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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위한 어려움 타개와 분쟁해결③

 


성운대사 지음
조은자 옮김


<지난 호에 이어서>


왕옥운王玉雲과 조수왜趙綉娃의 논쟁
1970년대 가오슝시의 국민당과 민사당民事黨은 모두 상당한 세를 얻고 있었습니다. 국민당의 왕옥운 선생은 가오슝시장에 당선되었고, 민사당의 조수왜 여사는 성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한 분은 의기양양한 중년신사로 가오슝에서 여러 차례 의장을 지낸 적이 있었으며, 시장까지 당선되니 더 품위 있어 보이며 우러러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아름다우면서도 대범하고, 시의원 조선표趙善標 선생의 따님으로 성의원에 당선되었으니 의회의 꽃이라 할만 했습니다.
본래 시장은 시장 일을 하고 성의원은 성의원 일을 하면 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한번은 왕옥운 선생이 기자간담회에서 조수왜 의원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약간 하였습니다. 참을 수 없었던 조수왜 의원은 당장 법원에 고소하겠다고 하였고, 가오슝시의 많은 사람이 나서 그만두라 권했어도 그녀는 끝까지 고소하겠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물론 시장에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계스캔들을 일으켰으니, 이 사건은 고소 대상인 왕옥운 시장에게도 불리했습니다. 가오슝시 당위원회 주임위원인 계리과季履科 선생이 제게 나서달라고 하였고, 저 역시 당의 지시를 따라 그들을 화해시키는 데 협조하였습니다.
다행히 조수왜 씨는 학생 시절 수산사에서 삼보에 귀의하여 저의 신도가 되었기에, 저는 조수왜 씨에게 한 발 양보하라 권하면서 결국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분석해 주었습니다. 시의원과 시장이 논쟁하면 결국에는 손해를 보게 되니, 모두 화해하고 화목하게 더불어 평화롭게 잘 살면서, 이 ‘더불어’를 귀히 여기고 사회와 민중을 위해 의회에서 더 많이 국민의 복리를 위해 힘쓰다 보면 반드시 훌륭한 명성을 얻게 될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이와 같은 제 권유에 그녀는 “스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하고 답했습니다. 모두들 무척 의외라 생각했습니다. 두 호랑이가 한 치의 양보 없이 대치하던 국면이 갑자기 갈무리되었고, 법정 싸움으로 번지지도 않은 채 가오슝 정계의 한 차례 먹구름은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대로 부처님과의 인연에 기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법은 인아 사이에서 일정 부분 공헌을 하고, 일정 부분 건의하고, 일정 부분 관리를 하는 데 꽤 쓸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에 저는 왕옥운 선생과 조수왜 여사를 불광산으로 초대했습니다. 어느 날 황혼 무렵이었는데, 두 사람이 화해서에 서명을 하며, 가오슝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치적 해프닝은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 문제 해결에 있어 저는 그들에게서 차 한 잔 받아 마신 적 없고 그들에게서 감사를 받은 적도 없지만, 이렇게 유야무야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정치를 좋아하지 않고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도 않으며, 정치인에게 청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타이완에서 저는 누구에게도 돈 봉투를 보내지 않았고, 건축하며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했어도 저는 설법을 할 뿐 부탁하지도 않고 돈 봉투로 해결하지도 않았으며, 불법의 힘만을 사용했습니다.
“정치를 묻되 간섭하지는 않는다”라는 태허太虛 대사의 주장은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국민의 복리에는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정치상의 통치 철학에 대해서는 우리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계리와 주임위원도 저더러 가오슝시의 입법위원 선거 경쟁에 나가라 권한 적이 있지만, 감당할 능력이 안 되어서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의 먼 조상까지 남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저의 신앙인 부처님까지 대중의 모욕을 받게 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정치관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본디 태허 대사의 이념을 다르고 있지만, 자주 불광산에 참관하러 오고 불법을 논하러 오는 타이완의 정치인에 대해서도 불법의 인연이 다소 있습니다. 불법이 있기에 그들에게도 방편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수많은 정치인 역시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리학’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런 분쟁은 모두가 감정적으로 나서서 한쪽 편만을 돕고 다른 한편은 돕지 않으면 한쪽만 감싸게 되니, 상방에게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자명합니다. 또는 당사자가 손해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어도 그것 역시 평화로운 화해가 아닙니다. 저는 쌍방의 체면을 모두 살려주고, 한 발 물러날 수 있게 해주어야 일은 잘 갈무리되고, 사람은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들 마음에도 이렇게 매듭지어지기를 희망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화해’라는 관리는 민심에 적합해야 하고, 시기적절해야 하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편애해서는 안 되고, 공정하지 않으면 안 되며,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관리학에 있어 이것은 반드시 주의해야 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