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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승의 수행







  달라이 라마
  티베트 승왕


차별없이 모든 중생들에 대해서 자발적이고 진정한 자비심을 가져야만 그런 책임감이 생깁니다. 그것이‘보편적 자비심’입니다. 그것을‘위대한 자비심(마하까루나, mahakaruna)’이라고도 부르는 까닭은, 한정된 대상에게만 자비심을 일으키는 보통의 자비심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나와 남들이 겪는 고통의 본질을 통찰하지 못하면,‘ 위대한 자비심’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상태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깨달으면, 남들의 고통에도 공감할 것입니다. 고통의 본질을 깊이 통찰하려면, 첫 번째의 신성한 진리, 즉‘고통에 관한 진리’를 고찰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타적인 수행자는 자신만 해탈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만의 해탈은 개인주의적이기도 하지만, 수행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가 아닙니다.
남들과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친밀감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는, 모든 중생들을 내 어머니나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내 어머니나 사랑 하는 사람에 대해서 저절로 일어나는 자비심을 확대시켜서 모든 중생들을 향해서 퍼져 나가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남들과 공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적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을 친구라고 생각해서 상대방에 따라서 감정이 변한다면, 공감이 생길 수 없습니다. 우선 친구와 적으로 구분하는 마음을 없애야 합니다. 그러려면 평등심을 기르는 수행부터 해야 합니다.

또 다른 방법은 샨띠데바의《입보리행론》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샨띠데바는 남들과 나를 동등하게 생각함으로써 공감을 기르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개인적으로 행복하고 고통을 피하기를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들도 똑같은 욕망을 갖고 있고, 내가 어떤 것을 성취할 권리를 가진 것처럼 남들도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동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나의 이기적인 견해를 뒤집어서 나를 남들의 입장에 세워놓고 생각하고, 남들을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앞에 제시된 두 방법을 결합해서 명상합니다. 명상하고 숙고한 결과로 흉내낸 이타심을 일단 경험 하면, 보리심을 명백히 일으키는 불교의식에 참여함으로써 그 이타심을 확고하게 만듭니다. 그 다음에는 보살의 활동을 실현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일어나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수행자는 바로 이 단계에서 정식으로 보살계를 받습니다. 보살의 이상(理想)이나 보살의 활동은 세 가지 원칙으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부정적인 행동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발적으로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가져올’원인을 쌓는 수행이‘깨달음이라는 결과’의 상태로 이끌어간다는 관점에서 보면, 보살 수행은 공덕과 지혜를 축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덕과 지혜의 축적은 방편과 지혜의 결합이며, 불교 수행에서는 그 두 가지가 분리되면 안 됩니다.
딴뜨라 또는 금강승이 지닌 심오함과 고도의 기교는 방편과 지혜를 결합시킨 수행에서 나옵니다. 간단히 말해서, 금강승에서 방편과 지혜를 결합시킨 특색들 중의 하나는, 우선 수행자가 자아나 세계에 대해서 지각한 것의 본질이‘공성’이라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공성으로 환원시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공성을 깨달은 그 마음을 완전한 딴뜨라 신의 형태라고 상상하면서-물론 초보 단계에는 생생하게 눈앞에 있는 듯이 관상하지 못하고 머리로 상상만 해도 됩니다- 눈앞에 그립니다(觀賞). 그 다음 단계에는, 관상의 대상이었던 그 신(神)도 독립적인 실체를 갖지 못한다는 것, 즉 신들의 공성에 대해서 숙고합니다. 그렇게, 한 순간의 인식 속에 방편과 지혜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즉, 신을 눈앞에 생생하게 관상하는 동시에 그 신의 공성을 이해합니다.

티베트 불교의 종파들인 겔룩빠, 싸꺄빠, 까규빠에 의하면, 금강승 안에는 네 종류의 딴뜨라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끄리야(作) 딴뜨라, 차리야(行) 딴뜨라, 요가딴뜨라, 아누따라요가딴뚜라 등입니다. 끄리야 딴뜨라와 차리야 딴뜨라를 수행하는 데는 딴뜨라계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딴뜨라계를 받아야만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요가 딴뜨라와 무상요가딴 뜨라입니다. 무상요가 딴뜨라는 여러 가지 신체적 요소들을 이용해서 명상을 합니다. 몸 속에 흐르는 기(氣)의 통로(차끄라), 그 통로에 흐르는 기(氣) 등을 관상합니다. 여러 종류의 명상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보리심의 열망과 공성에 대한 통찰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없는 수행은 불교 수행으로 간주될 수 없습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