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菜根譚에서 몇 구를 골라 읽으면서 더위를 식혀본다.
聽靜夜之鐘聲 청정야지종성
喚醒夢中之夢 환성몽중지몽
觀澄潭之月影 관징담지월영
窺見身外之身 규견신외지신
고요한 밤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꿈속의 꿈을 깨우고
맑은 연못의 달그림자를 보면서
몸 밖의 몸을 알아차린다네
고요한 밤에 들려오는 종소리는 여름엔 더위를 식혀주고 겨울엔 추위를 물리쳐준다. 봄 가운데 듣는 밤 종소리도 정취에 따라 무한한 효용을 발휘한다. 절집의 풍경소리도 찰나찰나에 일어나는 잡념을 덩그렁 덩그렁 흩어지게 해준다. 꿈속의 꿈은 우리가 깨어서 숨 쉬고 있는 현장이다. 밤에 꾸는 꿈은 작은 꿈일 뿐이다. 조신의 꿈은 조신만의 꿈이 아니라 어쩌면 모든 어느 누구의 꿈이다. 종소리는 그 꿈을 깨워준다. 쇠로 만든 종소리가 아니라 내면 깊은 곳 뇌세포가 깨어나면서 울리는 종소리이다. 두개골 뼈를 진동시키면서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저릿하게 퍼져나가는 종소리의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종소리의 파워를 들어 본 사람은 안다. 성인들께서 고금을 초월해서 울려주는 종소리는 책에 있는 문자를 통해서 울려지기도 하고 후두둑 지나가는 빗방울이 가로수 은행잎을 두드릴 때도 울린다. 타다닥 타다닥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에도 물론 울리고 점심 식사 후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 향에서도 울린다.
맑은 연못에 비쳐 스며든 달그림자는 하늘에 떠있는 달보다 더 많은 사색꺼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몸 밖의 몸은 무슨 신비한 다른 세계의 몸이 아니다. 몸 안에도 몸이 있고 몸 밖에도 몸이 있고 꿈속에 뜨는 몸도 있다. 연못의 달그림자를 고요하게 바라보노라면 몸 안의 몸과 몸 밖의 몸도 함께 연못 속에 드리워진다.
延促由於一念 연촉유어일념
寬窄係之寸心 관착계지촌심
故機閑者 고기한자
一日遙於千古 일일요어천교
意廣者 의광자
斗室寬若兩間 두실관약양간
시간의 길고 짧음은 한 찰나의 마음에서 말미암고
공간의 넓고 좁음은
한치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마음씀의 기미를 한가롭게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하루가 천고의 세월보다 길 수 있고
생각을 넉넉하게 조절할 수 있는 사람에겐
조그만 방이라해도
넓이가 하늘과 땅 사이처럼 될 수도 있다.
한 골 차로 뒤지고 있는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에서 후반전 5분 남은 시간과 추가시간은 왜 그리 빨리 후다닥 지나가는지 모른다. 반대로 비겨도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경기에서 영대영으로 팽팽하게 경기가 진행될 때 똑같은 5분과 추가시간은 그렇게 더디게 흐를 수가 없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랍선수가 갑자기 운동장을 침대로 만들어버리면 텔레비전을 지켜보는 열성 축구팬의 혈압은 하늘로 산으로 치솟는다. 골인 장면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다른 세상으로 이동해버렸다는 뉴스가 나온 적도 있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늘 좁아터진 사람이 있고 좁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마음속이 늘 넉넉한 사람이 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는 교통정체에 걸려있는 도로도 널찍하게 느껴지지만 급히 가야될 때는 자동차 한 대만 앞에 있어도 그 놈의 도로가 왜 그렇게 좁은지 모른다. 가끔씩 오토바이는 왜 끼어드는건지. 도로상태도 마찬가지이다. 건강한 상태에서는 서울시내 도로 상태가 어떤지 관심도 없다. 문제없이 넘어간다. 언젠가 고관절 바로 아래쪽 뼈가 다섯 조각이 나면서 조그만 뼈 하나가 튕그러진채 119에 실려 간 적이 있다. 아 그 바퀴의 튀어 오름과 콕콕 찌름의 협주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혼자 빙그레 웃을 때가 있다.
競逐聽人 경축청인
而不嫌盡醉 이불협진취
恬淡適己 염탐적기
而不誇獨醒 이불과독성
此釋氏所謂 차석씨소위
不爲法纏 불위법전
不爲空纏 불위공전
身心兩自在者 신심양자재자
다투면서 쫒아감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두면서도
모두가 취해 있다고
혐오심을 내지 않으며
고요하고 담담함을
나에게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홀로 깨어있다고 자랑하지 말지니
이것이 석씨께서 말한
법에도 얽매이지도 않고
공에도 얽매이지 않아서
몸과 마음이 둘 모두
자재하다고 하는 것이라네
무언가에 쫒기듯 잔뜩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눈에 들어와도 필시 무슨 사연이 있으려니 생각하면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고요한 사람은 자신이 고요하다고 새삼 자랑하지 않는다. 미움이 사라지고 자랑이 증발되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從冷視熱 종랭시열
然後 연후
知熱處之奔走無益 지열처지분주무익
從冗入閒 종용입한
然後 연후
覺閒中之滋味最長 각한중지자미최장
냉정해지고 나서
열냈던 것을
바라본 연후에
열내면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것의
무익함을 알게 되고
우왕좌왕 바쁨에서
한가로움으로
들어간 연후에
한가로움 속의 재미가
가장 뛰어난 것임을 알아차린다네
무더운 여름이 매미소리와 함께 지나가고 있다. 저 매미날개도 땀을 흘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더위 먹는 바람에 시들어가던 나뭇잎도 소낙비가 한차례 두드려주고 지나가면 생기를 되찾는다. 빗물에 젖어 묵직하던 우산도 햇볕에 잠깐 말리면 다시 뽀송뽀송해진다. 서울은 대체로 다 좋은데 비 쏟아지는 날 건물에 처마가 없는 것이 좀 아쉬울 때가 있다. 시골마을 처마 밑 마루에 앉아 소낙비를 피하고 있노라면 풋풋하게 콧속을 파고들었던 흙냄새는 여러 사람의 기억속의 후각세포까지 훈훈하게 해준다.
툇마루에서 단잠을 들어있다가 슬며시 귀만 살짝 깨어날 무렵 뒷산에서 울어주던 뻐꾹새는 아직 살아있는지 어쩐지 알 수 없지만 기억과 추억속의 한낮의 뻐꾸기 달그림자가 되기도 하면서 뙤약볕 내리쬐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