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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심은 사홍서원을 성취하게 합니다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꿈꾸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이상理想은 우리를 꿈꾸게 할 뿐 아니라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것이어야 한다.
내일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윌키 오의 「마음의 길을 통하여」 중에-


85년 10월, 가회동에 있던 적산가옥의 구룡사를 구룡산 자락 양재동으로 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생각해보면 확고한 신념과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지금의 모습으로 이곳에 이전하게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통도사의 열매를 구룡산 자락에 불종자佛種子 씨앗으로 심어야겠다는 확신과 믿음이 대중포교를 꿈꾸게 하였고 이곳 양재동에 구룡사 만불전 불사를 시작으로 일산 여래사, 용인 법계선원, 인천 보명사, 분당 장안사, 뉴욕의 원각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불사는 통도사에서 열매를 따다가 불종자의 씨앗으로 가꾸어온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불사는 개인 혼자만의 꿈이 아니요, 통도사 서울포교당 불자와 함께 씨앗을 심고 가꾸며 농사 지어온 대중포교의 결실인 것입니다. 많은 불사 중에 어렵지 않은 경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사는 어려움 없이 원력을 현실로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몇 사람의 시주와 도움으로 이루어진 불사가 아닙니다. 우리 불자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십시일반十匙一飯 동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우리는 자긍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구룡사를 비롯한 여러 불사가 개인의 시주로 이루어졌다는 말들을 들었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드려야 합니다.
불자들이 십시일반 시주해서 그 많은 일들을 다 해왔는데, 그저 이루어진 것처럼 이야기들을 한다면, 우린 좀 바로잡아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 불사를 하고 있는 전법회관도 역시 불자들과 함께하는 불사입니다.


78년도에 가회동에 구룡사를 이룩하신 통도사의 어른 스님들이 계십니다.
“통도사는 서울에 연고 있는 절이 없으니 우리도 포교당을 세우자” 하시던 제안에 동의해 주셨던 제9대 종정 노천 월하老天月下 대종사님과 벽안 대종사님, 제15대 종정에 추대되신 중봉 성파中峰性坡 대종사님을 비롯해 지일 스님, 기석 스님, 중광 스님, 초우 스님, 교구장 이셨던 청하 스님과 대중스님들은 많은 불자들과 인연을 맺어서 서울과 부산 대구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그 불사금으로 가회동에 통도사 서울 포교당 구룡사를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통도사 어른 스님들이야말로 진정한 구룡사 창건의 공로자이십니다.
통도사에서 불종자의 열매를 서울로 옮겨와 씨앗으로 심어서 우리는 농사를 짓고 다양하게 이곳저곳에 또 그 씨앗을 심고 거두게 하는 일들을 하면서 지금으로 이어지게 해오고 있는 부처님 일, 불사佛事입니다.


『화엄경華嚴經』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에, “크고 넓은 마음을 일으키므로 여섯 가지 바라밀다波羅蜜多를 닦아 행하고 중생들에게 바른 행원을 권함으로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에서 안락을 받게 한다.”
부처님께서 탄생게誕生偈로 설하신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요.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우리 생명의 본성이 가장 존귀하도다.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我當安之하리다. 욕계 색계 무색계가 모두 고통과 괴로움 속에 허덕이고 있으니 그 중생들을 편안케 하 기위해서 이 땅에 출현하셨다”하신 그 가르침을 깊이 인식하고 새겨야 할 것입니다.
「초발심공덕품」에 “지혜의 밝은 광명 햇빛과 같고, 모든 행원 갖추기가 보름달 같고, 공덕은 바다처럼 항상 가득한데 때가 없고 걸림이 없어 허공과 같다.” 하셨습니다.
원효元曉 대사도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있다고 할까, 아니 한결같은 목숨이 텅 비어 있고, 없다고 할까, 아니 만물이 다 여기로부터 나오네. 그것은 광활한 것이다. 대 허공과 같이 사私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평등한 것이다. 큰 바다와 같이 공평한 것이다. 그것을 일컬어 도리 아닌 지극한 도리라 하며, 그것을 일컬어 긍정 아닌 대 긍정이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목격한 대장부가 아니고서야 누가 능히 언설을 넘어선 대승을 논論하고, 사려가 끊긴 대승의 깊은 믿음을 일으키게 할 수 있으랴.”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출발점은 보리심菩提心입니다. 보리심은 사홍서원四弘誓願입니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 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 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 오리다.
그 서원을 성취하려는 염원念願이 보리심입니다. 사홍서원은 보리심이요, 그 보리심이 사홍서원을 성취하려는 마음입니다. 보살의 광대무변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서원은 오랜 세월 바라밀을 닦고 닦아 지혜를 길러서 보살도의 실천으로 성불할 수 있는 것이 초발심初發心의 공덕功德입니다.
그러니 보살이 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은 결국 보리심을 증장增長해서 성불하기 위함이고,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불종자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고 계시며, 이 모든 법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모임이 승가공동체僧伽共同體인 것입니다.


