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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환경의 생태적 각성 촉구

똥이 밥이다


조 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인도에 가면 새벽에 강가에서 사람들이 길게 늘어앉아 똥을 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 수세식 변기가 일상화돼 똥을 마주대하는 일이 적어졌지만, 수십 년 전만해도 똥은 익숙한 삶의 일상이었다.
마을 회관 옆 마을광장 앞에 있는데다 마당이 넓은 우리집엔 늘 사람들로 북적댔다. 바지도 입지 않은 채 마당을 뛰어다니며 놀던 어린 아이가 똥을 싸면 개들이 달려가 아기똥을 먹고, 아이의 항문까지 핥는 장면은 흔했다.
우리집 사랑채에도 늘 마을 어른들과 식객들, 장사치들로 넘쳐났는데, 밤이면 두부와 막걸리를 사다가 즉석 술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늘 김치와 동치미를 큰 그릇에 담아 내오곤 했다. 사람 좋아하는 아버지의 뒷치닥거리를 군말 없이 감당할 만큼 어머니의 마음이 넓기도 했지만, 김치와 동치미를 내주어도 크게 밑지는 것은 아니라는 나름의 계산도 있는 듯 했다. 사랑방에서 짠 김치와 동치미를 먹은 이들이 뒷간에 배설한 똥과 오줌은 많은 농사를 지어야했던 우리집으로선 소중한 밑천이 아닐 수 없었다.
마당 한켠엔 두엄자리가 있었다. 두엄자리는 탈곡을 하고 남은 볏단과 풀을 쌓아두었다. 그 두엄자리엔 가끔씩 뒷간에서 퍼온 똥오줌이 뿌려졌다. 마치 시루떡에 콩고물을 얹듯이. 그러면 볏집과 풀은 잘 삭은 묵은 김치처럼 발효되었다. 한 번씩 뒤집을 때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면 잘 발효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제사를 지내거나 잔치를 할 때면 우리집은 홍어를 빼놓지 않고 샀는데, 가끔 덜 삭은 홍어는 두엄 속에 묻어두었다. 그러면 홍어는 머지않아 코를 찌를 듯 톡 쏘는 맛을 낼만큼 잘 삭았다.
이런 환경 때문이었을까. 내겐 똥이 더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선친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1년 뒤 집에 큰 불이 나서 어머니가 큰 화상을 입었다. 대학병원에서 몇 개월간 입원을 했는데, 1970년대 중화상은 너무나 많은 비용을 요했다. 화기를 빼는 주사 한방에 당시 돈으로도 수십만 원을 호가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더 입원해 있어야한다는 의사와 자식들의 만류에도 기어코 퇴원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며칠이 지나도 변이 나오지 않았다. 배는 불러오고, 변은 빠지지 않으니 화기도 더 치성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다 큰일 나겠다고 혀를 끌끌 찼다. 어머니 병수발을 하던 내가 아이 낳는 산모에게 힘주라고 응원하는 것처럼 요강을 받쳐 들고 아무리 채근을 해도 변은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얼굴에 핏기가 솟구치고 땀을 흘리며 신음 소리를 냈다.
그 때 나는 무심코 어머니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서 변을 파내기 시작했다. 변은 단단히 굳어있었다. 그렇게 용을 쓰며 변을 파내니 돌더미처럼 단단한 변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입구가 뚫리자 그토록 어머니를 괴롭히던 변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는 “내 새끼가 나를 살리는구나”라면서 기뻐했다. 어머니는 “그 때 만약 네가 변을 파내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어린 시절 똥과 관련된 일화들이 생각난 것은 최근 나온 <똥이 밥이다>(김성균 최광수 최훈근 이해일 김재일 지음, 이학사 펴냄)라는 책을 읽으면서다. 이 책에서 소개한 서양의 인용문을 보면, 우리나라의 똥문화가 서양인들에게 얼마나 생경하게 보였는지 알 수 있다. 조셉 젠킨스가 <인분핸드북>에 쓴 글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나는 어릴 적에 한국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맥주를 한두 잔 마시고 나면 으레 뒷간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인들이 행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도록 끌어들이기 위해 화장실을 잘 꾸미는 것을 보고 놀랍고도 신기했다고 들었다. 다른 사람의 똥오줌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이한 웃음거리고 기억에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선 지금도 시골에 가면 “기회자장삼십棄灰者仗三十 기분자장오십棄糞者仗五十”이란 금표가 발견된다. 재를 버리는 사람은 곤장 30대를 때리고, 똥을 버리는 사람은 곤장 50대를 친다는 뜻이다.
