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운
텃밭농부
장마의 한 가운데 있다. 전국 곳곳에 많은 비를 뿌렸다. 멀리 태평양에서 태풍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태풍은 1년에 20개 정도 발생하며, 이 가운데 5개 정도가 우리나라를 지나간다. 지난해에는 천운이 깃들었는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본격적인 태풍의 계절에 들어섰다. 피해가 없기를 바라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어서 단단히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내 텃밭의 비 피해는 없다. 하루 이틀 흐리고 비 온 후에는 사나흘 맑은 날이 찾아오니 참으로 다행이다. 고추는 한뼘 더 자랐다. 물을 좋아하는 오이는 마디마다 열매를 달고 있다. 날씨가 이렇게만 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테지만,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몇 해 전 장마 때는 두둑이 모두 잠길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그해의 고추는 장마를 넘기지 못하고 뽑아내야 했다.
하루에도 십수 건 기후변화 기사
기후변화는 일상이다. 뉴스 미디어를 통해 하루에도 십수 건의 기후변화 관련 기사를 접한다. 얼마 전 한 경제신문은 유럽의 기록적인 고온 현상을 전했다. ‘기온 40도까지 치솟았다…때이른 폭염에 지구촌 곳곳 신음’. 이 기사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이맘때 잉글랜드의 평년기온이 12도인데, 30도 중반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상당국은 경보를 발령했다. 그냥 경보가 아니다. 나흘 동안 고온 현상이 이어지면 570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했다. 65세 이상 고령자와 영유아, 임산부, 기저질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평년기온에서 18도쯤 오르게 되면 적응의 한도를 넘어선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에도 해당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부산과 경남 지역에는 시간당 강수가 60mm를 기록했다. 기상관측 이래 최다 강수였다. 시간당 강수량이 30mm를 넘을 것으로 예상될 경우 기상청은 호우 경보를 발령하는데, 경보 발령 수준의 2배를 넘었다. 국지성 폭우는 현재의 기술로는 예측조차 어렵다.  
기후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제각각이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농부는 더위 속 노동의 고달픔을 떠올릴 수 있고, 어떤 농부는 기후를 조절할 수 있는 시설재배를 생각할 것이다. 청량음료와 아이스크림, 냉방기계를 만들거나 파는 이는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길 것이다. 모두가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자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통적인 생각은 기후변화가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포성에 묻히는 평화의 염원
전쟁이 일상이다. 미얀마 내전,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이란·팔레스타인 전쟁은 진행 중이다. 대규모의 인명 살상과 시설 파괴가 전해지고 있다. 평화를 염원하는 목소리는 포성에 묻히고 만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했건만, 싸움을 말릴 만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들은 자국의 이익을 계산하기에 바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인류는 지난 5천 년 동안 1만4천 건의 전쟁을 치렀다.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를 경험했음에도 전쟁은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늘었다. 1945년 이후 40년 동안 150건의 전쟁이 터졌는데, 이는 매년 3.75건의 전쟁이 터졌거나 진행 중이라는 수치이니 ‘전쟁이 일상’이라는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전쟁 연구자 중에는 전쟁을 최후의 외교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외교의 한 수단으로써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이다. 국제관계가 힘의 논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전쟁을 정당화하는 것은 인간 이성에 대한 부정이므로 배척해야 할 발상이다.
전쟁이 일상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평화의 염원이 커져야 한다는 바탕으로 삼자는 것이다. 한때 전쟁은 인간의 본성에 잠재한 폭력성과 공격성에 기인한 것이라는 생물학계의 주장이 제기됐다. 인간에겐 타자를 향한 공격성이 있다. 반면 내 살과 뼈를 내어주는 자비심도 있다. 그러므로 어느 쪽을 더 함양하고 발휘할 것인지를 물어야 하고, 당연히 자비심에 이르러야 한다.
1986년 제25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한 ‘폭력에 관한 세비야 선언’에서는 “전쟁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이 아니라) 문화의 산물”이라면서 “우리는 생물학이 인류에게 전쟁을 운명지어 주지 않으며, 생물학적 비관주의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세계평화의 해’와 이후 시대에 필요한 변화를 수행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 있게 결론짓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유명한 선언을 내놓는다. “전쟁이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한다면, 평화 역시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한다.”
“전쟁은 잘못된 견해”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예 군대를 부정하는 가르침을 펼치셨다. ‘전사의 경’에 기록되어 전해지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이 라자가하시의 벨루숲에 머물러 계실 때 전사마을의 촌장이 부처님을 찾아와 물었다. “저는 전사들의 옛 스승의 스승으로부터 ‘전사는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 한다. 전사가 전력을 다해 싸우다가 적들에 의해 살해되어 죽임을 당하면, 그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전사들의 하늘나라에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라고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이에 부처님은 “촌장이여, 그만두십시오. 내게 그런 질문을 하지 마십시오.” 그럼에도 촌장은 세 번을 물었고, 마침내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촌장이여, 전사가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울 때, 그의 마음은 ‘이 사람들을 때려죽이고, 졸라 죽이고, 절단해 죽이고, 전멸시키고, 박멸하고, 소탕해야 한다’라는 생각 때문에 저열한 곳으로, 사악한 곳으로, 나쁜 곳으로 향합니다.”
부처님은 전사마을 촌장의 생각이 잘못된 견해라는 것을 분명하게 설한 후에 거듭 강조한다. “촌장이여, 잘못된 견해를 지닌 사람에게는 지옥이나 축생, 그 두 가지 길 가운데 하나의 길이 있다고 나는 말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촌장은 통곡한다. “저는 오랜 세월 동안 속아왔고, 기만당하고, 현혹된 것입니다. … 이제 세존께 귀의합니다. 또한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겠습니다.” 촌장은 구족계를 받고 정진하였으며, 거룩한 님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전재성 역주, 오늘 부처님께 묻는다면, 한국빠알리성전협회, 423-425] 159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은 간디는 독립 후 인도의 미래상을 그리면서 ‘군대 없는 국가’를 구상했다. 독립 후 5개월만에 힌두교 급진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함으로써 간디의 구상은 진척되지 못했다. 설령 화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의 무력에 의해 지배를 당했기에 많은 인도 사람들은 군사력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핀란드는 오래도록 중립국의 지위를 가졌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2022년 나토에 가입했다. 전쟁이 일상화된 국제정세 속에서 군대 없는 국가, 중립국 유지는 힘든 일이다. 무력이 없는 국가의 존립은 위태롭다. 현실이 웅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전사의 경’에서 가르친 내용은 비현실적인 것인가. 부처님은 전사마을 촌장의 물음에 세 번이나 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는 일상화된 전쟁의 현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현실을 수긍하지도 않았다. 전쟁과 살육이 잘못된 견해라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냈다. 군대 없는 세상의 꿈을 우리에게 심어주었다.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우리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