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운
텃밭농부
여름이다. 여름은 맺힘의 시절이다. ‘여름’이란 말의 어원은 열매가 열리는 자연현상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열매의 옛말은 ‘녀름’이다. 북한 지역에서는 지금도 열매를 녀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르완다어의 ‘nyura+mo’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도 있다. nyura는 만족시키다 또는 가득 채우다는 뜻이며, mo는 그곳 또는 ~함을 가리킨다. 즉, 과실이나 농작물, 산천초목 등 모든 곳이 풍요롭게 가득 채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장과 풍요의 계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 여름은 열매를 맺어가는 계절이지만, 우리가 떠올리는 여름의 이미지는 풍요롭지 않다. 거칠다. 인간의 생존 한계를 절절하게 느끼게 해준다. 버티어 이겨내야 하는 고난 그 자체이다. 땡볕, 무더위, 장마, 폭풍의 한 가운데다. 병을 퍼뜨리는 바이러스가 활개친다. 파괴와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저절로 되어가지는 않는다. 시절인연이라 하듯 조건이 때에 맞춰 만들어져야 결과를 얻는다. 밭에 여름이 들었다고 하여 저절로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사람의 행위가 보태져야 마땅히 먹을 만한 결과로 이어진다. 김을 매어주고, 때때로 거름을 넣어주고 물을 대주어야 한다. 작물을 빨아먹는 벌레도 쫓아내야 한다.
고추는 추위를 견뎌내는 중
필자는 지금 여름 밭에 서 있다. 올해 내 텃밭의 주 작물은 고추다. 5월 중순에 모종 50그루를 사다가 심었다. 중부지방을 기준으로 고추는 대체로 5월 초까지 파종을 마쳐야 한다. 그러나 올해에는 파종을 늦췄다. 고추는 최저 기온이 15도 이상이어야 하는데, 10도쯤으로 내려앉은 날이 많았다. 중앙아메리카의 고온건조한 지역이 원산지인 고추는 추위를 싫어한다. 그래서 파종 시기를 늦췄는데, 웬걸 5월 말이 되어도 최저 기온이 오르지 않는다. 고추는 지금 추위를 견디느라 온힘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고추는 우리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양념이다.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김장 때 쓸 고춧가루를 내려고 한다. 고추장아찌도 담그려 한다. 작년에는 장마를 이기지 못했는데, 올해는 어떨지. 긴 장마를 대비해 이랑의 폭을 넓히고 높이도 올려 물빠짐을 좋게 했다. 토마토, 오이, 가지, 수박, 생강, 감자, 상추도 내 작물 목록이다. 다년생 작물도 있는데, 그것은 더덕, 고사리, 아스파라거스다.
고사리를 생각하니 얼마 전 한 지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는 고사리를 꺾다가 문득 경전 속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우화가 떠올랐다고 한다. 산 속의 고사리는 대개 자연 번식하는데, 바람에 날아간 씨가 싹을 틔워 밭을 이룬다. 심지도 않았거니와 가꾸지도 않았는데, 매년 봄이 되면 싹이 무더기로 올라온다. 끓는 물에 데쳐놓으면 아주 좋은 찬거리가 된다. 야산과 들판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봄이면 취, 쑥, 냉이, 달래가 지천이다. 장마가 지난 산에는 버섯이 수두룩하다. 도라지, 더덕, 잔대도 심고 가꾸지 않아도 내어준다. 들판과 산을 그대로 두면 된다. 바다도 그렇다. 그러고보니 지구 전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밭을 일구다보면 좋은 밭이란 무엇인가, 이런 생각이 일어난다. 많은 결실을 내어주는 밭이 일반적으로 좋은 밭이다. 나에게 좋은 밭이란, 내가 흘린 땀이 배어 있는 곳이다. 땀뿐이 아니다. 이랑을 고르고 북을 주면서 허리가 아파 저절로 터져나오는 ‘아이고’ 하는 내 몸의 소리가 흐르는 땅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일구는 밭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밭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다름없다. 
밥상물가 못 잡는 정부는 ‘무능’
최근 일본의 쌀 소동이 관심을 끌고 있다. 가게의 진열대에는 쌀이 없고, 있어도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밥을 주식으로 삼기에 쌀 품귀와 가격 인상은 서민들의 생활을 힘들게 한다. 식당도 비상이 걸렸다. 쌀값이 오르니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 밥의 양을 줄이는 대신에 스파게티면을 섞어 내놓는다는 뉴스를 보았다. 농림성 장관이 교체되었다.
일본은 물론이고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는 쌀값에 민감하다. 일본은 여러 차례 쌀 소동을 겪었는데,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아 식량 기지로 삼기도 했다. 쌀 파동은 내각이 총사퇴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어느 나라든 밥상 물가를 잡지 못하는 정부는 무능한 정부이며, 물러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쌀 소동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원인을 알아야 해법을 내놓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대체로 세 가지 원인을 내놓는다. 첫째 원인은 기후변화. 지난해 일본에도 고온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벼가 꽃을 내미는 시기에 고온을 겪으면 쌀알의 결실이 미숙하게 된다. 일본은 내냉성 품종을 주로 재배하는데, 이는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맛을 내기 때문이다. 전체 생산량은 내려가지 않았는데, 고온으로 제대로 여물지 못해 싸라기가 많이 발생했다. 두 번째로 제기되는 원인은 사재기다. 난카이 대지진을 우려하면서 사재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세 번째, 여행자가 늘어나 소비가 늘었다는 것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일본의 사례를 우리나라에서도 예민하게 바라보고 있다. 물가가 오르는 것은 공급량에 미치지 못하는 생산량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은 공급량을 웃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은 공급과 수요만이 가격을 결정하지 않는다.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다. 공급이 불안정하다고 느끼면 시장은 요동친다. 이런 상황에서 중간상들이 이득을 취하려고 사재기라도 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생산량과 공급량보다 정부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밥상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예민하다. 한 가지라도 원활하지 않으면 민심은 크게 출렁인다. 이명박 정부 때 배추 파동이 발생했다. 이 대통령은 배추 대신 양배추로 김치를 담가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는데, 이 말이 국민들을 화나게 했다. 배추 수급을 원활히 하는 일에 진력해야 될 상황에서 입맛을 바꾸라고 한 것이다. 입맛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을뿐더러 배추 공급을 원활히 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함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첫째 일은 자연에 대한 겸허
장마의 계절로 들어섰다. 일본의 장마는 예년보다 보름이나 앞서 다가왔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이른 장마라고 한다. 보통의 경우 오키나와부터 장마가 와서 서서히 북상하는데 올해는 그 위 지역부터 장마가 발생했다. 이것도 이례적인 현상이다. 중국에서도 최근 장마가 아닌데도 물난리를 겪었다. 거리가 강으로 변했고, 자동차가 둥둥 떠다녔다. 짧은 시간에 수백 밀리미터의 비가 쏟아지니 속수무책이다.
날씨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 기상과학이 발전하였다고 한들 날씨를 예측하는 일은 인간의 한계 너머에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의 할 일의 첫 번째는 겸허이다. 하늘이 하는 일을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부디 비를 내리되 고르게 내려주십사, 바람이 불되 꺾어지게는 불지 말아달라고 비는 마음이어야 하며, 이런 마음으로 지구를 보살피는 일이다. 지구는 지금 온난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둘째는 대비하는 일이다. 물길과 바람길을 내어 흐르도록 해주어야 한다.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매어주어야 한다. 셋째는 감사함이다. 그나마 먹을 것을 내어주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