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화엄경』을 읽어가는 방법의 하나로, 이 경전에 등장하는 질문이 무엇이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 경전의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주목하는 방법을, 필자는 여러 번 강조했다. 이렇게 ‘문-답’으로 『화엄경』으로 읽어가는 방법은 옛 고승들이 개발하자 제자들도 계승하여 지금도 활용하고 있다. 필자도 이런 방식으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큰 효험을 보고 있다.
「제7. 여래명호품」 초반에서 제기된 질문이 모두 50가지가 있다는 말은 지난 호에서 했다. 그런데 그 중 전반의 10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그 질문을 마치고 바로 이어서 즉 「7. 여래명호품」에서 문수보살을 등장시켜 게송 형식으로 대답하고 있다는 말해도 했다.
이하에서는 나머지 40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려고 한다. 「10. 보살문명품」에서부터 「37. 여래출현품」에 이르는 총 28품에 걸쳐 대답하고 있다. 그런데 총 28품도 잘 들여다보면, 갈래가 보인다. 설법을 하는 주인공을 경학經學의 전문 용어로 ‘설주說主’라고 하는데, 이 ‘설주’ 별로 묶어볼 수 있다. 「30. 아승기품」은 부처님이 직접 설법하고, 나머지는 보살이 설법한다.
그 순서를 보면, ①문수보살(믿음/보광명전)→②법혜보살(견해/도리천궁)→③공덕림보살(실천/야마천궁)→④금강당보살(서원/도솔천궁)→⑤금강장보살(체험/타화자재천궁)→⑥보현보살(성불/보광명전)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보살 이름 옆에 반달 양 괄호를 표시해서, 그 속에 그 보살이 설법하는 핵심 주제를 표시했다. 예를 들면, 문수보살은 ‘믿음’을 소재로 설법을 했다는 뜻이고, 법혜보살은 ‘견해’를 주제로 설법을 했다는 뜻이다.
2.
보광명전에서는 문수보살을 설주로 해서, 「10. 보살문명품」, 「11. 정행품」, 「12. 현수품」이 설해진다. 설법은 아직 믿음을 내지 못한 중생들에게 믿음을 내게 하려는 구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0. 보살문명품」에서는 믿음의 근거가 되는 ‘지해知解’를 설하고, 「11. 정행품」에서는 믿음의 근거가 되는 ‘원행願行’을 설하고, 「12. 현수품」에서는 믿음의 근거가 되는 ‘공덕功德’을 설하고 있다. 이 모두가 중생들에게 믿음을 내게 하려는 구도로 꾸려진 순서이다.
인간은 생각을 하고 사는 존재이다. 본인 스스로 이해가 되었을 때는 혹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일을 완수하려고 노력한다. 어린아이들이 주사를 맞거나 몸의 상처를 치료할 때에 아파하면서도, 그것을 참고 치료를 받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치료하는 것이 지금은 아프고 무섭지만, 결국에는 제 몸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앎[知]’과 ‘추리[解]’는 인간 본질의 중요한 속성이다.
사물과 세상 이치에 대한 ‘앎’과 ‘추리’를 갖추고, 그런 다음에 ‘참(true)’인 앎과 추리에 근거하여 실천하게 되면 그에 따르는 효과를 얻게 된다. 그래서 ‘지해知解→원행願行→공덕功德’의 순서로 설법이 진행되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순서대로 세 품의 중요 내용과 얼개를 살펴보기로 한다.
3.
「10. 보살문명품」에는 한자로 머리 ‘수首’ 자 들어가는 보살이 모두 9명이 등장한다. 그 보살들에게 문수보살이 질문을 던져 대답을 이끌어낸다.
9명의 보살과 주고받는 내용을 보면, 1)각수보살과는 연기법, 2)재수보살과는 중생교화, 3)보수보살과는 업의 과보, 4)덕수보살과는 설법의 다양성, 5)목수보살과는 누리는 행복의 다양성, 6)근수보살과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중생의 게으름, 7)법수보살과는 바른 법을 듣고도 효과 보지 못하는 이유, 8)지수보살과는 지혜 수행만 있으면 되었지 왜 다양한 보조적 수행이 필요한가를, 9)현수보살과는 한결같은 도에 대해, 이런 주제로 문답을 진행한다.
이렇게 문수의 요청으로 9명의 보살들이 게송으로 화답한다. 그러다가 맨 끝에 가서는 모인 보살들이 문수보살 당신께서도 한 말씀하시라고, 다음과 같이 법문을 청한다.
