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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잘 살아가는 지혜바라밀

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사이버공간처럼 비쳐질 수 있습니다.
마치 꿈을 꾸면서 꿈인 줄 모르다가 꿈에서 깨고 나면 아무 것도 없다는 무대천인 것을 확인하게 되는 이치와 같다 할 것입니다.
우리네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몸에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온五蘊으로 구성되어 있는 집합체라 할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이 감각기관의 작용으로 눈으로는 보고, 귀로는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은 감촉을 느끼고 정신으로는 일어나는 분상을 살피면서 사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생활입니다.
그것을 『반야심경』에서는 ‘오온이 공함을 비추어보고 온갖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바람과 같고 물과 같다’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은 형상적인 껍데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으며, 감각 기관과 인식 기관으로 가름되지도 않는 것들입니다.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는데 있어서 사람의 시력은 근시近視가 있는가 하면 원시遠視도 있고 난시亂視도 있습니다. 시력視力이 2.0인 사람도 있는가 하면 마이너스로 떨어져 안경의 도움을 받아야만 사물을 볼 수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물을 관찰하는 데에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물을 관찰하는데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으로 볼 때만 가능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엑스선, 적외선, 우주선, 감마선의 빛은 인식기관인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것을 부정하는 이들은 없습니다. 귀 또한 사이클이 안 맞아서 못 듣고 있을 뿐이지, 지구 안에서 가장 큰 소리는 지구의 자전하는 소리라 하였습니다. 그러니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마음으로 보고 들으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지혜로운 이는 복을 지으며 현세를 살아갑니다. 설혹 알게 모르게 빚을 져도 잘 정리해가며 빚을 갚으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는 현세에서 갚을 것을 다음 생으로 가지고 가, 결국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져 더 무겁고 힘들게 빚을 갚아가며 살아가야 됩니다. 그러니 빚지고 사는 인생을 살게 되면 안 될 것입니다. 빚을 놓고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생에서 복을 짓고 덕을 쌓는 인생은 어떻게 사는 인생일까요?
지혜롭게 사는 길입니다. 베풀며 사는 인생입니다. 보리심과 자비심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마음, 선근善根과 지혜智慧로 살피면서 살아가는 마음, 사랑하는 연민심憐愍心으로 살아가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 끼니를 한 끼 채우려고 보리방아를 찧고 남은 보릿겨를 쑥과 버무려 보리개떡을 만들어 먹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보리개떡을 먹어 본 어른들은 그 맛을 알고 있으니 손도 대지 않고, 열 살도 안 되었던 어린아이는 보리개떡을 대나무 소쿠리 째 무릎 위에 올려놓고 먹었습니다. 그리고 토사곽란吐瀉癨亂을 일으켜 크게 힘들었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맛있다는 쑥떡조차 보리개떡이 생각나서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음식도 한번 얹히고 나면 평생 갑니다. 그러니 마음속에 담겨져 있는 그 응어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망을 원망으로 갚으면 원망은 쉼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쉬어야 합니다. 끓던 물을 식히려면 타던 불이 꺼져야 하는 이치와 같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보면,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은 부처님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을 수 있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자리입니다. 상락아정은 열반사덕涅槃四德이라 하는데, 항상 된 나(我)는 법신法身, 즐거운 나(我)는 열반涅槃, 참나(眞我)는 부처, 깨끗한 나(我)를 법法이라 했습니다. 그 이치를 알고 규범대로 살면 몸이 편안해집니다. 선정삼매禪定三昧를 닦으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상대적으로 드러나는 무상無常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인 번뇌煩惱와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오욕락五欲樂의 망상妄想으로 생긴 사대四大는 무상無常하고 일체는 고통과 괴로움인 번뇌이며 자아自我는 무아無我이고 부정不淨한 것은 현상계現相界입니다.
지혜智慧를 닦는 것은 의심을 깨뜨리기 위함이요, 의심을 깨뜨리고자 하는 것은 도를 닦기 위함입니다. 가야 할 길을 가기 위해 도를 닦는 것은 부처님의 성품인 불성佛性을 보기 위함이요, 불성을 본다는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깨달음을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번뇌煩惱가 일어나지 않는 위없는 대열반大涅槃을 얻을 수 있는 수행 정진을 닦아가야 하겠습니다.


삶과 죽음의 이중 구조에서 벗어나고자 하거든 근본을 잃어버리지 말고 자기 도리를 다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면, 어떠한 모습으로 죽음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문제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다가 죽음이 목전에 다가와서야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인과因果를 믿고 윤회輪迴의 인과법因果法으로 윤회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죽음이 목전에 닥쳐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죽음을 맞이할 때에는 잘 살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러한 인생이 지혜로운이의 생활이라 할 것입니다.


서양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수행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의 완성이다. 그것은 죽음의 가치를 진정한 삶의 가치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다.”고 했습니다. 4백 년 전, 셰익스피어는 그러면서 ‘한 번의 잠으로 일체의 고뇌를 다 끊어 버릴 수만 있다면 그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완성이다.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죽음은 해탈이요, 열반이요, 삶의 완성’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바로 그 ‘열반에 대한, 해탈에 대한, 삶의 완성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비극’이라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 죽음이란 육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육신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어쩔 수없는 일이다. 여래如來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이다. 육신은 여기에서 떠나더라도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진리의 길에 살아 있을 것이다. 내가 떠난 후에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나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물질은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바람이 떠나면 죽는 것이요, 불기운이 떠나면 병든 것이요, 물 기운이 떠나면 늙는 것이요, 흙 기운이 떠나면 본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육신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안 죽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요, 어리석음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다 겪는 일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욕구 욕망 욕심으로 가졌던 그 수많은 욕락欲樂의 덩어리들이 무명의 얼굴인데, 그것들이 설사 지켜져서 내 곁에 항상 있다 할지라도 어느 날은 내가 떠나도 떠나야 할 시간이 기다리고 있으며 도래하기 마련입니다.
그 자리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을 비추어 보면서 살아 있는 오늘을 더 열심히,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내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지혜로운 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인색하지 말고 성내거나 질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기심을 채우고자 정의를 등지지 말고 원망을 원망으로 갚아서는 안 됩니다. 위험에 직면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이익을 위해서 다른 이를 모함하지 말아야 합니다. 객기 부려 만용 피우지 말고 허약해서 비겁하지 말며 지혜롭게 중도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모습입니다.
사나우면 남들이 꺼려하고 나약하면 남들이 업신여깁니다. 그러니 사나움과 나약함을 버리고 중도中道의 길을 지키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불기 2568년 갑진년 우란분재일 기도를 회향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