓고 해인사 선원을 찾아가 하안거 방부를 들였다. 월서스님은 평소 성철스님 밑에서 꼭 한 철을 나고 싶었는데, ‘이때가 아니면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 해인사로 향했다. 
월서스님은 화두를 받기 위해 성철스님이 있는 퇴설당으로 찾아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성철스님은 “월서라고 예외는 아니지”라고 했다. 당시 성철스님에게 화두를 받으려면 3000배를 하는 것이 통례였으므로, 3000배를 하고 오라는 뜻이었다. 월서 스님은 신음소리를 삼키며 퇴설당을 빠져나왔다.
“안거를 보내며 3000배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화두 안 받으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에 때려치울까 하다가, 며칠이 걸리더라도 꼭 하고 말겠다는 오기가 발동하더군요.” 월서스님은 점심공양 시간을 쪼개 장경각에서 하루 1000배씩 절을 했다. 찜통더위 속에 셋째 날 3000배를 모두 마치자 가사 장삼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스님은 일주일 후 당당히 다시 퇴설당을 찾았다. 그런데 성철스님이 건네준 화두는 여러 가지 화두를 카피한 종이 가운데 ‘마삼근(麻三斤)’이라고 적힌 쪽지 한 장이었다. 섭섭한 마음이 없을 수 없었다. 그래도  ‘화두 참구가 공부의 길’임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월서스님은 “은사 스님의 뜻을 따라 젊을 적부터 화두를 놓지 않기 위해 정진해왔는데 화두는 너무 공공(空空)하면 무기(無記)와 수마(睡魔)에 빠지고 너무 성성(惺惺)만 하면 번뇌 망상에 젖게 되니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해서 적적중(寂寂中)에는 무기(無記)를, 성성중(惺惺中)에는 번뇌 망상을 없게 하여 성정적적하게 함이 진실한 화두법”이라고 강조했다.
-부처님은 누구이고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부처님은 완전히 깨달은 분입니다. 보물이 있어도 어두운 곳에서는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보물을 찾게 해주는 등불과 같은 존재(譬如暗中寶 無燈不可見)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행하면 항상 밝음이 올 것입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들자면 첫째 이고득락(離苦得樂), 즉 일체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행복을 성취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전미개오(轉迷開悟), 즉 미혹으로부터 깨달음을 열어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셋째 혁범성성(革凡成聖), 즉 모든 중생을 부처로, 모든 범부를 성인으로 만들고자 오셨습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은혜는 실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수행합니다. 행복은 무엇입니까?
“행(幸), 불행(不幸)은 손바닥과 손등과 같은 것입니다. 마음을 잘 쓰면 행복이고 끝도 없는 욕심을 부리면 불행(不幸)입니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만족하며 살면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것입니다.”
월서스님은 “행복은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비우고 내려놓으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선(禪)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정신을 북돋아 주고 심근을 튼튼하게 하며, 마음의 번뇌 등 병적인 요인을 제거하고 진리적 생활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불교의 선이 가장 효과적이며 지름길인 동시에 물질보다 정신적으로 양식이 고갈상태에 있는 현대인에게 보급할 만한 정신요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독서삼매라는 말과 같이 책과 나, 다시 말하면 객관 세계와 나 사이의 평등관계를 유지시켜주며 내면세계를 정화하고 안정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현대의학에서도 많은 병들이 마음에서 나타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불교에서는 객관 세계와 평등한 관계를 유지한 가운데에도 마음이 주체가 되며 모든 것을 좌우하기 때문에 특히 의식과 같은 마음을 통하여 번뇌를 정화하고 안정시키는 수행을 권하고 있습니다. 선의 효과를 과소평가할지 모르지만 정신치료는 물리적이고 일시적인 약물치료보다도 영원한 치료이며 쇠약한 정신을 건강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확신합니다.” 
-스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좌우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심여벽해능용물 인사청연염불진(心如碧海能容物 人似靑蓮不染塵)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은 푸른 바다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인품은 연꽃처럼 티끌에도 더렵혀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마음을 잘 쓰기 바랍니다.”
스님은 자리를 정리하는 일행에게 <금강경>에 나오는 한 구절을 들려줬다. 죽밀불방류수과 산고기애백운비(竹密不防流水過 山高豈碍白雲飛), 즉 ‘대나무가 아무리 빽빽하다 해도 물 흘러가는 것을 막지 못하고 산이 아무리 높아도 흰 구름 나르는 것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스님은 삼각산 봉국사에서 흐르는 물, 흰 구름 같은 ‘운수납자’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