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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나는 연등의 향기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오색연등과 함께 어김없이 부처님오신날이 찾아온다. 부처님은 새삼 오거나 새삼 가거나 하지 않으시지만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은 꼭 찾아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갔다가 다음해가 되면 또 찾아온다. 연등을 보면서 그래 나도 저 연등처럼 내 마음도 환하게 밝히고 세상도 밝혀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지만 거리에서 연등이 비에 젖고 있을 때쯤이면 그 밝히고자 했던 마음이 어디로 또 외출을 가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게 된다.
연등을 보면서 저 속에 촛불대신 내 머리를 쑥 집어넣었을 때도 촛불이나 전구를 켰을 때처럼 연등이 환하게 빛을 낼 수 있어야 할텐데 돌이켜 반성도 해본다. 뇌세포들이 연꽃잎 피어나듯 파르르 파르르 피어나고 눈에서 연꽃 빛이 나고 그렇게 밝은 귀로 듣고 향기로운 코로 향기를 맡고 감로 같은 말을 꺼낼 수 있어야 될텐데 상상은 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입에서 감로만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눈과 코만 나오게 하는 연등투구 비슷한 것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이 행진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연등을 만드는 것은 저 연등처럼 나 자신이 연등이 되자는 것이므로.
다만 그 마음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못한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면 낮잠도 자야 몸이 오후에 움직여줄 때도 있다.
낮잠을 자는 동안에는 연등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도 함께 들어버린다.
공자님의 제자 재여宰予라는 사람이 낮잠을 즐기다가 꾸짖음을 받는 대목이 논어에 나온다.
宰予晝寢          재여주침
子曰              자왈
朽木 不可雕也     후목 불가조야
糞土之墻 不可?也 분토지장 불가오야
於予與 何誅     어여여 하주
재여가 낮잠을 즐기자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된 담장에는 흙손질 할 수가 없다
내가 재여에 대해서 무어 꾸짖을 것이 있겠는가.”
연등을 만들 때도 연꽃잎을 붙이기 전에 깨끗하고 하얀 종이를 철사구조물에 먼저 바른다. 철사들이 우그러져 있다가 바른 종이가 너덜거리거나 하면 연꽃잎을 붙일 수가 없다. 연꽃잎을 마느라고 손끝이 알록달록 아름답게 이미 연등이 되어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렇게 애써 만든 연꽃잎이건만 종이가 찢어져 있으면 참 곤란하다.
학문에 꾸준히 힘을 써야할 제자가 상습적으로 낮잠을 자고 게으름을 부리자 공자님께서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무얼 꾸짖겠는가 하는 말씀으로 사실은 엄청나게 꾸짖고 있다.
낮 주가 아니라 그림 화자 화침으로 읽어서 낮잠보다 더한 잠이라고 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낮잠이 없는 화침이었든 한두 번이 아니라 습관적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가르치기 싫다고 공자님께서 말씀하셨으리라.
그리고 공자님께서 말을 이으신다.
子曰         자왈
始吾於人也 시오어인야
聽其言而信其行 청기언이신기행
今吾於人也 금오어인야
聽其言而觀其行 청기언이관기행
於予與 改是 어여여 개시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서 그의 말을 듣고 그가 말대로 행한다고 믿었다. 이제는 그의 말을 듣고 그가 말한 대로 행하는지를 보게 되었다.
 나는 재여 때문에 이렇게 바뀌게 되었노라.”
아마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다가 “열심히 하겠다니까요” 하고 대답하고 급기야 “열심히 하겠다는데 왜 그러십니까” 까지 대답이 갔을 것이다. 속으로는 ‘다음부터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거 되게 ×랄이네’ 하고 생각했는지도 알 수 없다.
고전을 너무 엄숙하게만 읽으면 생생함이 사라진다. 봉숭아학당이나 개그콘서트처럼 주고받는 대화가 눈에 그려지듯 해야 고전에 등장하는 스승과 제자의 살가운 정도 느껴지고 고전의 핏줄에서 피가 콸콸 흐르는 느낌을 받으면서 실제로 그 고전을 읽는 내 핏줄의 피가 더불어 싱싱해진다.
