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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최윤필
한국일보 선임기자


봄은 세상 만물의 봄이어서, 봄의 난만함도 들녘의 꽃봉오리와 산자락 연둣빛 새순에서만 살펴지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어떨 땐 제 몸의 세포들도 봄의 기운으로 출렁이는 듯합니다.
부화를 앞둔 콩알만 한 양서류의 알들이나 막 끓기 시작한 냄비 바닥의 기포들처럼, 낯선 충동으로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지난 주말, 충동된 세포들이 합세해서 등을 떠미는 바람에 나선 길. 제가 찾아간 곳은 전남 화순의 운주사였습니다.
저의 토포스 안에서 운주사와 봄은 아무래도 파격이었습니다. 제 기억 속의 운주사는 봄보다는 가을, 그것도 모든 것이 말라 바스락거리는 늦은 가을날에 어울리는 공간이었습니다. 그 공간은 억새들이 살 비비며 늙어가는 늦가을, 처연한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는 시간 속 이욺의 자리였습니다.
일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한 바 있지만, 저는 공간에도 제 나름의 기운과 사이클이 있어 각자에게 어울리는 특정한 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봄의 산사라면 동백의 진 꽃들이 융단처럼 널린 선운사나 매화며 산수유가 마을 전체를 꽃 대궐로 꾸며놓는 지리산 자락의 절들이 떠오릅니다. 고즈넉한 전나무 숲길이 있는 월정사를 비롯한 강원도의 사찰들은 웅장한 단풍의 계절에 어울릴 것 같은 절들이고, 충남 서산의 부석사나 남해 금산의 보리암 같은 절들은 아무래도 여름에 그리워지는 공간입니다. 강원 철원의 도피안사로 단아한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뵈러 가려면 아무래도 겨울 어느 날 절 마당 가득 덮인 처녀설이 떠오릅니다.
물론 그런 시간과 공간의 토포스는 제 개인적인 체험이나 묘한 선입견, 먼 기억의 왜곡 때문일지 모릅니다. 과연 봄은 세상 만물의 봄이었고 운주사의 봄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주말 운주사의 벚꽃들은 제 한 해의 가장 화려한 시간 속에 있었고, 화강암 부처님들도 흩날리는 연분홍 꽃비에 젖어, 긴 세월 풍화에 흐릿해진 입매로나마 가장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습니다.
제가 운주사를 좋아하는 까닭은 여느 분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몇 차례의 난리로 훼손되고 중건되기를 반복하는 동안 옛 역사책이 기록한 ‘천불천탑千佛千塔’의 위용은 사라졌지만, 아직 남아있는 2여 개의 석탑과 70여 석불들이 아득한 시간의 흐름을 가늠케 해주기 때문입니다. 운주사의 부처님들은 여느 근엄한 국보나 보물들과 달리, 긴 세월 햇살과 비바람에 풍화해왔을 그 넉넉한 시간성을 화장기 없이 드러내 보여줍니다.
어쩌면 그 알몸의 형식은 애초에 절을 창건하고 천불 천탑을 지은 누군가의 첫 마음, 또 끌과 망치로 화강암 속에 갇힌 부처의 형상을 찾아냈을 이름 모를 석공의 의지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 부처님과 탑들은 여느 사찰의 섬세하고 화려한 모습들과 달리 거칠고 투박한 선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거나 앉거나 누운 자리들도 위계로 위엄을 과시하지 않고, 질서 정연한 기하학의 배치에서도 벗어나 있습니다. 그 분들은 산나물을 캐거나 밭일을 하다가 갑작스런 소나기를 피해 모여 섰음직한 바위 언덕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방석만 한 연화대나마 갖춰 앉은 부처님도 계시지만, 어떤 부처님은 장난이라도 걸고 싶은 듯 짓궂게 웃으며 기우뚱 누웠고, 딴청 부리듯 바위 암벽에 비스듬히 기대 서 있기도 하고, 심지어 산 중턱 가파른 경사 위에 어렵사리 중심 잡고 힘들게 서 계시기도 합니다. 풍화의 책임이 비바람에게만 있는 것 같지는 않은 것이, 여러 부처님들의 코와 귀가 유난한 닳아 있습니다. 아마도, 아이를 얻지 못한 아랫마을 아낙네에게, 전쟁터 나간 아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농부들에게 자신의 귀와 코를 선뜻 내줬기 때문일 것입니다. 운주사가 깃들인 천불산 골짜기에서 가장 우람한 몸집을 자랑하며 또 가장 높은 너럭바위 위에 터를 잡은 부처님(남녀의 형상이어서 부부와불이라고도 합니다)은 아예 하늘을 바라보며 반듯이 누워 있습니다. 일주문 지나 절 경내로 이어지는 너른 터 위의 크고 작은 탑들이 선 자리들도 공간 전체의 자유롭고 토속적인 리듬감을 과시합니다.
