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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은 생명력이니 발심하여 수행하는 불자가 되자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군종교구장


『칭찬대승공덕경稱讚大乘功德經』과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에 팔공덕수八功德水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달고, 시원하고, 부드럽고, 가볍고, 깨끗하고, 냄새가 없고, 목이 상하지 않고, 배탈 나지 않는 물을 팔공덕수라 하였습니다.
오늘은 합창단의 음성공양이 경쾌하고 시원하고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음성공양은 목마른 우리들에게 감로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정진 중에 신명나게 기도하는 불자들의 모습은 연꽃으로 핀 환희법열의 법석이었으며 팔공덕수가 되었습니다.


과거, 백팔대참회를 3번씩 하면서 백고좌법회를 했던 화엄산림의 기억들도 우리들의 마음을 신심나게 합니다. 주지스님과 대중스님들, 봉사자와 합창단에게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감사와 찬사를 보냅니다.


세상일은 재미가 없으면,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라 하였습니다.
일각은 15분입니다. 그런 시간時間들을 절에서는 언제부터 이었을까요. 새벽예불 시간도 들여다보면, 도량석, 종성, 부처님 전에 칠정례七頂禮와 행선축원, 반야심경, 천수경, 관음정근 등 기도시간은 15분 간격으로 이어지게 하였습니다. 일각이 여삼추인 시간들을 지루하거나 산만하지 않도록 우리들 마음을 일념의 시간이 되도록 이어지게 하는 기도 방법은 조사 스님들의 보리심이며 지혜로운 수행법修行法이었습니다. 
이번 ‘붓다지佛陀誌’에는 어렸을 때 고향에서 소풍 다니던 절, 부모님이 다니시던 절, 지금 다니고 있는 절, 이전에 다니시던 절의 인연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여기 구룡사 인연으로 불교와 인연을 맺었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생, 전생, 전생으로부터, 부모님, 이웃, 친척, 다양한 인연으로 불교를 믿고 귀의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구룡사나 여래사와 인연 맺기 이전에도 다니던 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좋은 도량에서 만났을 때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누는 선근을 가졌으면 합니다. 불자로서 인사를 하자는 것입니다. 조계사는 조계종의 총본산인데, 조계사를 왜 못 갑니까. 불자 중에 구룡사 다니기 이전에는 강남 봉은사 다니던 불자들이 가건물 법당에서 부처님 금란가사 친견법회에 오셨다가 인연 맺고 지금도 다니고 계시는 불자들이 많습니다.
구룡사 신도信徒 하면, 구룡사에 예속되고 속박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구룡사 불자佛子이어야 합니다.
구룡사의 좋은 도량에 오셔서 부처님의 제자로서 신심을 키우는, 그런 불자이어야 합니다. 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종교를 가져야지, 거기 그 종교에 속박당하고 구속되어지는 불편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발심이 중요합니다. 발심을 해야 보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살이 진지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정진력精進力이라 합니다. 불보살님과 함께 회향廻向 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5월 달은 사찰에 작은 소액환이라도 보내자는 것을 제안한 것입니다.
불자는 시주의 개념과 공양의 개념과 보시의 개념을 구분 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전국 사찰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야기들을 수없이 듣는 현장에서 보는 일들이 많습니다. 법당에서는 많고 적음은 형편 따라 개인적인 일이지만, 그러나 반드시 내가 스스럼없이 행할 수 있는 보시는 가지고 하라는 것입니다.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은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고, 그 돈은 내 스스로 사용해도 문제없는 돈이어야만 진정한 보시인 것입니다. 그 이상 가지고 있는 것은 과욕입니다. 내 범주 안에서 보시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불전함에 시주금을 넣는 것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입니다. 불전함에 이름 적어서 넣는 사람 없습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것을 보시라고 합니다. 시주와 공양은 마음을 내어서 지극한 정성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불사佛事가 무엇입니까. 부처님 일입니다. 부처님의 일은 중생을 위하는 일들입니다. 그 이외의 것들을 부처님은 하신 일이 없습니다.
불사는 시주만 가지고 해야 하는 것으로 아는데, 시간도 돈입니다. 그런 곳에는 수희동참하여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공양供養에도 세 가지 공양이 있습니다. 법공양, 물질공양, 근심과 두려움을 덜어주는 무외시공양이 있습니다.
그런데 법공양이라고 하면 부처님의 경전이나 만들어서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에 보면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도 법공양’이라고 하였습니다.
공양은 내가 근검절약하게 살면서 검소하게 살아가는 살림살이로, 내가 모은 재산을 올곧게 쓰여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불자의 행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보리심이 있어야 합니다. 보리심은 여러 가지 덕을 갖추고 있는데, 보리심이 있어야 신심도 견고해 지고 선근도 장양됩니다. 『화엄경華嚴經』에서 미륵보살이 선재동자의 덕을 게송으로 찬탄한 내용이 있습니다.


‘원만하고 인자하신 이여, 잘 왔도다. 잘 왔도다. 청정하고 자비하신 이여, 잘 왔도다. 고요한 눈 수행하기에 게으름이 없어라. 잘 왔도다. 잘 왔도다. 모든 법 두루 내어 다 알며 수행의 고달픔을 모르는 이여.’


『화엄경』에서 이르셨습니다.


“중생들은 내 복밭이고 선지식이다. 찾아 나서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았는데 몸소 찾아와서 나를 바른 법에 들게 하는구나. 나는 이와 같이 배우고 닦아서 한 중생의 마음도 어기지 않겠노라.”


이런 마음이 보살의 마음임을 알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계셔서 출가자들이 이만큼이라도 사는 것입니다. 임시공휴일이 많아서 이웃 종교는 매우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 불교는 오히려 다행입니다. 산길은 잘 열려있고, 기차를 타면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이런 연휴에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심산유곡深山幽谷에 명산대찰名山大刹이 있습니다. 우리는 명산에 큰절이 있습니다. 연휴로 인해 불자들은 명산으로 길을 떠나면 사찰을 가게 될 것이니, 저절로 참배할 수 있는 도량을 갔으니, 그냥 지나쳐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닷가에도, 섬에도, 육지에도, 좋은 곳에는 좋은 도량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나누면 됩니다. 여기에 보시하려 한 것을 설령 형편이 여의치 못해 그곳에서 나누게 되어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통도사에 큰 뿌리를 둔 불자들이 먼저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사찰에는 4재일이 있고 6재일도 있고 10재일도 있습니다.
21일 발심정진기도 하는 불자들과 소임자 스님들은 방편을 들어 인연을 지어 연결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간들의 마음을 드러내는 일에 동참하고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asanjung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