서구에선 똥을 못 쓸 것으로 치부하고 버리는 데만 급급하지만, 동양에서 똥은 귀중한 것이었다. 실제 제주도에선 똥을 먹여 돼지를 키우기도 했다. 예전 우리 마을에서도 나무에서 떨어진 사람이나 크게 다친 사람은 똥을 거른 물을 마시기도 했다.
지금 돌아봐도 우리의 시골살이에선 버려지는 게 없었다. 쌀을 씻고 난 쌀뜨물은 국물로 쓰고, 김치를 담그고 남은 배추나 무의 전잎은 말려 시레기국을 끓였고,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물은 개나 돼지가 먹었다. 그러고도 남는 찌꺼기가 있으면 두엄자리에 두어 거름이 되게 했다. 무엇 하나 버릴 게 없었고, 쓰다 남은 것은 반드시 요긴한 쓰임새가 있었다. 똥 분糞자가 쌀(米)이 다른 것으로 변화된 것(異)이란 뜻으로 이뤄진 것만 보아도, 쌀과 똥이 다름이 없다는 동양의 철학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밥이 있으므로 똥이 있고, 똥이 있으므로 거름이 있고, 거름이 있으므로 벼가 있고, 벼가 있음으로 밥이 있다’는 연기 법칙이 삶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체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수세식 화장실이 들어오면서 우리의 문화는 너무도 달라졌다. 수세식 화장실은 뒷간 문화의 새 문명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수세식은 우리 고유의 푸세식 뒷간과 달리 똥 오줌을 쓸모없는 쓰레기라는 사고방식에 의한 것이다. 수세식으로 쓸려나간 똥은 거름으로 쓰일 수도 없고, 지구 환경의 골칫거리만 될 뿐이다.
서구에선 들어가는 것만 중시하고, 나오는 것에 대한 순환의 처리가 막혀 지구촌의 생태계에도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온갖 자원을 낭비만 하고, 쓰레기를 양산해 자연스런 순환 생태계의 고리가 끊기고 있다.
불자들이 가장 자주 암송하는 반야심경에 ‘불구부정不垢不淨’이란 말이 있다. 깨끗하고 더러운 것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예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지식을 습득할 필요조차 없이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이들이었다. 모든 것이 순환하고 윤회하며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생태적 깨달음이 녹아있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이분법적인 논리에 의해 그런 순환은 막혀버렸다. 더구나 엄청난 욕망에 의해 먹기는 예전의 몇 배로 먹고, 몇 배나 소비하고, 수십 배 수백 배의 쓰레기를 쏟아내 아름다운 푸른별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다시 생태적 각성을 이렇게 촉구한다.
‘우리 몸을 하나의 파이프로 생각한다면, 요란하고 호화로운 음식이 바로 입이라는 파이프 입구에 모아져 미각에 즐거움을 주고는, 파이프 중간을 통과하면서 흡수되어 온갖 에너지원으로 분산된 뒤 파이프의 끝에서 밖으로 배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파이프의 앞 문화(음식문화)는 다채롭게 발전되어 있지만, 파이프의 끝 문화(똥의 문화)는 소홀히 처리되거나 무시되고 있으며 파이프 앞의 문화에 비해 홀대 받고 있다. 실제 자연계의 되먹임 순환 사슬에서 보면 들어오고 나감이라는 것을 따로 구분할 수 없다. 그러나 직선적 세계관에서는 똥을 나와 상관없는 아주 먼 곳으로 격리시킨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똥이 다시 내게 돌아온다는 이치를 망각한 것이 인류의 어리석음이다. 생태계의 위기는 바로 이러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