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상인 참선법문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보통 사람은 한 곳에 앉아있더라도 마음은 떠나있다. 마음이 어디로 갔는가. 망상하며 떠돌고 있다. 홀연히 동으로 갔다가 서로 갔다가 남으로 북으로 가기도 한다.
붓다는 모든 중생이 지혜와 덕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지혜는 어디로 간 것인가. 지혜가 없는 것은 마음이 도처로 뛰어다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이 하루하루 늙어가는 것도 마음이 분주히 날뛰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유하자면 새 차를 타고 함부로 차를 모니 기름도 많이 사용하게 되며, 또한 낭비하게 되어 결국에는 차가 고장 나고 망가지게 된다. 사람의 몸도 이같은 원리여서 만약 신체를 잘 관리하지 못하고 아무 데나 달리다 보면 반드시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이 기름인가? 바로 귀중한 정신이다. 만약 자기의 정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도처로 달린다면, 아무리 많은 보약을 먹어도 잃어버린 정신을 보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선을 하는 이유를 이처럼 간단명료하게 설명을 해준 이는 선화상인(1918~95) 이다. 법명은 안자, 자는 도륜으로 중국 위앙종의 제9 대 법손이다. 1949 년 홍콩으로 건너가 선종, 교종, 율종, 밀종, 정토종의 다섯 종파를 고루 선양해 문화사찰을 건립한 인물이다.
그는 1956 년 허운 선사로부터 중국 위앙종의 법을 이어받고, 선화라는 법호를 받았다. 1962 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 불교학당을 설립해 불법을 전했다.
그의 참선법문인 <허공을 타파하여 마음을 밝히다>(불광출판사펴냄)는 번뇌를 날리는 청풍을 부르는 주문과도 같다.
화두를 참구해 한 경계를 얻는 것을 이처럼 쉽게 설명해놓은 법문은 전무후무할 정도다.
“참구하는 것은 마치 하나의 송곳으로 구멍을 뚫는 것과 같아서 다 뚫지 못하면 반드시 계속 뚫어야 한다. 다 뚫으면 이것을 일러 본참의 공안을 타파했다고 한다. 이 구멍을 뚫으면 광명이 드러난다. 이 암흑의 방에 아무런 창문도 없는데 송곳을 이용해 구멍을 뚫으면, 이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것이다. 당신이 어리석을 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창문도 없는 캄캄한 방안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당신이 참선 공부를 통해 구멍을 내면 그 방안으로 광명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선이다.”
명쾌하다. 그의 스승 허운대사의 참선 법문에 대해 또한번 번뇌를 자르는 취모검의 등장이다.
허운대사는 “우리들은 무량겁 이래로 생사에 미혹하여 윤회하면서 오염됨이 너무 오래되어 당장에 망상을 벗어 본성을 실제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참선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참선의 선결조건은 바로 망상을 제거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망상제거법은무엇인가. 그는 “쉬면 바로 보리(깨달음)’라고말한다. 모든 인연을 쉬는 것, 즉 모든인연을 놓는 것이 바로 망상을 쉬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몸의 고통과즐거움, 배고픔과 배부름, 영욕과 생사, 길흉화복, 얻음과 잃음, 편안함과 위험재가자들 참선 등을 모두 한쪽으로 놓아두고 도외시해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망상은 저절로 소멸되며, 분별이 일어나지 않고, 집착을 멀리 떠날 수 있어 일념불생一念不生의 경지에 이르러 자성의 광명이 빛나, 전체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모든 인연을 놓을 수 있을까. 상근기의 사람은 한 생각이 영원히 쉬면서 바로 무생無生에 이르러 문득 보리(깨달음)를 증득하니 더 말할 것이 없다고 한다. 그 다음은 이치를 깨닫고 나서 습기와 집착을제거하며, 자성이 본래 청정하다는 것을 알고, 번뇌와 보리, 생사와 열반이 모두 헛된 이름이라는 것을 알며, 원래 나의 자성과는 상관이 없음을 알며, 사물마다 모두 꿈이고 환상이며 거품이고 그림자라는 것을 알며, 나의 이 사대육신과 산하대지는 자성 가운데서 마치 바다의 물거품과 같이 일어났다 가라앉으면서 본체에는 아무런 장애를 주지 못함을 아는 것이 쉼의 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 참선으로 인해 우리는 어떤 공덕을 얻게 되는 것인가. 참선을 해 깨달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집착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를 목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에 대해 허운 선사의 제자 선화상인은 ‘ 마음에 시시각각 생각의 파도가 일지 않고, 번뇌가 없으며, 시비가 없고, 남도 없고 나도 없으면, 좌선의 효과를 얻는 것’ 이라면서 그 때 회광반조해 자기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1 . 나는 여전히 좌선하기 전과 같이 입이 게걸스러운가?
2 . 이전과 같이 헛된 부귀영화를 부러워하는가?
3 . 바르지 못한 습관이나 잘못을 바로 잡지 못하였는가?
4 . 불합리하고 여의치 못한 일을 만나면 아직 번뇌를 내는가?
이런 질문에 만약 ‘ 그렇다’ 는 답이 나오면 좌선을 해 아직 어떤 진보도 없는 상태라는 것이라고 한다.
선화상인은 이 책에서 좌선에 대한 궁금증을 일문일답으로 풀어준다. ‘ 좌선을 할 때 마음 속에서 무엇을 관상觀想해야 하느냐’ 는 물음에 ‘ 마땅히 머무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관상해야 할 일정한 곳은 없다’고 한다. 만약 대상이 있게 되면 그것에 머물게 되는데, 머무르는 바가 없이,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경계하는 것이 있다. 한 곳에 주의를 두면서 좋고 나쁨을 생각하게 되면 모두가 집착이라는 것이다. 수행은 바로 집착하는 바가 없어야 하며, 아무런 집착도 없어야 자신의 몸도 잊게 된다고 한다. 몸도 없는데 다시 집착할 무엇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결가부좌가 주는 수승한 공덕을 다양한 예화를 들어 설명해주면서도 정신적으로도 좌선의 방법을 명확히 해준다.
좌선의 기본적인 방법은 첫째 탐하지 않으며, 둘째 성내지 않으며, 셋째 어리석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가장 우선적인 공부는 바로 마음을 맑게 하고(淸心) 욕심을 적게하는 것(寡欲)이라고 한다.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은 바로 망상을 없애는 것이며,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은 바로 그렇게 많은 애정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선화상인이 궁극적인 법문만 해준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좌선의 공덕도 알려주는 자상함을 잃지 않는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매일 좌선하면 당신이 집중력을 증가시킬 수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신체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
선화상인은 이런 공덕을 누리면서 더욱 좌선에 정진을 거듭해 ‘생사 해탈’에 이르라고 견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