물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색이 더 중요하긴 하다. 어떤 형태로 어떻게 있는지 알 수 없는 연꽃잎의 기운이 연못에서 실제 연꽃으로 피어나는 것처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선생님과 학생의 문답을 통해 행간에 나타난다. 타오르는 번뇌가 불꽃 속에서 찬란하게 피어나는 연꽃도 있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지만 썩은 물이 고인 연못에서는 연꽃이 향기를 진동시킨다. 공자님도 사실은 재여라는 제자의 분발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을 뿐 나가 죽어라 하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말한 대로 행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지금 이 원고도 가져올게요 한 날짜에서 하루가 지난 상태에서 부랴부랴 쓰고 있다. 그래도 못 쓰겠는데요 하는 것보다 좀 낫긴 하지만 하여간 날짜를 잘 지켜야 할텐데 하고 다짐을 하고 있다.
그렇게 혼이 나고 나서 재여가 학문에 정진했는지 아예 포기하게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재여가 열심히 했는지 안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이 글을 읽은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렇게 생각하노라니 머릿속에서 꿈틀꿈틀 소름이 돋는 것 같기도 하다. 소름이 돋으면서 꿈틀꿈틀 머릿속의 연꽃잎이 피어나면 더욱 좋은 일이다. 연꽃잎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입체적인 중심점에 지혜의 전구가 확 켜지면 또 얼마나 좋은 일인가. 사라호보다 더한 오라호 태풍에도 끄떡없이 꺼지지 않는 연등불이 되면 더더욱 반가운 일이다. 그리하여 절 마당과 네거리뿐만 아니라 산중의 어두운 바위 동굴 속도 밝히고 이름 없는 들판도 밝혀주고 시냇물도 밝혀주고 시냇물이 모인 강물도 밝히고 강물이 흘러드는 바다 위도 밝히고 바다 속까지도 환하게 밝히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함께 밝아질 수도 있을 것 아닌가.
한참 쓰다 보니 저 아래 대장에서인지 소장에서인지 꼬르륵 소리가 들려온다. 오호라. 머릿속의 연꽃을 피우는 연못이 바로 저기로구나. 예비 대변과 소변을 담고 있으면서 온갖 영양분을 각각의 장기에 공급해주고 마침내는 연꽃잎을 피우고 지혜의 등까지 켜주는 아마 거룩한 손 저 소장 대장이여. 성분이 고약한 액체나 기체도 다 받아들여서 깨끗하게 정제해서 내보내느라 고생이 많기도 하겠구나. 물론 너무 고약한 성분이 들어오거나 하면 배출시스템에 곧바로 빨간 불이 켜져서 구급차의 빨간 등을 돌리기도 한다. 연못도 흘러나가는 배출시스템이 잘 정비되어있지 않으면 나중에는 연꽃 피울 일이 아예 없어지기도 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 소장 대장 방광까지 포함된 연못에는 삶과 죽음이 함께 녹아 들어있다. 싱싱한 음식이 여러 과정을 거쳐 싱싱하게 들어왔다가 시체로 나간다. 그래서 시屎자도 있고 뇨尿자도 있다. 시는 쌀이 시체로 변한 것이고 뇨는 물이 시체로 형태를 바꾼 글자이다. 장자에서는 도재시뇨道在屎尿라고 했다. 쌀의 시체와 물의 시체에도 도가 들어있다는 뜻이다.
쌀의 시체와 물의 시체는 그 자체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름도 되고 온갖 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그 거름과 약재 덕분에 자라난 푸성귀들과 여러 동물들이 다시 소장 대장에 이르러 다시금 시뇨가 된다. 돌고 도는 물레방아이다. 벌써 곳곳에 연등이 환하다. 보는 나도 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