불자여, 우리들의 아는 것을 각각 말하였으니, 원컨대 어지신 이여, 기묘한 변재로 여래가 소유하신 경계를 말씀하소서. ①어떤 것이 부처님의 경계이며, ②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원인이며, ③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로 제도함이며, ④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로 들어감이며, ⑤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지혜이며, ⑥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법이며, ⑦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말씀이며, ⑧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알음이며, ⑨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증득함이며, ⑩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나타남이며, ⑪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넓음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은 문수보살은 10수의 게송으로 대답을 하신다. 문수의 답변을 ‘10종의 깊은 말씀’이라 하여 경학에서는 ‘십심심十甚深’이라 한다. 이렇게 해서 10명의 보살이 각각 10수의 게송으로 답을 하고 있으니, 「10. 보살문명품」에는 모두 100수의 게송이 등장한다. 그 중 문수보살이 읊은 유명한 게송 한 수를 소개한다. 많은 학승들이 인용하고 해설하는 게송이다.
非識所能識 비식소능식
亦非心境界 역비심경계
其性本.淨 기성본청정
開示諸群生 개시제군생
식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마음으로 알 경계도 또한 아니니
그 성품은 본래부터 청정하여서
이런 것을 중생에게 열어 보이네
게송에 나오는 ‘성품의 본래 청정성’은 화엄교학의 핵심 사상 중의 하나이다. 『금강경간정기』, 『선원제전집도서』, 『화엄합론』, 『원각경대소』, 『화엄현담회현기』 등등에 인용되어, 법성종, 즉 화엄종의 교리 체계를 펼쳐내고 있다. 심성에 관한 법성종(=화엄종)과 법상종(=유식종)의 입장이 갈라지는 중요한 철학적 쟁점이다.
4.
「11. 정행품」에서는 바른 지견과 견해에 대한 바른 ‘원행願行’을, 지수보살의 질문을 받아 문수보살이 게송으로 대답하고 있다. 출가자가 일상생활 속에 어떻게 발원하고 행동해야 하는 지를 조목조목 설하고 있다. 모두 141수의 게송이 등장하는 데, 그 조목은 다음과 같다.
①출가 전 재가의 몸으로 있을 때에 올리는 서원 11수, ②출가 수계할 때에 올리는 서원 15수, ③좌선할 때에 올리는 서원 7수, ④외출하거나 옷 입을 때에 올리는 서원 6수, ⑤양치하거나 씻을 때에 올리는 서원 7수, ⑥걸식하러 마을로 들어갈 때에 올리는 서원 55수, ⑦마을에서 걸식할 때에 올리는 서원 22수, ⑧수행 처소로 되돌아와 씻을 때에 올리는 서원 5수, ⑨경을 읽거나 부처님을 뵙거나 탑에 절할 때에 올리는 서원 10수, ⑩씻고 잘 때에 올리는 서원 3수이다. 출가자가 일상에서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설하고 있다. 이렇게 수행을 하면 반드시 효과가 있다고 법문을 맺는다.
5.
위와 같이 부처님의 청정한 수행에 대해 문수보살이 게송으로 대답해 마치고나자, 이제는 여러분께서 수행하던 좋은 공덕을 말씀해주시라고 문수보살 쪽에서 청한다. 그 청을 받아 현수보살이 359.5게송으로 답변한다.
이렇게 「12. 현수품」이 구성되어 있다. 긴 게송을 끝내고 다음에는 10가지 삼매를 말씀하시며, 교묘한 비유로 깊은 이치를 설하신다. 끝으로 법의 깊고 얕은 것과, 믿어 이해하기 어렵고 쉬움 것을 비교하여 실제로 증득하는 것을 보여주신다.
344.5수에 달하는 긴 게송을 전통 교학에서는 ‘덕용해수德用該收’라고 과목 이름을 붙인다. 수행을 하게 되면 얻게 되는 공덕을 낱낱이 설명했다는 뜻이다. ①발심의 공덕에 대해 5게송, ②빼어난 능력에 대해 7게송, ③믿음으로 인해 갖게 되는 실천의 지위에 대해 50.5게송, ④열 종류의 삼매가 가지는 위대한 작용에 대해 203게송, ⑤비유로 마무리하는 게송 79게송, 이렇게 크게 다섯 범주로 노래하고 있다.
믿음으로 인해 얻게 되는 공덕을 노래하는 게송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대목이 있다.
信爲道元功德母 신위도원공덕모
長養一切諸善法 장양일체제선법
斷除疑網出愛流 단제의망출애류
開示涅槃無上道 개시열반무상도
신심은 도의 근본 공덕의 어미
일체의 선한 법을 길러내오며
의심의 그물 끊고 애정 벗어나
열반의 위없는 도 열어 보이네.
이렇게 하여 믿음과 관련하여 「11. 보살문명품」에서는 ‘지해’를, 「12. 정행품」에서는 ‘원행’을, 「13. 현수품」에서는 ‘공덕’을 각각 설하고 있다. 이 3품을 읽다보면 우리는 불교, 그 중에서도 『화엄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과연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운명에 대한 믿음도 아니오, 절대자에 대한 믿음도 아니다. 저마다의 청정한 수행이 원인이 되어 그에 따른 결과로서 온갖 공덕이 초래 된다는 인연법에 대한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