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돤황 전시회를 다녀와서

김지상
중국 국가박물관 수복연구원, 화광미술연구원장


돈황(敦煌)이라는 이름은 ‘크게 번성한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의미 그대로 고비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로서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이 되었던 한 곳이다.
중국에 있는 돈황석굴은 사막의 높은 곳에 자리를 하고 있어 막고굴(莫高窟)이라고 부른다. 돈황 최고의 전성기에는 석굴의 수가 천개가 넘어서 천불동(天拂洞)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돈황석굴은 전진(前秦) 건원(建元) 2년에 낙준(樂樽)이라는 스님이 개착하기 시작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唐) 경력(經歷) 원년(元年, 698)에 이회(李懷)가 막고굴을 중수하여 감실 1천여 개를 발견하여 오대(五代), 송(宋), 서하(西夏), 원(元) 시대를 거치면서 중건 하였다고 한다.

돈황의 석굴은 현재 보존된 492개의 석굴 가운데 수(隋),당(唐)시기 조형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굴에 있는 300여개의 벽화는 길이가 자그마치 45km에 달하고 채색 불상도 2400여 개에 이르고 있다. 1900년경에 장경동(藏經洞)이 발견된 후 서구 열강에 의하여 문물이 도굴되기도 하였다. 그 중에는 신라시대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도 포함되어 있다.
세계에 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된 돈황은 수많은 사람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돈황을 북경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중국 국가미술관에서 열린 「성세화광(盛世和光) - 돈황예술대전(敦煌藝術大展)」이 그것 이었다. 전시가 열리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가 집중이 되었다. 특히 중국 사람들은 돈황에 열광한다. 이 것 만으로도 문화유산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기대 속에 대대적으로 「성세화광-돈황예술대전」이 문을 열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으로 모여 들었다. 줄이 아주 끝이 없다. 이 행사는 1월부터 3월까지 열렸는데 행사 기간 내내 계속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전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추첨 때 빼고는 이런 광경을 보지를 못한 것 같다.

전시를 했던 중국미술관은 중국에서 제일 큰 미술관이다. 1958년에 착공하여 1962년에 완공한 건축물로, 중국 건국 이후 10대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중국풍의 전통양식으로 디자인되어 있어서 딱 봐도 미술관처럼 생겼다. 그 전시관의 1층에 있는 9개의 전시관 모두를 돈황미술로 채워서 전시를 했다.
돈황 전시를 위해 미술관 외부 벽면 전부를 돈황의 막고굴을 실사해서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멀리서 보면 돈황의 막고굴에 온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이번 전시에는 돈황석굴의 복재동굴 10개, 소상 복제품 11점, 벽화 임모 120폭, 막고굴 천상탑에서 출토된 소상 진품 10점, 장경도에서 출토된 문물 10건, 돈황석굴의 문물 10건 등 돈황 연구소와 예술가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눈에 띠는 것은 막고굴 천상탑에서 출토된 소상을 비롯해서 진품은 거의 없고 대부분 임모(모사)본이었는데, 중국의 임모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었다. 중국이 2000년이 넘는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는 생각에 부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중국은 임모가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 한 가지를 예로 들어보자. 중국의 서화임모는 약 2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전하여져 오는 문헌에 의하면 장익(張翼)이 왕희지(王羲之)의 서법을 모사하였다고 한다.
왕희지는 당대 최고의 서법가로 장익의 서법모사를 알아차리지를 못했다고 한다. 이에 왕희지는 “소인배의 욕심으로 진작을 어지럽힌다.”고 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화모사의 발전은 중국에 역사와 함께 발전을 했고 동시대의 제왕들에 의해서도 발전을 거듭해 왔다. 서화에 관심이 많았던 제왕들은 재주가 있는 사람들을 벼슬까지 주면서 임모를 하기까지 했단다.

