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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아름다운 풍경

한국불교 미래, 수행 정진에 있다.

-하안거 입재에 생각해보는 재가불자의 신행-

유권준
동국대학교 동국미디어센터


80년대는 이상한 풍경으로 가득 찼던 시절이었다. 거리는 매캐한 최루탄 냄새로 가득 찼고, 대학생들은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군인들은 정치를 하러 여의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었으나 권력은 다른데서 나오고 있었다. 모두 이상한 풍경이었다. 그때 내가 좋아했던 노래는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라는 노래였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문득 나는 학생이며 공부를 해야 하며,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거리가 아니며 내가 들어야 할 것이 짱돌이 아니고 펜이며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리로 돌아가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싶었다.
세월이 흘렀다. 학교를 졸업하고 불교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불교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90년대 두 번의 종단분규를 직장에서 겪어야 했다. 대학을 다닐 때 보였던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아름답지 않은 풍경’의 연속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은 바람이 간절했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말이다. 승가는 승가로, 재가는 재가로 자기 본분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풍경 말이다.

부처님께서는 재가불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여러 경전에서 말씀하셨다. ≪잡아함 33권 929경 일체사경(一切事經)≫에서 부처님은 마하나마라는 재가불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하나마여,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참다운 재가신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스스로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스스로 깨끗한 계율을 가져야 한다. 셋째는 언제나 보시를 행하여야 한다. 넷째는 절에 자주 나가 스님을 공경해야 한다. 다섯째는 스님을 보면 법을 청하여 들어야 한다. 여섯째는 항상 바른 법만을 받아 지녀야 한다. 일곱째는 자신이 받아 지닌 법이 옳은 것이지 그른 것인지 그 뜻을 깊이 관찰해야 한다. 여덟째는 바른 법에 따라 실천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여덟 가지를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가르쳐 낱낱이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모두 열여섯 가지를 성취하는 것이 된다. 이런 사람을 일러 나는 참된 재가신도라 부른다.”


또 ≪잡아함 33권 927경 우바새경(優婆塞經)≫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재가신자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삼보에 귀의하고 불법을 받드는 신자가 되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이며 여래에 대한 믿음이 완전하고 견고해야 하고,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과 거짓말과 음주를 즐겨하지 않고 그것을 떠나기를 좋아해야 한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기억하고 널리 보시할 줄 알아야 하고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사라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법〔四聖諦〕를 바르게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다.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정보조차 흥미를 자극하면서 떠돌아다닌다. 이런 저런 이야기에 휩쓸리다보면 내가 어떤 신행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의 생활을 되짚기 보다는 남의 일상사에 더 관심을 두는 경우도 많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생활을 진리에 비추어 보는 것이 더 중요한데도 말이다.

이렇게 혼란스러울수록 원칙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본분을 찾는 것이다. 남 이야기는 할 필요도 없다. 내 자리, 내 본분을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내 자리에서 차근히 내가 귀의해야 할 진리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된다. 작게는 재가 신도의 당연한 도리인 삼귀의에서 오계, 조금 더 나아가 바른 법을 알고, 바른 수행을 해 나가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부처님께서는 사람보다는 진리를 믿으라고 권하셨다. 열반하실 때는 “자신을 등명으로 삼아 스스로 귀의할 곳으로 삼되 남을 귀의할 곳으로 삼지 않으며, 법(法)을 등명으로 삼아 법을 귀의할 곳으로 삼되, 다른 곳을 귀의할 곳으로 삼지 말지어다.”라고 하셨다.

불교의 신행은 다른 종교의 신앙생활과 달라야 한다. 초월적인 신에 대한 기도와 구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의지해 스스로 해탈하려는 주인 된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리고 조용히 자기 마음속에 묵은 때를 벗겨 자신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 이런 저런 시류에 휩쓸려, 또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남 탓을 하느라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소홀히 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나도, 너도 한 명씩 한 명씩 본래 자기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까.

초파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스님들께서 일제히 안거에 들어가셨다. 안거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뚫는 심정으로 용맹정진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생업에 종사하는 재가신도로서 스님들이 선방을 찾아 안거에 드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내가 찾아 들어야 할 ‘아름다운 풍경’은 무엇인지 가슴 서늘하게 되짚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