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⑲ 고요한 마음 기르기

신규탁
연세대 명예교수, 철학 전공



1.
󰡔범망경󰡕에서는 대승의 불자들이 실천해야 할 윤리 덕목을 크게 네 범주로 묶고, 각 범주마다 10가지씩 마음먹기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발심하여 불도를 이루겠다는 마음>, 둘째는 그렇게 발심한 마음을 <기르고 키워가려는 마음>, 셋째는 <금강석처럼 굳세게 먹는 마음>, 넷째는 마침내 <본마음 자리 드러내기>이다. 한문으로는 ⑴발취심發趣心, ⑵장양심長養心, ⑶금강심金剛心, ⑷지地이다. 이런 단계로 마음을 길러가자는 제안이다.
현재 필자는 ⑵장양심長養心, 즉 <기르고 키워가려는 마음>을 설명해 가고 있다. 여기에 열 가지가 있는데, ①자심慈心, ②비심悲心, ③희심喜心, ④사심捨心, ⑤시심施心, ⑥호어심好語心, ⑦익심益心, ⑧동심同心, ⑨정심定心, ⑩혜심慧心이다. 이번 7월호에는 ⑨정심定心을 소개할 순서이다.


먼저, ⑨정심定心의 말뜻을 풀이하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수행을 말한다. 그 내용에 대해 먼저 󰡔범망경󰡕 본문에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본문을 인용하기로 한다.


“불자야 ‘공한 마음(空心)’이란 정심定心에서 나온다. 관혜觀慧를 사용하여 공을 체험하고 찰나 찰나마다 반연을 쉬여 ‘아我와 ‘아소我所’의 모든 법과 ‘식계’와 ‘색계’에 휘말리지 않는다. 역순의 경계에 (자유롭게) 출몰하기 때문이다. 항상 100가지 삼매와 10가지 선지禪支에 들어가니, 일념이 상응하는 지혜로써 이 견해를 짓는다. 일체 근根과 신身, 나(我)와 남(人), 안과 밖의 모든 법, 중생이 사는 세계와 종자는 모두는 (허망하기 때문에) 합해짐도 없고 (인연에 따라 사라지는 것이므로) 흩어짐도 없다. 그러니 모이느니 완성되느니 생겨나느니 이루어지는 등이 있을 수 없다.”


2.
이하에서는 위에 인용한 본문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첫 문장을 주목하자. 일체를 공인 줄 아는 지혜는 다름 아닌 ‘정심定心’에서 나온다고 선언한다. 정심定心이란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고요하게 하는 수행이다. 이런 수행으로 인해 공의 지혜가 생긴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관혜觀慧를 사용하여 공을 체험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관혜觀慧는 일체가 공하다고 관찰하는 지혜를 말한다. 그리하여 <나>는 물론 <나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도 모두 공함을 체험하는 것이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약간 복잡할 수 있지만, 10가지 선지禪支에 대해선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이때의 ‘지支’는 분별의 뜻이다. 즉, 색계色界의 네 하늘에서 닦는 수행 전체를 말한다. 이것을 보기 좋게 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색계色界 4천
수량
선정의 종류[支]
초선천初禪天
5
각覺, 관觀, 희喜, 락樂, 일심一心
2선천二禪天
4
내정內淨, 희喜, 락樂, 일심一心
3선천三禪天
5
사捨, 념念, 혜慧, 락樂, 일심一心
4선천四禪天
4
불고락不苦樂, 사捨, 념念, 일심一心



중복된 것을 제하면 모두 10지支가 된다. 본문의 인용에서 읽을 수 있듯이, “일념이 상응하는 지혜로써 이 견해를 짓는다.” 중요한 것은 ‘일념 상응’이다. 한 생각이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일체의 반연을 쉰다고 했는데, 이는 몸과 마음 모두에 해당한다. 몸도 일정하게 안정을 취해야 하며, 역시 마음도 한 곳에 무심하게 집중해야 한다. 이런 수행을 한국불교 전통에서 재가불자에게 많이 권장하고 있는 수행이 염불 정진이다.