어른 스님들의 그늘에서 성장을 해왔습니다. 그러니 저도 후학들의 그늘이 되어야 하고 앞서가신 어른 스님들의 울타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도 어른 스님들께 받은 그 은혜를 후학들에게 다 펼치지 못하는 것을 늘 부끄럽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76년도 25살이던 때, 동진출가자의 망상이 생겨 뭐 좀 해볼 거라며 서울에 와 있었으며, 통도사에서 걱정하고 계실 어른 큰 스님들께 편지를 드렸습니다.
그때 동국대학교 재단 이사장이셨던 월하 노스님께서는 아무도 안 데리고서 혼자 제가 살고 있는 조그마한 절에 두 번이나 다녀가셨습니다. 그리고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또 벽안 노스님께서는 답서로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벽안 노스님의 답신의 글은 지금도 받들어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정우를 보내고 궁금하던 차 편지 받아보고 반겨하였다. 공부를 하기 위한 것이니 착실히 공부하고 돌아와서 통도를 위하고 불교를 위해서 크게 활약하고 훌륭한 승려가 되어라. 우리 불교는 이 시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구습을 타파하여라. 이만. 노승 벽안 답서. 76년 10월 12일.”


어른 스님의 보살핌과 가르침, 연민심은 구룡사 불사를 시작으로 이곳저곳에서 인연들을 짓고 오늘의 전법회관 불사까지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월하 노스님, 벽안 노스님, 석주 노스님, 은사스님의 도반이신 수많은 어른 스님들의 자상한 보살핌이 없었다면, 지금의 정우도 구룡사를 비롯한 수많은 통도사 포교당은 없었을 것입니다. 어른스님들의 가르침은 어느 때는 서까래의 역할로, 어느 때는 기둥의 역할로, 어느 때는 대들보의 역할을 하면서 살아오게 된 것이 아닐까 싶은 마음입니다.


부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이 마음이 맑고 깨끗함이 부처님이요, 이 마음이 지혜로움이 법입니다.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깨끗한 공동체가 승가입니다. 그러니 조급함을 내거나 서두르지 말고 물이 흐르듯, 그렇게 세상을 순탄하게 지켜보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일들은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믿습니다.
끝없는 공덕과 서원을 널리 일으켜 일체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오는 세상 서원과 행원을 의지하여 부지런히 닦고 닦아서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으로 구룡사 전법회관 건립불사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초대하지 않아도 인과로 윤회하는 인생도 있고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오른 원력보살願力菩薩이 되어 어느 세상이든 갈 수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인생은 초대받지 않아도 저 세상으로부터 왔으며, 허락하지 않아도 어느 날인가 이 세상을 떠나가야 합니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로 우리는 선근善根과 지혜智慧가 자비심慈悲心이고 보리심菩提心이 방편方便을 낼 수 있는 보살의 보리심으로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사는 것이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불교는 인간을 가장 이상적인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보리심을 일으키나니, 이 마음은 공덕 중에 가장 수승한 공덕이요, 부처님의 걸림 없는 지혜를 얻는 것이다.” 「초발심공덕품」의 게송을 전하면서 우리 모두 성불하였으면 합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