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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 하안거 결제법어

종정예하 하안거 결제법어
진제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운문雲門의 삼전어三傳語


지난 5월 24일(음력 4월 15일)은 스님들이 여름철 3개월 동안 외부의 출입을 끊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하안거 결제일이었습니다. 이날 전국의 사찰과 선원에서는 일제히 계사년 하안거 결제법회를 열고 3개월 간의 안거 수행정진에 돌입했습니다. 올 계사년 하안거 결제에는 전국의 100여개 선원에서 2천2백여 명의 수좌스님들이 참여했습니다. 다음은 이날 결제법회에서 법어를 내린 종정스님과 방장스님의 결제법어입니다. <편집자 주>


지저대사각활처只這大死却活處는
고불古佛도 역불회도亦不會到라
소이도所以道호대
지허노호지只許老胡知하고
불허노호회不許老胡會로다.
다못 이 크게 죽어 문득 산 곳은
옛 부처도 또한 알아 이르지 못함이라.
그런 연고로 이르노니,
다만 늙은 노승이 앎(知)을 허락하고
늙은 노승이 앎(會)을 허락하지 않음이로다.


금일今日은 계사년癸巳年 하안거夏安居 입제일入齋日이라. 모든 대중은 각자 화두話頭를 성성惺惺하게 챙겨 일념一念이 지속指續되게끔 혼신의 노력을 다 할지어다.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가? 하고 빈틈이 없도록 하루에도 천 번 만 번 챙기되, 화두 한 생각이 흐르는 물처럼 쉬지 않고 흘러가도록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의심으로 화두를 밀고 밀지어다. 그렇게 무한히 노력하다보면 문득 화두일념話頭一念으로 삼매三昧에 들어 보고 듣는 모든 감각을 다 잊은 바보가 되고 목석木石이 되리니, 그 상태가 한 달이고 일 년이고 흘러가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면, 비로소 억만년 전 자기의 참 모습이 드러나게 됨이로다. 그러면 마음의 고향에 이르러 모든 부처님, 조사祖師스님들과 더불어 무한한 진리의
낙樂을 누리게 되리라.


결제結制에 임하는 사부대중四部大衆이여, 사바裟婆의 일생一生이 가지가지로 험난한 것은 다겁생多劫生으로 지어 온 못난 죄업罪業의 그림자가 항시 따라다녀 밝은 지혜智慧가 가리어져 있기 때문이니, 그러한 죄업의 그림자가 다 소멸된 이는 장애가 없어 뜻하는 대로 만사萬事를 원만히 성취해가는 법이로다.
그러니 모든 대중이 위없는 신심信心과 무한한 정진精進의 힘으로써, 이렇게 일상생활 가운데 마음의 지혜를 계발하는 참선법參禪法을 잘 닦고 행한다면, 나날이 남보다 앞서는 선견先見의 혜안慧眼을 갖추어 모든 악조건을 없애가리라.
금생今生에 견성見性하지 못하면 어느 생生에 또다시 이 견성법見性法을 만나리오. 모든 대중은 발심發心하고 또 발심하며 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석일昔日에 운문선사雲門禪師께서 법상法床에 올라 대중에게 ‘삼전어三傳語’를 들어 법문하셨다.
一, 여하시도如何是道닛고.
첫째는, 어떤 것이 진리의 도입니까?
二, 여하시如何是 제바종提婆宗이닛고.
둘째는, 어떤 것이 제바종입니까?
三, 여하시如何是 취모검吹毛劍이닛고.
셋째는, 어떤 것이 취모검입니까?


모든 대중이여, 산승이 어째서 팔만 사천八萬四千의 방편법문方便法門들은 마다하고 항시 이러한 어려운 법문法門을 하는가?
범부중생이 여러 생을 사람의 몸을 받더라 해도, 가장 높고 깊은 진리의 한마디 듣는 인연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희유한 일이고 매우 어렵기 때문이로다. 그 어렵고 심오한 법문이 귓전을 한 번만 스쳐 지나가더라도 많은 생에 지은 죄업의 그림자가 녹아 없어져 밝은 지혜가 드러나기 때문이니, 귓전을 스치는 한 마디의 법문일지라도 놓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 들어 금쪽같이 받아들여야 함이로다.
만약 사람이 있어 운문선사雲門禪師의 이 삼전어三傳語를 알아 얻을 것 같으면 일가견一家見을 구비俱備한 일방지사一方之師 대선지식가 되어 만인萬人을 지도指導하리라.
대중은 아시겠습니까?
직절근원인불식直截根源人不識이라
망망업식기시휴忙忙業識幾時休리요.
바로 근원根源을 끊음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지라,
많고 많은 업식業識을 어느 때에 쉬리요.