3.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사찰은 여름 안거 중이다. 참선하는 선승들은 물론 산문 밖을 나가지 않고 화두 참선에 정진한다. 그렇지 않은 스님들도 특별한 볼일이 있는 사판승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부 출입을 자제한다. 재가불자들도 과거세에 부모와 인연 맺었던 이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백중 기도 정진에 돌입하고 있다. 백중 기도는 정토 수행의 큰 범주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런 수행의 교학적 근거를 우리는 󰡔대승기신론󰡕에서 찾을 수 있다. 불교라는 총체적 입장에서 정토 수행을 보아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나의 삶이라는 순간과 그런 순간들로 구성된 인생살이에서 수행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대승기신론󰡕은 모두 다섯 대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네 번째 대목에서는 ‘신심’과 ‘수행’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신심’이란 믿는 마음인데, 그 믿음의 대상은 ⑴진여의 근본, ⑵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 ⑶부처님의 가르침, ⑷출가 공동체, 이 넷을 믿는 것이다. 한편, ‘수행’이란 ⑴보시, ⑵지계, ⑶인욕, ⑷정진, ⑸지관, 이렇게 다섯 종의 실천을 말한다. 다섯 실천행 중에서 다섯째의 지관止觀 수행에 대해 󰡔대승기신론󰡕에서는 많은 설명을 한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의 끝부분에 정토 수행과 관련하여 중요한 말씀이 있기에, 인용한다.


“어떤 중생은 애초부터 이 지(止, Samatha)와 관(觀, Vipassana)의 수행법을 배워 바른 믿음을 얻으려고 하지만, 마음이 약한 이들은 (자신이) 이 사바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을 항상 만나서 몸소 받들어 공양하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걱정하며, 결국에는 자신이 신심을 내지 못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포기하려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는 마땅히 알아라. 부처님에게는 뛰어난 방편이 있어서 (그들이) 신심을 내도록 보호하고 품어주신다는 것을. 이른바 오로지 하나에 집중한 마음으로 염불한 인연으로 타방의 부처님 나라에 환생하여 그곳에서 항상 부처님을 친히 뵙고 영원히 악도惡道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는 일이다. 예컨대, 정토부의 여러 경전에서 어떤 사람이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전심전력으로 생각하여 그가 닦은 선근善根으로 회향하여 그 세계에 환생하기를 소원하면 곧 왕생往生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곳에서 항상 부처님을 친히 만나기 때문에 결코 물러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부처님의 진여 법신을 관觀하여 항상 부지런히 닦아 익히면 마침내 왕생하여 바른 선정에 머물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의 내용은 평이하기 때문에 따로 설명을 첨부할 곳은 거의 없다. 불교 수행은 기본적으로 6바라밀 수행이다. 그중에서도 전통적으로 지(止, Samatha)를 닦는 수행과 관(觀, Vipassana)을 닦는 수행이 중심을 이루었다.


4.
고요한 마음 기르는 공부가 잘 안되면 염불 수행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타방의 부처님 나라에 환생”하기를 염원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일념으로 정진하면 선근의 공덕으로 왕생이 가능해지고 그곳에서 바른 선정에 든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독자님들도 한번 생각해 보기기 바란다. 그냥 이 사바세계 살면서 6바라밀을 자신의 형평과 처지에 걸맞게 수행하라는 법문에 더 믿음이 가는지, 부지런히 염불하면 그 공덕으로 수행해 좋은 세상에 태어나 그곳에서 수행하라는 법문에 더 믿음이 가는지.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많은 정토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수행하기 최적의 장소이다. 좋은 스승을 비롯하여 친구와 그 밖의 모든 환경이 최고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도 수행을 해야 한다. 수행은 어딜 가나 자신이 해결해야 할 ‘내 몫’이다. 나 자신 말고 대신해 줄 그 누구도 없다.
불교에서 신심信心 즉 믿는 마음을 강조하지만, 그것도 그 내용을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을 믿는 것이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네 가지 믿음을 제시하고 있다. ⑴진여의 근본, ⑵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 ⑶부처님의 가르침, ⑷출가 공동체, 이 넷을 믿는 것이다. 이런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몸소 자신이 ‘수행’하라는 것이 불교의 보편 가르침이다. 대표적인 수행으로 ⑴보시, ⑵지계, ⑶인욕, ⑷정진, ⑸지관, 이렇게 다섯 종을 들고 있다. 이 중에서 다섯째의 지관止觀 수행에 대해 󰡔대승기신론󰡕에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강조하고 있다.
󰡔범망경󰡕에서 말하고 있는 ⑨정심定心도 이런 대승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모두가 인연이고 공이고 무아임을 아는 지혜의 힘을 길러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