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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의 자락가를 음미하며

공종원
언론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열린 ‘남전 원중식 서전’을 관람했다. 남전 원중식의 이 서예전은  사단법인 일중선생기념사업회가 제정한 제1회 일중서예상 대상수상자 초대전으로 열린 점에서 당대 최고의 서예가라고 평가되는 남전의 근래작품 모습을 보여주는 의미 깊은 전시회였다.
남전은 이 전시회에 검여 류희강의 제자이며 일중서예상 대상수상자답게 대단한 서예작품을 다수 내놓고 있었다. 전시장 한 면을 가득 채울 만큼 심혈을 기울인 대작 ‘굴원의 미소’ 10곡 병풍도 놀랍지만 글씨같기도 하고 그림같기도 한 집금문 작품들이 울긋불긋 채색되어 있는 모습은 놀랍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등 중국 고대의 금문들을 남전이 나름대로 그렇게 작품화한 것이 대단하다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전시회에서 내가 새삼 감동을 받게 된 것은 ‘서산대사 자락가(西山大師 自樂歌)’였다. 푸른 바탕에 금색으로 씌어진 작품이 모두 한문으로, 당연히 그 내용을 파악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전시회 서집에는 ‘작품의 석문’이 붙어 있어서 한글로 된 설명문으로 자세하게 그 내용을 음미할 수 있었다.
모두 알다시피 서산대사 청허(淸虛)스님은 숭유억불(崇儒抑佛)로 일관하던 조선시대에 불교를 지키고 일으키려고 분투한 선승이다. 태고스님으로부터 이어져온 조선의 선맥을 계승하여 중흥시킨 위대한 선승으로만이 아니라 임진왜란을 맞아 나라와 민족을 도탄에서 구하기 위해 승군을 일으켜 그 선두에 섰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런 위대한 인물 서산대사도 당시 세속의 소인배의 입방아의 제물로 되어야했고 그런 처지에서 상당히 마음고생도 해야 했다. ‘서산대사 자락가’의 초입에서 보이는 내용들은 그런 서산대사의 처지와 심경을 느낄 수 있는 설명이 솔직하게 표현되고 있다.


“청허자는 가정 을묘년의 여름, 처음으로 교종의 일을 맡고 그해 가을에 다시 선종의 일을 맡았다. 정사년 겨울에 인수를 풀고 풍악산으로 들어갔으며, 무오년 가을에는 지팡이를 날려 두류산으로 향하였다. 어떤 유생이 나를 희롱하여 말하기를, 처음에 판사가 되었을 때는 그 영화가 더할 데 없더니 지금 판사를 잃고 나니 그 궁함이 또한 더할 데가 없구려. 몸이 괴롭고 마음이 답답하지나 않습니까 하였다. 나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판사가 되기 전에는 한 벌의 옷과 한 끼의 밥으로 금강산에 높이 누웠고 지금 판사를 그만 둔 뒤에도 한 벌의 옷과 한 끼의 밥으로 두류산에 높이 누워 있다네. 한 평생의 생애는 산림에 있지 속세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얻고 잃는 기쁨과 슬픔은 밖에 있고 안에 있지 않으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영화와 치욕은 몸에 있고 성품에 있지 않다. 옛 사람은 높은 집에 올라앉아 한 길이나 되는 좋은 음식을 가득히 앞에 놓고 먹으면서도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지금의 내가 판사가 되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추한 거리에 누워 한 그릇의 밥과 한 사발의 국을 먹으면서도 슬퍼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지금의 내가 판사를 그만 둔 뒤와 같다. 그러므로 나아가고 물러감에는 영화도 치욕도 없거늘 그 얻고 잃음에 있어서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겠는가. 기쁨과 성냄과 슬픔과 즐거움이 마음에서 나왔다가 입에서 그치는 것은 마치 연기와 구름과 바람과 비가 허공에서 일어났다가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 달인의 소행은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그것을 따라 응해주며 그 일이 지나가면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스스로 그 마음을 쉬고 스스로 그 성질을 고를 뿐이다 하였다.”


청허 휴정은 일찍이 봉은사에 머물면서 선교양종의 판사가 되어 이 나라 불교를 통섭하는 지위에 있었다. 그가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증거다. 그러나 불교를 억누르고 유교를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높이고 있던 시대의 유생과 사대부들이 스님의 출세를 좋은 눈으로 바라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서산대사가 관직에서 물러나 산으로 돌아가자 이를 비아냥대고 조소하는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산대사가 그런 관직이 탐이 나서 그 자리에 있었을 만한 인물이 아니고 오로지 이 나라 불교를 지키고 키우려는 일념으로 일한 것이란 진실은  그들이 알 바 아니었다. 그래서 서산대사는 그런 자신의 진심을 설명하고 실제로는 모든 출세와 영화, 불행과 몰락이 뜬구름같은 일이라는 점을 깨우쳐주고 있다.
스님은 마침내 이를 노래로 부르고 있다.


“머무니 여여(如如)하고 행하니 서서(徐徐)하다.
우러러 보며 웃음을 머금고 굽어보며 허허롭게 웃는다.
나고 드는데 문이 없으니 천지가 초가집 같구나.”


스님에게 무슨 미련이나 집착이 있겠는가. 그저 ‘우러러 웃고(仰之而笑) 굽어보며 허허 웃는다(俯之而噓). 나고 드는데 문이 없으니(出入兮無門) 천지가 초가집이다(天地兮廬)’고 노래할 정도이니 시정의 소인배들이 흠을 잡는 꼴이 너무 가소롭다 하겠다.
하지만 서산대사의 ‘자락가’를 읽으면서 요즘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불교집안의 소음들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진다. 서산대사의 높은 정신세계를 요즘 스님들이 조금이나마 배웠으면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