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한국선학회 회장
1.
이번호에서는 불교의 전통적 교학에서 우주와의 생성과 소멸을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소개한다. 사용하는 문헌 자료는 『경률이상經律異相』이다. 이 책은 불교의 경전과 율장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종류별로 나누어서 간추리고 있는데, 마치 사전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출전을 낱낱이 밝혀 놓았기 때문에, 거기에 밝혀진 대로 원 자료를 더 읽어가면 많은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책들을 중국에서는 ‘유서類書’라고 한다.
고대 인도의 불교도들은 모든 존재는 ‘만들어져가다가, 일정 기간 유지되다가, 조금씩 망가지다가, 완전히 소멸되는(成-住-壞-空)’ 4단계로 설명하기를 좋아했다. 사람의 일생一生을 설명할 때에는 ‘생-노-병-사’로, 일심一心을 설명할 때에는 ‘생-주-이-멸’로 나누는 것도 그런 전통에서 나왔다.
우주도 그렇게 4단계를 거친다고 저들은 생각했다. 그러면 이렇게 우주가 만들어져가다가, 일정 기간 유지되다가, 조금씩 망가지다가, 끝내는 완전히 소멸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중생들의 ‘업의 힘(業力)’ 때문이라고 한다. ‘중생들이 하는 짓거리’ 때문에 우주도 그렇게 네 단계로 변화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위의 네 단계 중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 필자는 잘 모르겠지만, 제일 관심이 가는 것은 셋째와 넷째의 단계이다. 독자님들도 아마 그러실 것이라고 생각되어, 그 부분만을 소개하기로 한다. 『경률이상』에서는 크게 세 요인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전쟁에 의한 파괴, 굶주림에 의한 파괴, 둘째는 질병에 의한 파괴이다.
2.
첫째는 전쟁에 의한 파괴이다. 이 때의 사람들은 탐욕이 많고 열 종류의 악행(十惡)을 마구 저지른다. 혹 한 종류의 선행이라도 하면 여러 사람들이 모두 비웃는다. 나아가서는 어리석음으로 다투어서 함께 능멸한다. 서로 가르쳐서 악을 지어 선한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게 된다.
그 결과 5곡도 생기지 않고 좋은 맛이 사라진다. 그저 피나 먹게 되고 풀을 길쌈하여 옷을 만든다. 칠보는 땅에 묻히고 모래와 돌덩이만이 가득하게 된다. 대지에는 가시덤불만 자라고 크고 작은 나뭇가지는 모두 칼이 되고 굵은 나무는 자빠지고 넘어진다. 땅은 모두 돌이 되어버리고 파도가 넘치고 해안은 붕괴된다. 강물은 넓어지고 평지는 점점 사라진다.
온갖 무기가 세상에 넘치니, 7일 동안에 손에 잡히는 풀이나 나무 기왓장 돌은 모두 무기로 변한다. 게다가 서로 겁탈하고 벌벌 떨면서 그저 서로 죽이려고만 한다. 마치 사냥꾼이 사슴 떼를 만난 듯하다. 그 가운데 지혜 있는 이는 사람이 살지 않는 산이나 계곡에 깊이 숨는다. 먹을 과일과 마실 물도 10년이 지나면 모두 사라진다.
이상은 고대 인도 불교도들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으로 탐욕에 의한 전쟁의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탐욕을 채우려고 전쟁을 일으키는 시절이다. 그 결과 농작물을 비롯한 식물들이 모두 죽어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는 마실 물조차 사라진다.
둘째는 굶주림에 의한 파괴이다. 이 때의 사람들은 법도를 그르치고 우매하고 견해가 삿되다. 인색하고 질투하여 재물을 움켜쥐고는 보시할 줄 모른다. 가물어서 밭에 씨 뿌려도 추수하지 못한다. 쌀과 곡식은 점점 없어져 먹을 곡식이 귀하다. 겨를 먹고 거리에는 낙엽의 눈으로 목숨을 이어간다. 쭉정이나 낙엽도 다 없어지고 땅을 파서 초목의 뿌리를 먹는다. 이것도 못하는 이는 먼저 죽는다. 그러면 죽은 사람을 베어다가 함께 뜯어먹는다. 다 먹어치우고는 도살장 내지는 무덤 틈에다 해골들을 버린다. 해골 삶은 물을 마시며 살아간다. 굶어 죽은 이들은 아귀로 태어난다.
