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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부처님 오시던 날

박 원명화
수필가, 구룡산 신도


날마다 늘어나는 번뇌가 있나니
날마다 자라나는 망상이 있나니
티끌만한 마음도 닦지 못한 부끄러운 얼굴이 있나니….


집안의 발길 닿는 곳마다 불교와 연관된 고상苦像들이 즐비합니다. 안방, 거실, 아이들 방에 이르기까지 그 고상들이 묵묵히 나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고상의 수만으로 보면 나를 신심이 깊은 불교도라 짐작 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자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중 내가 얼마나 부처님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살다보니 나의 참 모습을 헤아려 볼 시간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세속에 맞추어진 위선으로 끝없는 욕심만 추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누군가 내게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오면 선뜻 ‘불교’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부처님을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날이 허다합니다.
고요한 바다 위에 뜬 배처럼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는 무릇 간절함을 모릅니다. 거센 풍랑이 일고 배가 좌초되는 불행을 맞게 되고서야 허둥지둥 뒤늦게 자비의 손길을 찾습니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중생심입니까. 마치 부처님이 어떤 호신용 무기이거나 부적이거나 한 것처럼 《천수경》을 입에 바르고 《반야심경》을 읊어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분수없이 언제나 큰 것을 바라는 마음이 불행을 자초하는 것일까요. 자기 손에 든 떡이 남의 손에 든 떡보다 작다는 생각, 욕심이 늘 간절하기 때문인가 싶습니다.
왕자로 태어나 출가하여 성자가 되기까지, 부처님이 겪으신 그 고행의 참뜻을 알고자 크게 노력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자비로운 마음을 닮고자 애써 본 일도 없습니다. 그러고도 명색이 불자라 하였으니…. 생각이 모자란 것인지 신심이 부족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부처님을 가까이 하게 된 것은 어릴 적에 어머니를 따라 산사를 드나들 때부터입니다. 적막한 산사에 스님의 구성진 염불 소리는 어린 내 가슴에도 무엇인가 그윽하고 성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불교에 접근 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그런 인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천년 고찰이 대부분 그러하듯 기암괴석의 계곡이 있고, 송림이 우거져 있는 동학사 천장에는 고운 연꽃등이 매달려 있고, 법당 안은 언제나 좋지도 싫지도 않은 향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어머니는 부처님 앞에 말없이 경배를 올리고 눈을 감은 채 한참 서 있다가, 마치 삼라만상의 업장을 녹이기라도 하듯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무슨 일로 혹은 누구를 위하여 그토록 땀이 범벅이 되도록 절을 하는 것인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엎드렸다 일어 섰다를 끝없이 반복하는 어머니.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그칠 줄 모르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천배를 하는 건지 삼천 배를 하는 건지, 얼굴은 온통 벌겋게 달아오르고 등줄기 옷은 땀에 젖어 얼룩으로 가득했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신앙의 참 모습인 듯 싶었습니다.
그 시절 어렵고 가난한 삶을 이길 수 있었던 어머니의 그 힘은 바로 이런 불심으로 다져진 것이 아니었을까요. 땀을 흘리며 절을 올리는 것으로 삶의 번뇌와 망상을 해탈하여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법을 체득하고자 했던 것이지도 모릅니다.
살아가노라면 나도 모르게 탐욕에 젖어 들 때가 많습니다. 몸은 작은 데 탐욕은 왜 그리도 커지는 것인지. 그것들을 솎아 내기 위해서 한 달에 한번쯤은 꼭 절에 가자고 무언의 약속을 합니다.
‘참 나’를 만나보고 싶거나 마음이 닦여지지 않을 때도 그냥 절을 찾아 부처님을 만나면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위안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바세계 중생들을 안쓰러운 눈길로 내려다보시는 부처님의 눈길은 자비로움 그대로입니다. 부처님의 눈길과 마주칠 때면 나는 내 마음속에 가득한 욕망을 버리고자 애쓰게 됩니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합니다. 탐·진·치로 가득한 내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평생 중생의 이기심을 벗어버리지 못 할 것 같은 두려움이 일면서도 간혹 무명의 빛이 조금씩 파고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자비로운 미소인 것입니다. 비록 내 본성이 잡초라 할지라도 결코 나를 버리지 아니하고 언제라도 거두어 주실 분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회하며 기도하는 것만이 나의 참모습에 대한 자각이라는 것을 어머니를 통해 배워 오지 아니 했던가요. 내가 갇혀 있는 무명無明의 깊이를 알 수만 있다면 참 가르침과 참 성품을 어떻게 구해야 할 것인가도 더듬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내 마음속에 부처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를….
내친 김에 오늘은 지장전까지 들려 돌아가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향 하나를 피웠습니다. 피어오르는 연기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떨쳐 버리듯 사방으로 흩어져 허공을 맴돌다 사라집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