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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위의 꿈

수덕스님
가평 대원사 템플스테이 관장


1.
햇빛 좋은 어느 날,
작은 거위 한 마리가 무리에서 벗어나 조그만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는 저 새들처럼 날지를 못하는 걸까?’
나이 먹은 거위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단 한 마디.
“날지 않아도 먹이는 충분한 걸?”
작은 거위는 언덕에서 날아보려 애썼다. 어줍지 않은 날갯짓으로. 하지만 그때마다 머리를 호숫가 바위나 풀 섶에 쑤셔 박기 일쑤였다.


2.
아침 출근 길,
발 디딜 틈도 없는 전철 안에서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누구지?’
그때 악마의 왕인 마라(Mara)가 나타났다.
“너 내 말 잘 들어. 내가 묻는 말에 대답 못하면 너는 죽는다!”
그러면서 그의 이마에 권총을 갖다 대고 험악하게 말했다.
“일 더하기 일은 얼마냐?”
그는 얼른 대답했다.
“2요.” 
“바본 아니군!”
마라가 말했다.
“하나 더 물어보겠다. 이번에도 셋을 셀 동안 대답 못하면 너는 죽는다!”
마라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며 물었다.
“너는 누구냐? 하나, 둘, 셋”
“빵!”
그는 전철 안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3. 
그날 밤 나는 마라에게 편지를 썼다.
마라님,
저는 오늘 전철 안에서 당신의 권총을 맞고 쓰러진 자예요.
나는 오늘 내가 왜 당신의 권총을 맞고 죽었는지 알아요.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나’를 모르고 살았거든요.
당신의 권총을 맞고 나는 비로소 알았어요.
내가 바로 나라는 것을.
어줍지 않게 날아오르려고 했던 작은 거위가 바로 나라는 것을.
그래도 언젠가는 작은 거위가 반드시 날아오르리란 것을.
마라님,
나를 일깨워줘서 고마워요.


4. 
그날 밤, 드디어 작은 거위가 날아올랐다.
날아오르기는 참 우습게 시작되었다.
하루 내 풀 섶에 머리를 쳐박던 작은 거위는 자살을 결심하고 절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뛰어내렸다.
그런데 그 순간 다시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더 힘껏 날갯짓을 했다.
그랬더니 그만 하늘을 날기 시작한 것이다.


5. 
다음날 아침, 그는 참 기분 좋은 얼굴로 다시 전철을 탔다.
마라가 다시 나타났다.
“너는 누구냐?”
“ㅎㅎㅎ!”
“정답이야. 잘했어. 이젠 안심하고 가도 돼.”
“ㅎㅎㅎ!”


6.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른 작은 거위를 향해 나이 먹은 거위가 외쳤다.
“드디어 날아올랐군.
이건 기적이야. 우리 오리마을에서 하늘로 날아오른 건 자네가 처음이거든!
앞으로 우리 오리마을에도 자네처럼 하늘을 나는 위대한 거위가 많이 탄생하길 진심으로 바라네.”
그러면서 나이 먹은 거위는 하늘 멀리 사라지는 작은 거위를 향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7. 
그날 하루 종일 나는 작은 거위와 함께 하늘을 날았다.
작은 거위가 나고, 내가 작은 거위였다.
그날 밤 나는 파우스트가 되는 꿈을 꿨다.
뷔르템베르크의 파우스트 연구소에서 파우스트는 지금까지 세상을 헛되게 살았다면서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빛나는 청춘을 그리워하며 눈물짓고 있었다. 자살을 결심한 파우스트가 독약을 마시려고 할 때 악마의 왕 마라의 사촌인 메피스토펠레스가 검정 옷을 입고 나타났다. 그리고 말했다. 젊음을 줄 테니 지상에서는 자기가 파우스트의 제자가 되고 저승에서는 파우스트더러 자기의 부하가 되라고. 그러면서 아름다운 처녀 마르게리트의 환상을 보여줬다. 그리고 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서에 서명하는 즉시 파우스트는 미남 청년으로 변하고 메피스토펠리스와 함께 영원한 젊음을 노래하게 되리라.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로부터 계약서를 받아든 순간 나는 그 계약서를 갈갈이 찢어버렸다. 그리고 작은 거위와 함께 나는 더욱 힘껏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외쳤다.


“나는 나로 살래요. 작은 거위로 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