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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정신(中道精神)

박관우
아시아기자협회 운영위원


국책사업 갈등의 1차 책임은 이명박 정부
국책사업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심각하다. 문민정부 이후 최대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1차 책임은 이명박 정부가 져야 한다. 수시(隨時)로 말을 바꿔가며, 지역민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 책임이 크다. 말이 국책사업이지 추진과정을 보면, 권력획득과 유지를 위한 정치상술(政治商術)이 깔려있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여권 핵심부의 통렬한 반성과 책임추궁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대북 문제 등 한반도를 강타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슈 제기로, 대충 넘어가려는 꼼수를 부려서는 안 될 것이다.
국책사업 갈등을 보면, 정치상술에다 지역이기주의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이기주의라고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지역의 현실을 보면 너무나 열악하고 안타깝다. 지역에 따라 여건의 차이는 천차만별이지만, 실제 지방근무를 해 보면 국책사업에 목매는 지역의 실상을 뼈저리게 체험할 수 있다. 수도권 집중이 워낙 강력해서, 지역에서는 뭘 하려고 해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당장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한 실정이다.
우선 재원(財源)이 부족하다. 지역공약사업은 물론이고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물적 여건은 물론 인적 여건도 변변치 않기 때문에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 지역의 사정이 이러할 진데 국책사업 하나 따내면 횡재(橫財)가 아닐 수 없다. 지방 입장에서는 복권당첨에 비유될 정도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국책사업이 지역에 오면 든든한 생산기반을 갖게 된다. 지역개발에다 일자리 창출은 물론이고, 지역인구 증가와 안정적 재원확보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통부재가 낳은 갈등의 확대 재생산
최근 국책사업 갈등 양상을 보면 소통부재(疏通不在)의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차라리 문제를 풀어가는 것 보다는 새로운 문제를 또 만들고 있다. 정부의 조정능력은 바닥에 떨어지고, 민심은 구름처럼 바람 따라 허공에 떠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론의 동력이 떨어진다. 정부는 최소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정작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전면에서 사라진다.
최근 국책사업 갈등이 최고조를 보이는데도 대통령은 한 마디 언급조차 없다. 대국민 사과는 커녕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고 권력의 소유자이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오만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을 넘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국무총리는 무슨 죄가 있는가! 대통령 대신 국민 앞에 나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것도 국민을 대상으로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 아닌 초청특강 형식을 통해 변명하듯 겉치레하고 지나가려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특강 내용도 가관이다.
“정부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면서 “고육지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마디 덧붙인다. “(국책사업 사회갈등) 이런 문제들이 우리 사회에서 너무 큰 혼란을 야기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가 어떤 점이 미흡했는지 반성해야 하지만 우리 국민이 좀 더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한마디로 진정성이 없다. 본전도 못 찾을 말이면 오히려 침묵하는 편이 낫다.


민심 앞에 참회(懺悔)하는 정부
민심 없는 정부는 오래가지 못한다. 민심 없는 권력을 누가 지지하겠는가? 이쯤 되면 권력이 아니고 폭력이다. 법과 제도로 포장된 폭력에 불과하다. 여론을 경청하려면 좀 더 강하게 질책하는 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 쓴소리를 듣기 싫다고 배척하거나, 심지어 교묘한 방법으로 탄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지와 맹종만 믿고 최고 권력을 행사하지 말라.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최근 정책 가운데 잘한 것도 한 둘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미소금융이다. 이것은 금융회사와 거래할 수 없는 저소득자와 저신용자를 배려한 소액대출사업이다. 현 정부의 고유 브랜드 정책은 아니지만 의미가 있는 정책이라고 본다. 아마 노무현 참여정부나 김대중 국민의 정부가 추진했다면 포퓰리즘에 좌파정책이라고 해서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을 것이다.
정책의 현장에는 더 이상 좌파와 우파가 없다. 더 이상의 이념논쟁은 사회갈등만 양산할 뿐이다. 핵심은 민생현장이다. 이렇게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지지층이든 반대파이든 따지지 말라. 임기 말로 갈수록 오히려 자신의 반대를 보라.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반대 입장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이 효과가 더 높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생을 보고 적실성(適實性)을 확보하는 일이다. 최근 들어 재벌총수 비판론을 제기하고, 중소기업과 상생 등을 강조하는 언급을 보면 방향성(方向性)이 없지 않다. 그동안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으로, 중소기업과 서민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나. 최근 이런 저런 거시 경제지표가 좋다고 하지만, 소득 격차는 더 커지고, 체감 민생고는 더 깊어졌다. 민심은 가진 자 보다 서민층이 더 두텁고 오래 간다. 빵 한 조각이 부자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배고픈 사람에게는 생명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부처님의 중도정신이 해결책
최근 사회갈등의 심각한 문제는 잠복성(潛伏性)에 있다. 국책사업 갈등양상은 지역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등과 직접 관련돼 있기 때문에 곧장 드러나는 즉시성(卽時性)이 있다. 그러나 냄비 마냥 곧장 식는다. 갈등 조정국면에 접어들면서 해결되는 속성을 지닌다. 하지만, 국책사업 후유증은 소통부재와 같은 사회갈등 요인으로 전환되면서 중장기 적으로 잠복하는 특성을 갖는다. 잠복성이 높은 사회갈등은 생각 보다 심각하다. 일정한 조건이 형성되면 폭발성(爆發性)을 가질 뿐 아니라 사회의 합리구조를 근원적으로 깨트린다. 심지어 공동체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기반 마저 무너진다. 역사적 조건에 따라서는 혁명적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세간에는 현 정부 들어 사회갈등의 잠복성이 특히 높다는 지적이 많다. 단적인 사례가 재보선 여론조사의 허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을 든다. 최근의 여론조사는 더 이상 민심의 실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방법론적 오류도 있지만, 주요 원인은 정부의 왜곡된 소통방식에 따른 진의 표현(眞意 表現)이 제약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사회현장에 부각되지 않는 사회갈등은 향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소지를 안고 있다.
 해법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유일한 대안으로, 부처님의 중도정신(中道精神)에서 제시할 수 있다. 중도정신을 영어로 표현하면, Middle way가 아니라 Best way다. 우파 정권 입장에서 좌파가 비난받을 일을 했다면, 국민 입장에서 보면 금상첨화의 최선(最善)의 선택이다. 부처님의 중도정신은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실체와 본질을 바로 보고 실천하는 길이다. 핵심은 부처님이 고행(苦行)을 거쳐서 중도정신을 실천한데 있다. 만일 오류가 있으면 인정하고 참회하고, 중도를 위해 노력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오류를 인정치 않고 아상(我相)을 앞세우는데 문제 해결은커녕 문제를 더 키우고,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킨다. 아상이 앞서면 중도는 결코 볼 수 없다. 비유해서 표현하면, 천강(千江)에 비치는 달빛의 뿌리는 하나다. 


부처님의 중도정신은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실체와 본질을 바로 보고 실천하는 길이다. 핵심은 부처님이 고행(苦行)을 거쳐서 중도정신을 실천한데 있다. 만일 오류가 있으면 인정하고 참회하고, 중도를 위해 노력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오류를 인정치 않고 아상(我相)을 앞세우는데 문제 해결은커녕 문제를 더 키우고,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킨다. 아상이 앞서면 중도는 결코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