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C. 두리틀
화가 겸 저술가
금광석이 브루클린의 지하에서 발견되다
두 명의 남아프리카공화국 형제 여행자들이 그 금광석의 소유권을 주장하다
본 기사는 2003년 6월 6일 (미국) 뉴욕시 자치구인 브루클린에서 발행된 『뉴스 속보』에 게재되었다.
 
우리가 어떻게 뉴욕시 자치구 브루클린 지하 반암에 숨겨진 금맥에서 금을 추출할 수 있는가?
그 상황은 지하 12,000 피트 이상의 위치에 있는 수개의 금광들이 주위에 위치하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조그마한 도시인 복스버그 출신의 시굴자 형제들인 찰스 밴더(55세)와 로저 밴더(57세)가 직면하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상황이었다.
그 두 형제들은 지난 주 뉴욕에 도착하였다. 그 두 형제의 사촌형제로 뉴욕시 거주민인 론 밴더(61세)는 브루클린 지하에 금맥이 있는 것 같다고 그들에게 언급하면서 “너희들이 금 발굴 전문가들로 금이 그곳에 있는 지 없는 지 여부를 직접 검토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론 밴더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들은 금의 존재 여부를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맨하탄의 G 지하 철도를 탑승한 이후, 그들은 브루클린의 애틀란틱 애버뉴-코트 스트리트 역에 도착하였다. 론 밴더가 그들을 안내할 사람으로 고용한 벤 샘슨(28세)이 그들을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샘슨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샘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한 지하철의 입구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사람들이 반암을 뚫어 터널 하나를 만들었다. 그 터널의 반암에 숨겨진 금맥이 발견될 수 있다는 소문이 이전에 돌았다.
애틀란틱 애버뉴 터널은 1844년 만들어졌다. 두 구동증기 열차가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터널은 반 마일의 길이와 폭으로 이루어졌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그 터널이 만들어진 후, 승객들은 20년 미만 기간 동안 그 열차를 탑승하였고, 바로 최근까지 그렇게 그 열차를 탑승하였다.
(관계 당국은) 여행자들이 한 차례에 몇 사람씩 그 터널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그들은
도로수준에 있는 한 맨홀(대피소)을 통해 터널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좁은 철제 사다리를 잡고
철로의 수준 단계에까지 조금씩 하강할 수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바닥에까지 도달한 이후, 몇 개의 벌거벗은 전구들로 밝혀진 긴 동굴 같은 공간이 밴더 형제 둘과 그들의 사촌형제 한 명 그리고 가이드 한 명으로 구성된 네 명의 방문 그룹을(반갑게) 맞이하였다. 터널의 네 측면 가운데 한쪽으로 좁은 도로가 뚫려 있었고, 그 도로는 매우 희미하게 보였다. 그들은 그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벽돌이 그 도로 주위의 터널 벽을 완전히 막아버렸지만, 그들은 때때로 반암의 반점들을 보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금광 시굴자 로저 밴더는 그 반점들 가운데 하나의 반점에 그의 시선을 갑작스럽게 고정하게 되었다.
로저 밴더는 호주머니에서 조그마한 플래시를 꺼냈고, 플래시의 광선을 그 반점에 집중시켰다. 그는 탁탁 두드리면서, “여기서부터 금이 있을 수 있다.”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그가 설명한 바에 의하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금괴도 아니고 금괴의 작은 조각도 아니었고, 금광맥의 주인의 역할을 하는 석영의 광맥이었다. 그가 해야 하는 것이 그들이 땅 위로 올라가서 금 검파기를 가지고 와서 (직접 금맥을) 검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들은 암반 안에 금이 있는지 없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광석 검파기를, 특히 금광석 검파기들을 우리의 손에 직접 넣을 수 없었다. 금광석 검파기의 구입은 우리가 월마트로 걸어가서 “저한테 최고의 금 검파기를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기계는 그들이 소형, 대형, 사용하기 쉬운 것, 그리고 복잡한 것,
이러한 수십 종의 모델들 가운데 선택할 사안이 아니다. 적당한 검파기를 선택할 임무가 찰스 밴더에게 맡겨졌다. 찰스는 일주일 이내에 그 검파기를 확보하겠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약속했다.
