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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차나무

숲에서 배우는 불교


세계사를 바꾼 차나무


홍성범
숲해설가


불자들과 친숙한 차는 후추와 더불어 세계 역사를 바꾼 작물 중 하나이다.
홍차조례에서 보스턴 차 사건으로 이어지는 미국 독립사의 서막도 그렇고, 중국 아편전쟁의 주요 원인도 대영제국 내에서 차가 유행하면서 발생한 대영제국과 청나라 간의 경상수지 불균형이다.
아편전쟁 후 청나라는 동북아의 패권을 상실했고, 그 이후 아시아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을 생각해 보면 차가 세계 역사를 크게 바꾼 작물이라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차(茶, tea)는 차나무 잎을 비롯한 식물성 재료를 물에 우려 만드는 음료이다. 찻잎으로 우린 허브 특유의 은은한 맛과 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차를 즐긴다.
‘차茶’는 원래 차나무와 그 잎만을 가리키는 한자였다. 차나무는 히말라야산맥, 동남아, 중국 중남부 등지에 분포하는 상록수다. 차나무는 본래 키가 3~4m 남짓한 교목이지만 가지치기를 자주 하고 잎을 많이 따다 보니 식용으로 재배되는 나무의 경우 대개 1m 정도다. 중국에는 1천년 묵은 차나무 숲이 있는데 그곳의 차나무는 전부 아름드리나무다.
차는 동백과 나무로 외형상 동백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잎의 성질은 아주 다르다. 오로지 차나무의 잎만 식용으로 사용한다. 잎을 따서 가공한 후 물에 우려 기호식품으로 사용한다. 그 외에 흰색의 작은 꽃을 따다가 찻잎에 향을 입혀 즐기기도 하는데 진하고 달콤한 향이 난다.
차를 본격적으로 애용한 곳은 중국이다. 당초 중국에서는 차를 가지고 다니며 마시도록 고형으로 굳힌 ‘병차’가 유행했다. 병차는 단차의 일종으로 필요할 때마다 차 덩어리를 부숴 덖어서 마셨다.
민중들에게 확산된 것은 당나라 이후다. 당나라 때 중국이 통일되고 불교가 융성하면서, 후세에 다성茶聖이라고 불리는 육우가 『다경茶經』을 저술해 최초로 체계적인 다도를 퍼뜨리며 스님들이 마시던 차가 민간에까지 퍼졌다.
당나라 당시 선禪사상이 유행했는데 불교사원에서 참선할 때 정신을 맑게 해주는 약으로 차를 마셨다. 차를 약으로 마실 때는 덖기보다는 가루로 빻아 그대로 마셨다.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서는 차는 높은 인기 덕분에 전매품목이 되기도 하였다. 송대의 차 문화는 찻잎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찻잎을 빻은 가루를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는 차를 ‘말차’라고 한다. 말차는 이후 일본에 전래되었으나 송나라가 멸망하면서 정작 중국에서는 맥이 끊겼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후반부터 마시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에는 당나라에서 수입한 고가의 차를 일부 계층만이 마실 수 있었고, 통일신라 흥덕왕 시기인 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대렴이 차나무 씨앗을 들여와 재배를 시작하면서부터 차 마시는 것이 대중화되었다.
한반도에서 차나무는 중부지방 이북으로는 추워서 기르기 어렵고 주로 남부지방에서 재배한다. 지리산 자락에 접한 경상남도 하동군, 전라남도 장흥군(청태전), 보성군(보성녹차)과 제주특별자치도 지역에서 잘 자라고 유통되는 대부분의 물량을 생산한다. 그 외 광주 무등산이나 부산 금정산처럼 남부지방 여러 곳에 중소규모로 차를 재배하는 다원이 분포해 있다.
최근에는 충청남도 청양군에 있는 온직다원과 아산시에 있는 신수다원처럼 내한성을 가진 차나무의 육종 성공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점점 재배지가 북상하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강원도 고성군의 화진포산학다원은 북위 38도에 자리하고 있다.
차는 차나무의 잎을 우려 마신다. 잎을 우려서 마시는 차가 동아시아의 문화로 자리 잡다 보니 나중에는 차나무 잎뿐만이 아니라 다른 풀잎이나 꽃, 뿌리 등 식물성 재료를 우린 물도 ‘차’라 부르게 되었다. 보리차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유자차나 율무차처럼 식물성 재료를 우린 음료수를 모두 일컫는 명칭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대추차, 인삼차, 생강차 등은 원칙적으로는 대추탕, 인삼탕, 생강탕이 되어야 하고 식품분류상으로는 차가 아니다. 하지만 관습상 부르던 언어의 의미 확장을 존중하여 이를 ‘대용차代用茶’라 부른다. 실제로 쌍화차의 경우는 쌍화탕에서 유래된 음료이다. 원래 이런 음료들은 우린 물, 한자로 탕湯이라 불렀다. 마찬가지로 허브티, 커피, 마테차도 원의로 따지면 차가 아니다. 원칙적으로 차나무의 잎을 우려낸 엽차, 말차, 홍차 등만 차로 취급하고, 나머지에 차란 단어를 붙일 때엔 원칙상 ‘대용차’라 해야 옳다.
커피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왔을 때, 민간에서는 이를 양탕洋湯 또는 양탕국이라 불렀으나, 왕실에서는 가배차(珈琲) 또는 가비차(珈非)라고 불렀다. 여기에서도 탕과 차의 의미를 혼용하여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은 정약용 시절보다 의미가 더욱 넓어져 여러 가지 재료를 섞었거나, 혹은 단순히 식물성 재료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음료수를 모두 차라고 부르기도 한다.
차를 마시면 비타민과 미네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 식물의 대사산물인 플라보노이드가 풍부하여 항산화 효과가 있고 면역력을 증강시킨다. 특히 카페인, 카테킨, 테아닌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테아닌은 심신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을 주어 정신적인 안정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한편 카페인이 강한 찻잎을 모아 영국에서 브랙퍼스트 티처럼 이른 아침에 잠을 깨는 용도로 마시기도 한다.
카페인은 알카로이드라는 독성물질의 일종으로 원래 식물이 곤충 등 동물로부터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생성하는 물질의 하나이다. 카페인의 화학구조는 니코틴이나 모르핀과 흡사해 신경을 흥분시키는 작용을 한다. 차를 마시면 잠이 잘 오지 않고 머리가 맑아지는 이유다. 독과 약은 동전의 양면이다.
카페인은 Coffee에서 발견한 물질이다. 커피 원료인 커피나무는 꼭두서닛과 식물로 차와 마찬가지로 카페인을 지니고 있다.
세계 3대 음료이자 카페인을 공통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홍차, 커피, 코코아의 원료는 차나무, 커피나무, 카카오나무다.
그러나 차는 커피와는 다르게 카테킨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카페인이 체내로 흡수하는 것을 줄여주기 때문에 커피보다는 카페인 부작용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영국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계급으로 부상한 노동자들이 졸음을 쫓아내고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한 음료로 마시기 시작한 홍차는 노동 효율을 높여 준다고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급한 일이나 시험을 앞두고 집중하기 위해 기대는 물질 중 하나가 카페인이다.
차나무에 들어있는 카페인이라는 독성분이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류의 마음과 영혼까지 사로잡은 것이다.
카페인을 함유한 차나무는 이를 손쉽게 얻기 위한 제국주의의 필요와 맞물려 의도와 달리 마침내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은 것이다.
세계사를 바꿔 놓은 차를 마시며 세상사를 더 깊이 음미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