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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없는 중생은 구할 수 없다

한애경
조계종 포교사단 서울남부총괄팀장


어느 날 아난존자가 부처님을 모시고 사위성으로 탁발을 하러 들어갔을 때 일입니다.
이때 어떤 가난하고 불쌍해 보이는 할머니가 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온화한 성품의 아난존자는 그 할머니를 보고 너무나 측은하고 가련해 보여 연민의 마음이 일어나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부처님, 제발 저 할머니에게 다가가 주십시오. 부처님의 몸에는 32가지 뛰어난 상相이 있고 빛이 나셔서 부처님을 뵙게 되면 저 할머니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을 일으켜 마음이 열려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아난존자의 이 같은 간절한 요청에 뜻밖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저 할머니는 나와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구나.”
하지만 아난존자는 할머니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 거듭 부처님께 청하였습니다. 아난존자의 간절한 청을 끝내 거절하지 못하신 부처님께서는 결국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셨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부처님께서 할머니 앞으로 다가가시자 할머니가 고개를 뒤로 돌려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다시 할머니의 시선이 향해 있는 뒤쪽으로 다가가셨고, 할머니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습니다.
부처님께서 오른쪽으로 다가가시면 할머니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으며, 부처님께서 왼쪽으로 다가가시면 할머니는 다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습니다. 할머니는 고개를 들어야 할 때에 숙였고 숙여야 할 때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몇 번이나 다가가셔서 그녀와 눈을 맞추려 하셨건만 끝내 할머니는 두 손으로 제 눈을 가리고 부처님을 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더 이상 무슨 인연을 지을 수 있겠느냐? 소용없다.”
인연이 빗겨가도 이렇게 빗겨갈 수 있을까요?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세상에서 부처님 만나기 더욱 어려우며, 부처님 법을 듣기도 또한 더욱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매우 귀한 인연을 맺는 것을 가리켜 3000년 만에 한 번 피는 우담바라 꽃을 보는 것에 비유합니다. 부처님을 만나는 것도 그 꽃을 보는 것처럼 아주 귀하고 희유한 인연의 소치입니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이처럼 인연이 어긋나는 것을 아귀에 비유해서 『곳곳에 시원하게 갈증을 해결할 물이 넘치는데도 아귀는 그걸 마시지 못해 항상 목이 말라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을 앞두시고 수행자들에게 이렇게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수행자에게 권하노니 지나치게 소극적이지도 너무 탄식하지도 말지니라. 그대들이 내가 세상에 영원히 머물러 주기를 원하나 내가 가르친 불법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내가 살아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반대로 내가 열반에 들어도 그대들이 내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듯이 불법을 봉행한다면 내가 진정 그대들을 떠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라 설하셨는데 우리 모두 자비를 베풀고 있는지, 부처님께서 인내하며 계율을 잘 지키라 설하셨는데 우리는 인내하며 계율을 잘 지키고 있는지, 불법을 널리 펼쳐 중생을 이롭게 하라(홍법이생弘法利生)고 하셨는데, 우리는 홍법이생을 하고 있는지를 반성할 일입니다.
우리가 자비와 보시로 중생을 대하고 대승보살의 여섯 가지 실천덕목인 육바라밀로 수행을 쌓으며 팔정도로 불법을 실천하고 사성제로 불법을 선양하는 등 부처님의 진리를 받들어 행한다면 부처님의 법신이 세상에 머무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떠나 곧 다른 곳에서 몸을 받는다. 부모와 처자의 인연으로 모여 사는 것은 마치 여관의 나그네가 아침에 일어나면 곧 떠나는 것과 같은 이치거늘 어리석게도 얽매여 집착하고 있구나. 그것을 자기 소유라 생각하고 근심하고 슬퍼하며 괴로워하면서도 근본을 알지 못하고 있구나. 지혜로운 사람은 정과 애욕에 탐착하지 않고 그 괴로움을 깨달아 부지런히 법과 계율을 닦아 온갖 생각을 없애버리고 생사를 끝낸다.』
어리석은 사람은 죽음이 닥쳐야만 자기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후회하게 됩니다. 더욱 불행한 사람은 그 삶을 돌아볼 새도 없이 죽음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죽음을 생각하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은 눈으로 범부 중생들이 각각의 업에 의해 태어나고 죽는 모습과 태어나는 세상을 환히 보셨습니다. 그래서 대자대비하신 거룩한 부처님께서는 윤회의 실상을 모르는 중생들이 악한 업을 지어 괴로움을 받는 것을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수명은 짧고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늙음과 쇠함이 침범하면 구할 수 있는 자가 없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해서 빨리 불법에 들어가야 한다.』
광명진언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 타야 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