영축총림 통도사 하안거 결제법어
원명스님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지혜의 그물로 무명을 결박하라
 
대도상재목전大道常在目前이나
수재목전난도雖在目前難覩라.
약욕오도진체若欲悟道眞體인대
막제성색언어莫除聲色言語하라.
큰 도는 언제나 눈앞에 있으나
눈앞에 있어도 보기는 어렵네.
만약 도의 진실 체를 알고자 한다면
성색과 언어를 제하려 하지 말지어다.
세상의 일들을 세심히 관찰해 보면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진실을 찾아 나선 수행자입니다. 이 몸 또한 사대로 이루어 져 한 순간도 보존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무상의 이치를 스승삼아야 간절해집니다. 잠시도 머물러 주지 않기 때문에 여유부릴 틈도 없습니다. 늙었든 젊었든 무상의 화살은 인정을 베풀지 않고 냉정합니다. 공부인에게 이것이야 말로 제일의 선지식이라 하겠습니다.
이 무상선지식을 얼마나 절실하게 느끼느냐에 따라 공부의 성취가 판가름 납니다. 이미 제일의 선지식을 의지하고 문을 나섰습니다. 수행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어떤 때는 까마득한 절벽 같기도 하고 길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더 이상 숨을 쉴 수조차 없습니다. 끊임없이 부딪쳐오는 난관들을 인욕으로 이겨내기만 하면 서서히 길이 보이고 숨통이 터집니다.
나무에는 새싹이 돋은 것이 보이고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흐르는 물은 끊임없이 반야의 도리를 설하고 있음을 압니다. 그제야 찾으려던 도가 목전에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이 모두 그 이치를 깨우쳐주기 위함임을 알고 무릎을 치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 좋다 나쁘다는 분별을 없애고 귀에 들리는 것을 통해서 시비를
끊게 됨을 노래합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개의 향을 사룹니다. ‘이 한 조각 향은 어디에서 나왔는고?
내 한 조각 마음에서 나왔구나. 피어오르는 향 연기를 관하면서 일체중생이 모두 본원자성을 밝혀 지이다’라고 발원합니다. 이것이 부처님과 역대조사와 시주의 은혜를 갚는 길입니다.


그토록 간절하게 깨달음을 구하려한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구원하고 위태로운데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욕심의 곤궁에서 자유로워지게 하고 진실로 각자가 부자 되는 길을 깨우쳐 주는데 있습니다.


방하자재放下自在라 했습니다. 수행자의 흉중에는 차별심이 없어야 합니다. 나를 흐트러지게
하고 남을 허물어지게 하는 것이 차별하는 분별에서 비롯됩니다. 조금이라도 고개를 치켜들면
곧바로 단제해 버려야 합니다. 오직 무한자비로 무변중생을 품어 안으려면 유마의 방장처럼 마음이 호호탕탕해야 합니다.
순리의 흐름을 따르면서 애써 특별한 도리를 알려하지도 말고 지혜의 그물로 무명을 결박해서 다시는 생사의 수레바퀴가 돌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백계천방개위신百計千方皆爲身이나
부지신시진중진不知身是塵中塵이라.
막언백발무언어莫言白髮無言語하라.
차시황천전어인此是黃泉傳語人이리니.


이런 저런 온갖 방편으로 몸을 위한다지만
이 몸은 한낱 보잘 것 없는 먼지인줄 모르네.
백발이 말없다 하지 말라.
이는 황천의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리니.


 


해인총림 해인사 하안거 결제법어
법전스님해인총림 해인사 방장


조사께서 동쪽으로 오신 적이 없다
보응복우寶應福遇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전한 종지의 분명한 뜻은 어떤 것입니까?”
이에 선사는 말했습니다.
“바람은 샘물소리를 침상寢牀으로 실어 보내고, 달은 꽃그림자를 창窓 앞에 옮겨 놓았구나.”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묻는 화두는 선가禪家의 시작인 동시에 종문宗門의 끝입니다. 일천칠백개의 모든 공안이 이로부터 시작되었고 또 이것으로써 끝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출가의 시작도 이것이요 열반의 끝도 이것입니다. 총림대중의 하안거 결제 역시 이것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며, 하안거의 마지막 날도 이것으로 끝을 맺어야 할 것입니다.
남악회양 선사가 조사서래의를 물어오자 이에 혜안慧安선사는 매몰차게 말했습니다.
“자기생각은 말하지 않고 남의 생각을 물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질문을 백번 해봐야 한번도 절대로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질문하는 시간까지도 공부시간으로 돌리는 것이 훨씬 더 수지맞는 일입니다.
알고보면 진실한 불법은 전할 법도 없고 구할 법도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현사사비 선사의 “달마대사는 중국 땅으로 온 적도 없고 제2조 혜가도 인도로 가지 않았습니다.”라는 답변에 설봉의존 선사는 기꺼이 인가를 했던 것입니다.
이번 하안거에 보응복우 선사의 서래의西來意 귀착점을 알아차린 납자는 비로소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뒤 일주일 동안 방문을 닫아걸고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던 일과 유마거사가 불이법不
二法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서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던 선인의 그 살림살이를 제대로 알게 될 것입니다.
올 하안거에도 ‘조사서래의’ 화두를 성성적적하게 들고 정진한다면 해젯날 서쪽을 향해 빙그레 웃게 될 것입니다.
점석화위금옥이點石化爲金玉易거니
권인제각시비난勸人除却是非難이로다
돌에 점을 찍어 금과 옥으로 바꾸는 연금술은 쉬운 일이지만
사람들에게 시비를 떠나라고 권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구나.


