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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의 힘
불교 신자로 자처하면서 사홍서원을 독송한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홍서원은 불교 신자라면 누구나 세
워야 할 공통의 큰 원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원이라도 세운 적이 없는 사람은 불교 신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
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긴요한 것은 사홍서원과 같은 의무적인 원이 아니라, 저마다 다를 수 있는 크고 작은
원들입니다.
원을 세운다는 것은 다른 말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불교 신자라면 부처님께 기도할 것이고, 기독교 신자라면 하
나님이나 예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신자의 기도를 듣고서 소원을 성취해 주든
가 말든가 하겠지요. 그러면 불교에서 부처님도 그렇게 하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기독교와 불교는 아무런 차이
가 없게 될 것입니다. 불교 신자라면 그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이 차이를 알 때라야 원을 바르게 세울 수 있고 기도의
효험도 자각할 수 있습니다.
원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원을 세운다는 것은 우선 마음속에 있는 원을 항상 잊지 않고 간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원에 힘을 보태지 않으면 원을 세웠다고 말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효험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경전들은 원에 힘을 보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염불이 바로 그것
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염불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모르고 있거나 생각해 볼 필요도 느끼지 않는 것 같
습니다.
염불은 부처님에 의지하여 자신의 마음을 항상 깨끗하고 평온한 상태로 지키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깨끗
하고 평온한 바탕이라야 여기에 실린 원도 장애가 없으므로 고스란히 정신력으로 생동할 수 있습니다. 그릇되거나 오
염된 원이라면 아예 그 바탕에서 버티질 못할 것입니다. 만약 염불의 정성이 지극하다면 그릇되거나 오염된 원도 저
절로 정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표적인 염불로는‘나무관세
음보살’과‘나무아미타불’이 있습니다. 나무아
미타불은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염불
이고, 나무관세음보살은 현세에서 소원 성취를
원하는 염불입니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에서는
주로 관세음보살을 염불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법화경에서는 이 염불의 효험을 낱낱이 열거하
는데,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것입
니다.
정기를 빼앗는 야차, 용, 아수라, 요괴, 악귀
에 둘러싸이더라도, 관세음을 떠올려 생각하면, 그것들은 털끝 하나도 해치지 못할 것이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무시무시한 맹수에 둘러싸이더라도, 관세음을 떠올려 생각하면, 그것들은 곧바로 사
방팔방으로 도주할 것이다.
화염을 내뿜어 보기에도 끔찍하고 눈빛만으로도 독살해 버리는 뱀 따위에 둘러싸이더라도, 관세음을 떠올려 생각
하면, 그것들의 독은 곧바로 사라질 것이다.
구름 속에서 우레와 함께 비를 내리쏟고 맹렬한 벼락이 섬광과 함께 내리치더라도, 관세음을 떠올려 생각하면, 그
찰나에 곧바로 잠잠해질 것이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면 불교도 믿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이
법문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가 아닐 것입니다. 당연히 그렇습니다. 이 법문은 염불의 힘을 일깨워서 염불로써 원을 성
취하도록 권장하는 것입니다.
이 법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관세음보살이 직접 중생의 곤경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중생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관세음보살이 직접 나서서 신통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곤경에 빠진 중생이 스스로 관세음보살을 떠
올려 생각함으로써 그 곤경이 해소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제는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는 힘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염불하는 신자의 입장에서는 그 힘이 관세음보살로부터 나온다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염불의 본래 의미는 의지할 부처님이나 보살을 마음에 떠올려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염불을 실천하는 가장 효과
적인 방법은 부처님이나 보살 이름을 열심히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을‘칭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
하는 염불은 모두 칭명을 일컫는 것입니다.
염불할 때 부처님이나 보살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지 그 이름을 읊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름을 읊는
것으로 자신의 원에 갈수록 힘이 생기도록 마음을 정화할 수 있습니다. 이름 앞에 붙이는‘나무’라는 말은 귀의한다
는 뜻이지만, 이 말 속에는 자신의 모든 정성과 노력을 쏟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염불의 효험은 이런 정성과 노
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때 염불로 부르는 부처님이나 보살의 능력이 자신의 정성과 노력에 전이됩니다.
관세음보살은 지혜로써 중생의 모든 고통을 알아차리고 중생을 구제합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는 힘은
신자에게 간직되어 있는 지혜를 발현시킵니다. 이것이 관세음보살의 구제 능력이지만, 사실상 이것은 신자에게 내재
된 지혜의 힘입니다. 우리에게 지혜의 힘은 삶을 유지하고 개척하는 생명력과 같습니다. 염불하는 신자는 이 같은 생
명력을 발동시켜 난관을 극복하고 곤경을 헤쳐 나갑니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을 염불한다는 것은 그와 같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원을 세우고 관세음보살이 아닌 다른 부처님이나 보살을 염불해도 원이 성취될 것입니다. 원을 세웠다면
염불을 하고, 염불할 때는 모든 장애를 없애도록 오로지 마음을 닦는 데 전념해야 합니다. 이 깨끗한 자리에서 원은
나의 생명력과 똑같은 힘으로 나를 인도해 갈 것입니다. 이것이 염불의 힘이지만, 사실은 이 힘이 바로 관세음보살이
고 아미타불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불교적인 기도의 효험입니다.
만약 스스로 마음을 닦지 않았는데도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 나의 원을 성취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런
믿음은 불교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