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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마음 닦는 수행과 보살계 실천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모든 종교에는 소위 교주가 있습니다. 교주란 해당 종교를 만든 인물로, 절대적 지위가 당시는 물론 뒷사람들에 의해 더욱 강화되는데, 그 누구도 감히 교주와 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그 자리는 감히 넘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교주 석가모니처럼 누구나 번뇌를 떨쳐 해탈하면, 부처가 된다고 합니다. 부처가 되라고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철학이자 사상이기도 합니다.
필자가 요즈음 연재하는 󰡔범망경󰡕에서도 깨달음의 결과[佛果]를 얻기 위해서는 ‘마음자리[心地]’ 수행하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수행을 통해 부처님이 되면 수많은 공덕을 자신도 성취하여 어떤 번뇌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마음자리 닦은 수행과 더불어, 󰡔범망경󰡕에 나오는 보살계를 받들어 실천하라고 합니다.
깨달으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행위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물음의 대답을 󰡔범망경󰡕에서 말하는 계戒의 성격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범망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계는 여러 부처님의 근본이시며, 보살들의 근본이며, 불성佛性의 종자種子니라.”


󰡔범망경󰡕 본문에 따르면 그 계는 ‘광명금강보계光明金剛寶戒’인데, 이 계를 바탕으로 그 위에서 모든 교리의 가르침이 운용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계는 부처님 자체이며 법신이며 법계라고 󰡔범망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범망경󰡕 보살계를 항상 외우면서[常誦], 그것의 실천을 근본으로 삼아 심지心地 수행을 계속해 나아가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2.
마음자리 수행에는 긴 시간과 공력이 필요한데, 수행의 단계마다 대승보살계를 항상 외우고 실천하라 합니다. 마음자리 닦는 노정을 󰡔범망경󰡕에서는 이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10발취심發趣心⇒10장양심長養心⇒10금강심金剛心⇒10지地 수행입니다. 이는 󰡔화엄경󰡕의 10신⇒10주⇒10행⇒10회향⇒10지⇒등각⇒묘각으로 진행되는 수행 지위를 응용한 것입니다. 각 단계에 따른 수행의 지위에서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 양상들이 󰡔범망경󰡕(상권) 전체에 걸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행은 심지心地’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듯이, 소위 ‘마음[心]’을 닦는 수행입니다. 이런 마음 수행은 자칫하면 추상적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나던 당시當時와 또 그런 운동이 일어난 현지現地에서는 그들의 운동이 ‘몸과 마음을 동반하는 구체적인 실천 운동’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중국에 들어와서는 그런 모습은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중국에서 출가자는 세상 밖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중국의 유교적 봉건 체제 속에서 출가 승단의 대對 사회적 실천 운동은 미미했습니다. 비록 구호로는 ‘대승大乘’이었지만, 드러나는 삶은 ‘소승小乘’이라 할만 했었습니다.


3.
󰡔범망경󰡕의 「하권」에 등장하는 ‘10중대계’와 ‘48경계’의 조목 실천을 통해 자비행과 이타행이 중심을 이룹니다. 필자가 ‘해석’하건대, 대승보살계를 항상 외우면서, 그리고 그 덕목 실천을 강조하는 이유는, 대승 운동의 진정한 실천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보여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대승 불전들 특히 논서들은 ‘추상적 사유’로 하는 실천에 대해서는 장황한 이론을 세우면서도, 정작 ‘구체적 몸’으로 하는 실천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형이상학적 주제에 대한 논의는 많았지만, 정작 윤리와 가치문제에 대한 논의가 적습니다. 이런 역사적 현실을 직시한 중국의 대승 불자가(또는 불자들이) 󰡔범망경󰡕을 편집했고, 편집하는 방식으로 ‘지위地位별 수행’과 ‘보살계 실천’을 ‘병행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대승불교 운동의 핵심인 자비행과 이타행을 이 지역의 구체적인 역사 현장에서 실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범망경󰡕 보살계 출현의 철학적 의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범망경󰡕 하권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48경계’ 중 제34계는 “잠시라도 소승을 생각하지 말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조계종 스님들은 아시겠지만, 종헌 종법상 ‘구족계’를 받아야 정식 승려가 됩니다. 그런데 ‘구족계’는 󰡔사분률󰡕이라는 초기 불교의 율장에 기초해 있습니다. 이런 율장들은 부파불교 교단들이 오늘에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승을 특정해서 언급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범망경󰡕 계본으로 포살을 하는 지금의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런 모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이 지점에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구족계’는 유명무실해졌으니, ‘마음자리[心地] 수행’과 ‘계戒 실천’의 ‘병행竝行’을 강조하는 󰡔범망경󰡕의 정신을 살리자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대승의 전통을 이어온 한국의 전통 종단은, 이미 법신法身의 상주를 믿고 있고, 또 모든 중생은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어서 성불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이미 일용 의식儀式을 통하여 우리들의 신행 생활 속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습니다. 조석으로 올렸던 ‘향수해례香水海禮’가 그렇고, 현재도 쓰는 삼보통청의 ‘청사請詞’와 각종 시식의 ‘착어着語’들도 역시 그렇습니다.


4.
혹 호사가들은 필자의 이런 시각에 대해 율사도 아니면서 율문律文을 언급한다고 설왕설래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렇게 󰡔범망경󰡕에 주목하는 것은 필자만의 새로운 시각도 아닙니다.
이미 일제강점기에 백용성 선사께서도 출가 승단의 계율 문란을 염려하면서 󰡔범망경󰡕에 공을 들이셨고, 해방 후에는 일타 스님도 󰡔범망경󰡕 유포에 공을 들이셨고, 급기야 이지관 총무원장 재임 시절에는 󰡔범망경󰡕에 입각한 포살을 종단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도의 확산이 출가 스님들을 넘어 재가 불자들에게 펴졌으면 하는 바람 속에서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는 제도가 도입되기를 기대하면서, 우선은 󰡔범망경󰡕을 수시로 읽고 형편껏 세속의 삶 속에서 대승 보살도를 실천하기를 함께 발원합니다.


5.
이에 무겁고도 중대한 계戒 조목 열 가지를 소개합니다.


① 중생을 죽이지 말라.
② 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말라.
③ 음행하지 말라.
④ 거짓말하지 말라.
⑤ 술 팔지 말라.
⑥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⑦ 저를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라.
⑧ 제 것을 아끼려고 남을 욕하지 말라.
⑨ 성내지 말고, 남이 참회하거든 받아줘라.
⑩ 불법승 3보를 비방하지 말라.


생활 속에서 항상 잊지 말고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 불자 된 자의 삶입니다. 이 열 가지 덕목을 잘 음미해보면, 이것을 잘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수많은 공덕이 쌓일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유튜브 등 SNS가 발단된 세상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남을 깎아내리고 비방하는 일들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범망경󰡕에서는 말합니다. 마음자리 수행을 하면서 동시에 이타적 보살행을 실천하라고 말입니다. 이런 수행과 실천이 근본 자리가 되어 그 위에 무수한 열매가 열린다고 말입니다. 대지 위에 온갖 과일이 영글어 가듯이, 이런 수행과 실천 속에서 복이 쌓인다고 말입니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라, 자기 자신이 자신을 단속하는 데에 있습니다. 누가 복을 주는 것도 벌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자율입니다. ‘자율자동차’가 누구의 조정도 없이 스스로 갈 수 있듯이, 그런 자율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나 말고 다른 어떤 운전자가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짓고 내가 거두고, 이런 나가 모여 우리‘들’을 이루어, 우리‘들’이 짓고 우리‘들’이 거두는 것입니다. 여기에 근본은 계 지키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