덕숭총림 수덕사 하안거 결제법어
설정스님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자기 집 보배는 아무리 써도 부족함이 없다


마조선사가 말씀하시기를, 대도大道는 닦을 것이 없으니 물들지 않으면 된다. 무엇이 물들음인가? 생사심生死心으로 작위作爲와 지향指向이 있게 되면 모두가 물드는 것이다. 대도를 당장
알려고 하는가?
평상심平常心이 도道이다. 무엇이 평상심인가?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고 취사가 없고, 단상이 없으며 범성이 없는 것이다. 도는 바로 법계이다. 나아가서 항하사恒河沙 만큼의 오묘한 작용까지도 이 법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심지법문心地法門을 말하며 무엇 때문에 다함없는 법등을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일체법은 모두가 마음법이며 일체의 명칭은 모두가 마음의 명칭이다. 만법이 모두가 마음에서 나왔으니 마음은 만법의 근원이다.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알아 본원을 통달하였으므로 사문이라고 한다 하였으니 이 본원本源자리에서는 명칭도 평등하고, 의미도 평등하고, 일체법이 다 평등하여 순수하고 잡스러움이 없다.
모두 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세워도 되고, 싹 쓸어 버려도 된다. 모조리 오묘한 작용이며 그대로가 자기이니 진여를 떠나서 세울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운 그 자리가 바로 진여眞如이며 자기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사마외도邪魔外道다.
일체법이 불법이고 모든 법이 바로 해탈이다. 해탈이 바로 진여이니 모든 법은 진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이 모두 불가사의한 작용으로써 시절인연을 기다리지 않는다.
경에 말씀 하시기를 곳곳마다 부처님 계신 곳이라 하였다.
자! 말해보라. 이곳에 모인 대중들의 삶은 어떠한가?
정토의 삶인가? 예토의 삶인가?
역겁분명약대허歷劫分明若大虛
하노공방수선정何勞空房修禪定
자가진보처처재自家珍寶處處在
통천진지용무한通天盡地用無限
역겁에 분명하기가 허공과 같네.
무엇 때문에 공방에서 선정을 닦을 것인가
한량없는 자기 집의 보배는
하늘땅이 다하도록 써도 부족함이 없더라.


조계총림 송광사 하안거 결제법어
보성스님조계총림 송광사방장


간절한 생각 잊지 말고 정진해주기를


‘외식제연外息諸緣하고 내심무천內心無喘하라.’
대중들 모두 여기로 다 인도하여 갈 겁니다. 역사적인 이 장소에 모인 목적을 간절히 살펴볼
때, 여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한 달이 좀 안 되었습니다. 틱낫한 스님이 오대산, 서울, 부산에서 법문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일행 중에 나이가 일흔 아홉 된 분이 있었기에 물어보았습니다.
“언제부터 공부를 시작했습니까.”
“예 한 십여 년 됩니다.”
“무슨 공부를 합니까.”
“스승의 지도에 따라 호흡법을 공부합니다.”
“들숨 날숨을 잘 조율합니까.”
“예, 조율이 이제 조금 됩니다.”
“과거에서는 무엇을 했습니까.”
“저는 가톨릭이었습니다. 호흡법을 배우니 무상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종교도 좋지만 제가 먼저 호흡을 잘 조율할 줄 알아야 내 모든 것이 어디서 출발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기에 저는 자신을 가졌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법문도 많이 듣고 경험도 많이 했을 겁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무덥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인 만큼 내 정진을 게을리 않겠다는 다짐을 더욱더욱 부탁드립니다. 내 스스로가 다짐해야합니다. 누가 대신 다짐해주지 않습니다. 지금 이 때가 아름다워야 미래가 아름답습니다. 지금을 헛되이 보내게 되면 미래에 다가오는 것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각자가 간절한 생각을 항상 잊지 말고 정진해주기를 나는 오직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