요즘 중국 서화시장을 보면 고대의 임모작들이 넘쳐난다. 서화의 성격, 필선, 노화된 천이나 종이 등이 세세하게 모작(위작)이 되어 나온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고대의 그림을 접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모작을 하는 작업은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져 있다. 오래도록 시행착오를 거쳐서 내려오는 작업들이라 비밀에 붙이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중국의 서화모사는 회화와 함께 발전을 거듭해 왔다. 서로가 공존을 하면서 발전을 해왔기에 하나의 새로운 예술장르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모사 기술이나 임모 기술은 역사에 비해서 발전을 하지 못하였다. 과거에 서화모사는 천시 되었고 조잡한 걸로 인식이 되었다. 이는 화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생계의 수단으로 많은 그림을 대량으로 복제를 하였고 임모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임모와 모작(위작)은 차이가 있다. 그러면 임모와 모작의 차이를 알아보자
임모의 가장 큰 목적은 원작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재현을 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손재주가 아니라 동시대에 그 작품을 그렸던 작가의 감정과 사상까지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전시나 보존이 용이하지 못한 서화를 후대에 널리 알리는 목적에도 치중을 해야 할 것이다.
반면 모작의 가장 큰 목적은 판매와 자금의 폭리에 있다할 것이다. 모작은 대부분 단 시간에 이루어진다. 재료 또한 질이 낮은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서화의 수명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모작은 어느 정도까지만 비슷하다는 것이다. 원본 서화의 필선이나 채색화법 등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고대 중국화의 대부분은 임모 작품들이 많다. 이런 작품들 또한 동시대에 작품들처럼 매우 중시여기며 이런 작품들이 없었으면 중국의 고대 회화가 발전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좋은 작품 또한 만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전시실 입구부터 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행렬도, 변상도, 회상도 등 다양한 그림들이 보인다. 벽화의 그림은 대부분 종이에 석채(石彩)와 일반물감으로 그렸고 현상모사(現狀模寫)와 복원모사(復元模寫)로 이루어져 있었다.
현상모사에서는 물감의 탈락과 벽체의 탈락까지 모사를 해주었고 복원 모사에서는 처음에 조성 하였을 때의 느낌을 충분히 살려준 것 같다. 불상 등의 조형물은 현상복원을 하였고 막고굴의 형태 또한 거의 흡사해서 굴속에서 돈황의 벽화와 조형물을 보고 있는 듯 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거대한 와불 부처님과 20여 미터에 달하는 벽화였다. 열반상을 표현한 부처님으로 뒤편으로는 10대 제자와 보살, 사천왕 등 수많은 불·보살님들이 벽화로 조성이 되어있다. 참으로 볼 만한 광경이었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직원들이 화를 내면서 제지를 한다. 사진은 절대 금지란다. 그나마 필자가 중국 국가박물관에 적이 있어서 꼭 필요한 사진은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계속 전시장을 돌다가 재미있는 그림을 발견했다. 고려시대 수월관음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였다. 벽화의 얼굴은 산화가 되어서 검게 변하였고 문수동자가 합장을 하는 모습 등 형태와 구도가 수월관음의 모습과 똑같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그림은 천수천안 벽화였다.

흙으로 벽체를 만들어서 먹선으로 선묘를 하고 중간 중간에 양록색이 조금씩 보이는 현상모사 작품이었다. 언뜻 보면 선이 잘 안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필선이 힘차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참 좋았다. 나중에 꼭 한 번 그려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시장을 4시간여 동안 돌아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우선 대규모의 전시회에 놀랐고, 여기에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문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대단하다는 것에 놀랐다. 우리도 좋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 때는 불화를 전공하고 있는 사람의 하나로서 무거운 책임감도 들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직접 연구하고 그리는 나 자신에게 한 번 더 다짐을 하게 된다. 꽁꽁 숨겨져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연구하여 대중에게 좀 더 쉽게 다가 갈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우리의 문화유산도 훌륭한 문화산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문화유산이 없다면 강대국-선진국이 된들 무엇 하겠는가.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문화유산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