벤 샘슨에게 하직 인사를 한 이후 그리고 그가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 것에 대해서 감사말을 한 이후, 두 형제와 그들의 사촌형제인 론은 맨하탄으로 돌아가서 론은 그의 두 사촌형제들을 그의 아파트로 데리고 갔다. 술을 마시면서 그리고 즐거운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그들은 그들이 해야 할 다음 단계로 브루클린과 같은 인구 밀집지역의 지하에 있을 지도 모르는 금맥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론은 뉴욕의 로펌에서 현재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친구가 있다고 그의 사촌 형제들에게 말했다. 그 로펌의 변호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복스버그의 한 금광회사의 사내 변호사로 이전에 봉직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를 법률적으로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론은 믿었다. 그 변호사의 이름은 피터 프렌더캐스트이고 그의 로펌인 스미쓰, 브라운, 그리고 프렌더캐스트는 브루클린 지점을 두고 있었다. 론은 프렌더캐스터 변호사에게 전화를 하여 로저 밴더에게 전화를 바꿔주고, 프렌더캐스트 변호사에게 상세히 그 이야기를 설명하라고 로저 밴더에게 요청하였다. 그 변호사는 로저 밴더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며칠 이내에 로저에게 전화를 다시 하겠다고 말했다. 그 두 형제들은 그들이 머물고 있는 뉴욕시 소재의 호텔로 되돌아갔다.
브루클린 지하철 시스템의 관리담당 부사장인 존 스티븐슨(55세)은 (피터 프렌더캐스터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라고 소리를 질렀다.
스티븐슨이 밴더 형제들에 관련하여 들은 이야기는 본인이 일상생활에서 겪은 지하철과 관련된 이상하고 이국적인 일들을 초과하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가 그를 혼란스럽게 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항상 차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게다가, 때묻은 굴뚝 청소부 알프레드 P. 두리틀이(아일랜드 극작가) G.B. 쇼(1856~1950)의 연극 「피그말리온」에서1 “나는 신사이다. 나는 신사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그 사실을 회상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사실이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졌다. 그의 직원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 구절에 대해서 논쟁을 하였을지라도, 그는 종종 그 구절을 반복하였다.
프렌더캐스트 변호사가 스티븐슨에게 전화를 하였고, 스티븐슨은 그 변호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히스테리 반응을 일으켰다. 그는 논쟁의 소지가 있는 그 케이스를 심사숙고하지 않고 그 케이스에 관련된 모든 사실을 스티븐슨에게 솔직히 말했다. 스티븐슨은 밴더 형제들이 우선 크고, 정교하지 않고, 무거운 장치 하나를 좁은 철제 사다리를 통해 복잡한 브루클린 지역의 지하 수십 피트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희미하게 비치는 빈틈 속으로 옮기고 싶어하고, 그러면 누가 그 사실을 알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이 다시 올라와 다이너마이트를 가지고 지하로 다시 돌아가서 수백 피트의 바위를 폭파하려고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스티븐슨이 몸소 인정하려고 하였던 관심은 과장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 관심을 아는가?
(변호사가 스티븐슨에게 말하였던) 그 사실은 아마도 밴더 형제들이 암시하려고 한 사실 그대로일 수도 있다. 그들이 참으로 원하였던 모든 것은 금광석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추출된 금의 모든 온스에2 대해 로열티를 가질 것이다. 그 사실은 사실상 금맥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그들은 브루클린에 갱도를 파지 않고 금광석을 추출할 금광회사를 위치 매김 할 수 있는 지 없는 지에 달려있다. 그렇지만 스티븐슨은 기회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일을 시작하기 전 그들이 행할 모든 조치를 멈추는 것이 최상일 것이고 그는 믿었다.
스티븐슨이 프렌더캐스트 변호사와 전화 통화를 한 이후, 하나의 계획이 이루어졌다. 만약 그들이 금광석의 소유권을 주장하려고 한다면, 변호사가 문서 하나를 작성하여 브루클린 법원에서 그 문서를 설명해야 한다고 (프렌더캐스트 변호사는) 밴더 형제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법원으로부터) 공식적 답변을 받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렇지만 밴더 형제들은 곧 복스버그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프렌더캐스트 변호사가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법원에 전화를 하는 데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다. 이상의 모든 일들이 언젠가 잊혀 질 것으로 (우리는) 희망한다. (우리는) 밴더 형제로부터 아무 것도 더 이상 듣지 못했다. 적어도 그것은 그 계획이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런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밴더 형제들은 복스버그에 돌아간 이후 프렌더캐스트 변호사에게 전화를 하여 그들의 계획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하였고, “우리가 의뢰한 사건은 어떻게 되었고, 우리의 금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변호사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그 변호사는 “우리는 그 사건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라고 법률적으로 그들에게 대답하였을 따름이다.
번역 | 하와이 주립대학 교수 성원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