이상은 인간들이 인색하여 남에게 베풀지 못하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인색함이 원인이 되어 끝내는 먹을 것이 모두 사라져 인간이 인간을 먹는 참혹함을 보여준다.
셋째는 질병에 의한 파괴이다. 이 때의 사람들은 모두 바른 견해를 갖추어 10가지 선행(十善)을 실천하기는 한다. 그러나 질병이 많아도 치료할 처방이 없고 의원이나 약이 적다. 비록 갖가지 선을 실천하지만 질병을 물리치지는 못한다. 복과 덕이 엷은 까닭에 병이 들면 바로 죽는다. 귀신들이 함께 몰려와 장난질을 치고 장딴지를 매질한다. 그리하여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정신에 들러붙어 조금씩 죽어 가게 한다. 사람으로서의 목숨이 다하면 모두 천상에 태어난다.
이 시기에는 질병이 많은 시기이다. 이 시기가 되면 인간들이 비록 선한 일을 하여도 질병을 치료할 처방을 발견할 수 없고 게다가 의사나 약품이 부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10 가지 선행을 했기 때문에 다음 세상에는 천상계에 태어나기는 한단다.
3.
인간 욕망이 결국은 세상을 망가트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욕망 때문에 세상이 망가지는데, 이 때에 불(火)과 물(水)과 바람(風)의 재앙이 생긴다고 한다.
처음으로, 불(火)에 의한 재앙이 생긴다고 한다. 이 때는 모든 인민들이 정도正道를 버리고 삿된 짓을 하여 열 가지 악을 행한다고 한다. 그 결과 모든 강물이 마르고 나중에는 바다의 바닥도 다 말라붙어 바람이 드나들게 된다. 마침내는 땅마저 모두 타버리고 나아가서는 지옥도 다 타버린다. 수미산도 차츰 무너진다. 이 불길은 하늘로 치솟아 욕계를 다 태우고 더 올라가 색계의 제14천까지 태워버린다. 그리하여 온갖 죄가 없고 복이 많은 생명체들은 제15천 위로 모여 살게 된다. 그러다가 불길이 사라지면 다시 큰 구름이 억수같은 비(雨)를 내린다. 떨어지는 물방울은 마치 수레바퀴 닮았다.
이어서, 물(水)에 의한 재앙이 생긴다. 이 때가 되면 3천대천세계에 물이 몰려들어 범천 까지 미친다. 그러다가 물이 점점 말라 갈 무렵에 바람(風)이 몰아닥친다.
끝으로, 바람(風)에 의한 재앙이 시작된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그 바람이 여러 천상 세계 및 일월궁전에까지 미치고, 다음에는 수미산에 이르러서는 4천 아래 까지 싹 쓸어간다. 그리하여 천지는 다시 텅 비게 된다. 이것이 공겁空劫이다.
4.
환경에 대한 고대 인도 불교도들의 생각을 요약하면, 그들은 중생들이 지은 행위의 힘(業力)에 의해서 우주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불교의 우주관이다. 이것은 업業을 매개로 세계가 형성되고 유전한다는 불교의 세계관을 나타낸 것이고, 한편 이 업력의 전이轉移 논리적으로 입증하기 위해서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의 활동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업을 매개로 한 불교의 우주관은 인식이론을 체계화 하게 된다. 이것은 『대승성업론大乘成業論』을 거쳐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 완성된 모습을 보인다.
한편 인도의 불교도는 환경 파괴의 요인으로 전쟁과 기아와 질병을 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전쟁 기아 질병은 모두 인간들의 탐貪·진瞋·치癡를 근간으로 하는 번뇌에 원인이 있다. 이런 우주관은 번뇌 퇴치를 위한 구체적인 수행 방식을 개발하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불교도들은 번뇌의 종류를 분류하고 그에 따르는 갖가지 제거 방법을 탐구하게 되었다. 원효의 『이장의二障義』도 이런 맥락의 저술이다.
결론적으로 불교에서는 우주가 파괴되는 원인을 번뇌에서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은 전통적인 고대 인도인들의 우주관을 불교가 흡수해서 경전 속에 적어놓은 것이다. 이런 소박한 고대 인도인들의 우주관이 합리적 과학과는 거리가 있지만, 인간들의 잘못된 행동거지가 세상을 망칠 수 있다는 저들의 교훈은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유효하다. 내가 하는 일거수 일투족이 세상을 망치는 일에 보태지지나 않나 조심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불교 신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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