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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성지순례기<2>

본심행 구룡사 불자


넷째날
부처님의 고향 카빌라성으로 이동, 이곳도 터만 남아있다. 이곳에 오니 북쪽이라 그런지 기온이 떨어져 추웠다. 부처님은 이곳에서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7일 만에 마야부인이 세상을 떠나시고 이모인 마하프라자파티에 의해 양육되고 이모는 후에 최초의 비구니가 된다. 16세에 아쇼다라 공주와 결혼, 라훌라(장애라는 의미)가 태어난다. 부처님은 29세에 출가하시게 된다.


다섯째날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로 가기 위해 네팔 국경을 통과하기 전 수십 킬로미터를 길게 줄지어 있는 수많은 트럭들이 길가에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인도와 네팔 사이가 좋지 않아 네팔로 들어가는 물자를 실어 나르는 트럭들을 인도에서 막고 있다 한다. 심각한 문제로 유엔에서도 중재에 나섰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어 몇 개월째 트럭에서 지낸다고 하니 보통일이 아니다.
한참을 기다려 국경을 통과했다. 우리는 그래도 순조롭게 통과 한 거란다. 인도도 그렇지만 네팔에 들어서니 열악하고 더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도 네팔인이 1년에 3~4천 명씩 들어오는데 적응을 못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룸비니 동산에 도착했다. 부처님의 이름은 싯다르타인데 아버지 정반왕은 샤카족 출신으로 카필라바스투라는 작은 나라의 왕이었다. 왕비인 마야부인이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 후 태기가 있어 출산을 하기 위해 친정으로 가던 중 이곳 룸비니 동산에서 출산을 하게 된다. 마야부인이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던 중 이곳 룸비니 동산에서 출산을 하게 된다.
순례가 오랜 시간 버스로 이동해야 되고 힘들지만 룸비니 동산을 오게 되다니 벅차고 감격스럽다. 마야부인을 위한 사원 마야데비 사원 안에 들어가니 마야부인이 지냈던 터가 남아있다. 붓다가 태어나신 하얀 건물 앞에 마우리 왕조의 아쇼카 대왕에 의해 세워진 아쇼카 석주가 서 있고 아쇼카 석주에 쓰인 비문이 이곳이 붓다의 탄생지라는 곳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고 한다.
룸비니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기도 쉽지 않아서인지 탁발하고 앉아 계시는 스님들도 깡마르시고 거의 구걸 수준으로 앉아 계시는데 처량해 보여 조금씩 보시를 했는데 이곳에 보시를 더 많이 할 걸 후회도 된다.
네팔 국경을 지나 인도로 가는 길가 가게에 림나무잎에 무슨 재료를 넣어 만들면 사람들은 그걸 사서 씹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길가에 뱉는데 빨갛다. 씹는 담배라고 한다. 저것도 중독되겠지? 열반당 가는 길에 씨름 대회를 하는 걸 우리는 차에서 잠시 내려 구경을 하였다. 튼튼하게 생긴 여자아이가 이겼나보다.
다시 버스를 타고 네팔 국경을 지나 인도 부처님 열반지 쿠시나가르로 향했다. 거리상 탄생지에서 곧바로 열반지를 들리게 된다. 부처님은 열반하시기 3개월 전 춘다의 망고나무숲에 도착하신다. 춘다는 대장장이의 아들로 부처님께 마지막 공양을 올린 사람이다.
춘다가 주는 전단향 버섯음식을 먹고 속이 불편하여 쿠시나가르에 도착하기까지 25번이나 휴식을 취했다고 하니, 고통이 극심했음이 짐작 된다. 그리고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시게 된다. 이때가 기원전 544년 2월 15일이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라. 또 법을 의지하며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 모든 것은 덧없으니 쉼없이 정진하라.”
부처님께서 마지막에 남기신 유명한 말씀이다.
이곳에 오니 수많은 불자들이 좁은 열반당 안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우리도 좁은 열반당 안에서 스님과 기도를 하였다. 기도 후 부처님께 가사를 입히는 의식을 하는데 우리가 여기서 부처님께 가사를 입히다니,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열반상은 6.1미터의 길이에 기원 후 5세기 경 만들었으나, 복원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열반당 안에서는 좁고 복잡해서 기도를 제대로 못해서 열반당 바깥에 나와 자리를 잡고 금강경을 읽었다. 나도 몸은 힘들지만 성심을 다해 기도독송을 하였다.
아주 왜소해 보이는 빗자루를 들고 있는 인도사람이 기도 자리를 청소를 했으니 돈을 달라는 듯 서 있다. 불쌍해 보여 10루피를 줬다. 이 사람 저 사람들이 돈을 준다. 열반지엔 하나는 열반상이고 하나는 아쇼카 대왕이 지은 열반탑이란다. 해가 저물고 열반당에서 하루를 마무리 하면서 석양을 배경으로 찍은 열반당 사진이 멋지다.


여섯째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3개월 전 바이샬리에서 아난에게 열반에 들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여 부처님이 병든 몸을 이끌고 마을을 떠나 열반의 길을 걸어가실 때 라치비족들은 다시 못 볼 것이라는 생각에 부처님을 따라 오자 부처님은 케샤리아에 오셔서 내가 너희에게 줄 것은 발우밖에 없다하여 부처님은 발우를 물에 띄워 바이샬리 라치비족에게 보냈다.
케샤리아 발우 기증터에 오니 보기에도 발우 모양의 탑이 크게 서 있다. 사진도 찍고 다시 바이샬리로 이동한다.
버스를 타고 바이샬리로 이동 중 인도 불자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여행사 대표님이 무척 반가워하신다. 인도에 잘 볼 수 없는 불자의 모습이었다. 천민들 같았는데 인도 초대 법무부 장관 암베르카드 고향에서 오신 불자들이란다.
암베르카드는 인도의 초대 법무부 장관이었는데 카스트에도 포함되지 않는 불가촉천민 출신이다. 그는 힌두교의 부조리함을 몸소 체험하고 오랜 기간 동안 불가촉천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였다. 1935년 힌두교를 버리고 수많은 천민들과 함께 불교로 집단 개종을 하였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할당제라는 전무한 제도를 만들어 지금도 시행하고 있어 인도인이 조금은 평등하게 되었다. 분명 간디와 함께 존경받는 인물이다.
바이샬리에 도착했다. 바이샬리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지 10년 정도 지나 제정이 축적되자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 700여 명의 수도자들이 모여 2차 결집을 한 곳이다.
초기 대승경전인 유발상좌 유마거사에 의한 유마경(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이 주고받는 대화)을 설하시고 비구니 스님이 출범한 곳이다.
아쇼카 대왕이 아난존자의 기록을 새겨 아쇼카 석주를 세운 곳을 구경하였다. 룸비니에 있는 아쇼카 석주는 기둥만 있는데 여기 있는 아쇼카 석주는 남아있는 것 중 가장 완벽한 모습이란다. 석주 위에 있는 사자상이 룸비니를 향하고 있다. 이곳은 기녀가 부처님 설법을 듣고 감동받아 망고 동산을 기증한 곳이기도 하다.
다시 바이샬리를 출발하여 영축산 가는 길의 버스 안에서 여행사 대표님이 2미터도 넘는 바나나 꾸러미를 통째로 가지고 와서 나눠주는데, 작은 바나나가 달고 맛있다.
가는 도중 길가 가게에 즐비해 있는 인도 전통 과자 가게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사서 주는데 너무 기름지고 달다. 아직 인도 길거리 음식은 적응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