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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습대로 살아가게 하는 가르침

인문학 독자를 위한 화엄경



김명환
불광출판사 제작부장


『인문학 독자를 위한 화엄경』
저작·역자 박보람
125×185mm
16,000원
불광출판사 펴냄



이 책은 불교 입문자와 인문학 독자를 위해 불교 경전의 핵심적인 내용만 쏙쏙 뽑아 쉽고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낸 ‘인문학 독자를 위한 불교 경전’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화엄경』은 경전명 그대로 온갖 꽃으로 장엄된 부처님의 세계를 설하는 경전이다. 그 세계는 과연 어떤 세계일까? 하지만 그 세계를 확인하기 위해 방대하고도 어렵게 느껴지는 『화엄경』 원전을 용기 있게 들추기는 부담스러울 터. 이 책은 화엄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일종의 준비운동이자 고통을 여의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의 첫걸음이 되어 줄 것이다.


지금, 여기의 ‘나’를 포함한 온 세계는
모두 부족함이 없는 부처님이다


보통 대승 경전에 ‘불설佛說’, 즉 ‘부처님이 설하는’이란 표현이 붙는 것과 달리 『화엄경』은 ‘설불說佛’을 붙여 설불 경전이라 불린다. 부처님이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다른 제자들에게 설하는 『금강경』이나 『법화경』과는 달리 이 경전은 여러 보살들이 “부처님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을 때 그 주변의 세계, 즉 불세계佛世界가 어떠한지를 묘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른 깨달음’, 즉 자신의 참모습을 알게 된 존재에게는 ‘나’와 ‘너’, ‘부처님’, ‘중생’과 같은 구별이 없어지고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구분될 수 없는 하나의 사태라는 지각이 생긴다. 따라서 ‘나’의 본모습이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고, ‘부처님’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는 통상적으로 대부분의 불교에서 행복을 추구하지만 부족한 ‘나’가 수행을 통해 완전한 부처님이 되기를 목표로 하는 것과 다르다. 『화엄경』은 ‘나’ 그대로 온전한 부처님임을 깨달음으로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저자는 이런 점에서 다른 경전들과 구분되는 『화엄경』의 특징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작은 티끌 속의 거대한 우주,
그 우주를 담은 지혜의 경전


전설에 따르면, 대승불교의 큰 인물인 용수보살이 용궁에 갔을 당시 세 종류의 『화엄경』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상‧중‧하본의 세 가지 『화엄경』 중에 상본과 중본은 분량이 너무나 방대하여 인간 세계에 가져올 수 없었고, 그나마 가장 짧은 하본을 외워 인도에 전한다. 그 10만 게송의 하본 중에서도 3만 6천 게송 분량이 동아시아에 전래되어 한문으로 번역되고, 바로 이 버전이 우리가 알고 있는 『화엄경』의 기초가 된다.
한편 『화엄경』 「여래출현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큰 경전이 있어 분량이 온 우주와 같고 온 우주에 있는 일이 다 적혀 있다. 그런데 이 경전은 아주 작은 티끌 속에 들어있어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한다. 어느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는 즉시 작은 티끌을 깨뜨리고 이 큰 경전을 꺼내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였다.’ 이 구절은 우리 모두 부처님의 속성, 불성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의 번뇌에 뒤덮여 부처님으로서 살아가지 못함을 이야기한다. 용궁에 감춰져 있던 『화엄경』을 용수 보살이 지상으로 전했듯이, 우리는 ‘나’ 안에 숨겨져 있는 부처님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 지혜가 담긴 『화엄경』을 읽어나가는 방법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만약 여러분이 ‘행복’을 ‘나의 이익’으로 삼아 인생의 목표로 추구하고자 한다면 여러분이 지금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2,500여 년 전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사람이 걷고자 했으며, 스스로 개척해 간 끝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된 길의 들머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타마 싯다르타가 하고자 했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어 이룬 것은 오직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 15쪽


불교의 시선에서 지금, 여기의 ‘나’의 삶은 여러 종류의 고통이 폭류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의 ‘나’가 목표로 해야 할 궁극의 행복은 어떤 감각적 쾌락으로 고통을 무마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를 여의는 것이지요.
- 16쪽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참모습을 여실히 알아 모든 고통을 여읜 부처님은 지금, 여기의 ‘나’,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과 조금도 다름없다는 것이 『화엄경』이 바라보는 ‘나’이자 ‘부처님’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하루하루 고통을 다른 고통으로 밀어내며 살아가는 ‘나’가 바로 부처님이라니요?
- 22쪽


초기 화엄교학에서는 형태나 매체 등과 관계없이 ‘나’의 참모습을 여실히, 모자람 없이 설하여 모든 존재들이 자신의 참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가르침이라면 그것이 바로 『화엄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원만한 가르침’이라는 뜻의 ‘원교圓敎’라고 일컬었는데 그 내용인즉슨 ‘나’의 참모습은 바로 조금도 모자람 없는 부처님이라는 것이지요.
- 36쪽


행복을 추구하고 있으나 부족한 ‘나’가 수행을 통해서 완전한 부처님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다른 불교와 달리 『화엄경』은 ‘나’가 그대로 온전한 부처님임을 깨달음으로써 중생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 59~60쪽


‘나’의 참모습을 알지 못한다면 나는 과거에 매달리고 현재에 집착하며 미래를 걱정합니다. 또 나는 여기에 갇혀서 거기에 이르지 못하여 시방세계에 두루하지 못합니다. 또 나는 ‘나’에 매달리느라 ‘너’를 밀어내고 ‘부처님’을 존경하며 ‘중생’을 깔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은 무엇을 기준으로, 무엇에 의거한 것일까요? - 103~104쪽


상즉상입의 관점에서 ‘나’와 이 세계, 여러분의 참모습을 관찰한다면 ‘나’는 곳 여러분이고 여러분은 곧 ‘나’입니다. ‘나’에게 여러분이 존재하고 여러분에게 ‘나’가 깃들어 있지요. 따라서 ‘나’라고 하는 그 순간에, 그곳에, 그 생각에 여러분이 존재하며 그 순간이, 그곳이, 그 생각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나아가 이 세상 전부입니다. 이런 까닭에 상즉상입이라면 ‘나’는 결코 여러분과 다른 ‘나’일 수 없으며 이 세상의 총합이 바로 ‘나’입니다.
- 122쪽


이제까지 살펴본 바에 따른다면 『화엄경』은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를 배워서 그전까지 없었던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우리가 이전에 아니었던 어떤 존재나 상태가 되라고 말하는 경전이 아닙니다. 오해의 소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화엄경』은 무엇을 하기 위한 경전입니다. “‘나’가 온전한 부처님”임을 믿으려는 서원을 일으켜서 부처님이 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 1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