봄의 생기처럼, 운주사에서 느끼게 되는 모종의 상상력도 바로 그 파격의 형식에서 비롯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절에 깃들인 수많은 전설들, 그 분방한 형식이 낳았을 적지 않은 시와 산문과 소설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첫닭이 성급히 우는 바람에 하루 낮과 밤만을 허락 받은 석공이 미처 부처님을 세우지 못했다는 이야기, 언젠가 부처님이 일어서는 날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아름다운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미완의 꿈, 미완의 부처, 미완의 사찰…. 운주사의
주불主佛이 미래불인 법신 비로자나불인 것도, 소설가 황석영의 <장길산> 무리가 좌절한 혁명의 훗날을 기약하며 모였다 흩어지는 공간이 바로 그 자리인 것도 하나의 거대한 기획에서 비롯된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공상을 불러일으키게도 합니다. 네 차례의 발굴과 두 차례의 학술
조사에도 불구하고, 아직(아니 어쩌면 영영)누가 언제 어떤 연유로 창건한 절인지 확증하지 못했다는 그 모호한 신성성도 절의 매력을 더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그 모든 아름다움이 선 가온 자리에 바로 거대하고 유구한 풍화의 형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운주사는 지금도, 아니 처음부터 폐사지廢寺址로 섰고 기억되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시간과 정직하게 대면한다는 점에서, 불꽃놀이의 장렬한 산화와도 다릅니다. 폭죽은 가장 화려하고 극적인 형식의 산화일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의 정수는 밤하늘에 퍼지는 불꽃의 화려함뿐 아니라, 화약 장인들이 별이라고 부르는 그 불덩이가 꽃줄기처럼 곧게 뻗어 올랐다가 화려하게 타오른 뒤 한 줄기 불티도 남김없이 깨끗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법처럼 사라진 뒤 칠흑 같은 밤하늘에 남기는 잔상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화강암의 풍화는 그 길고 모진 낡음의 시간, 이욺의 시간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데 있습니다. 매끈했던 살갗이 우둘투둘하고 단단했던 몸도 푸석푸석해져서 슬쩍 쓰다듬기만 해도 모래로 흘러내릴 것처럼 위태롭지만, 그렇게 하루하루 조금씩 더 위태로워져 갈 테지만, 끝까지 스스로 주저 않지 않는 의연함입니다.
이정록이 “구름이 / 아름다운 건 / 폐허를 꿈꾸기 때문이다 / 끝내 흩어져버리기 때문이다”(시 ‘운주사 천불천탑’)라고 노래한 것도 그토록 당당한 폐허의 형식에 사로잡혔기 때문일 것입니다.
파격破格은 격식을 깨뜨린다는 의미입니다. 격식은 자연스러운 어울림의 한 형식입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거푸집이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제 형태와 내용을 늘 바꿉니다. 뭔가가 바뀌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어울림에서의 일탈 즉 무질서와 부조화를 감행하고 거기서 비롯되는 불편을 견뎌야 합니다. 숱한 파격의 시도들 가운데 어떤 것은 시대의 해프닝으로 사라지고, 또 어떤 것은 새로운 조화와 질서의 거푸집으로 자리잡아 새 시대를 여는 힘이자 상징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해프닝으로 치부할 순 없지만, 또 그렇다고 한 시대와 공간의 지배적 질서로까지 등극하지도 못하는 파격도 있습니다. 그 때의 파격은 불편한 조화에 공감하는 상대적 소수의 격식으로, 일종의 하위문화로 자신들만의 공간을 점유하며 가녀린 시간을 타고 흐릅니다. 그 흐름 안에서 또 작은 질서와 파격의 거푸집들이 명멸해 나갈 것입니다.
그런 시간 위에 운주사의 파격이 있습니다. 폐허를 내장한 채 영원이 될지 모르는 미완의 희망을 간직한 채. 그 상징은 해마다 반복되는 이 들뜬 봄, 하릴없이 덧없다는 우리의 인생 위에도 놓여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