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
연세대 명예교수, 철학 전공
1.
종교로서의 불교는 참으로 특별한 부분이 있다. 신神과 신에 대한 기도를 별로 강조하지 않는 점에서 그 특별함이 더욱 드러난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역사상의 많은 종교는 신神을 상정하고 그 신에게 빌고 기도해서 소원을 이루는 종교적 행위가 두드러진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업설業說>로 요약되는 <개인>의 노력과 그 노력의 결과로 인생을 살아간다고 한다. 나아가서는 <개인>이 모인 <공동체>의 노력으로 삶을 가꾼다. 그런 삶은 지금은 물론 과거에서 지금에 이르고, 다시 지금에서 미래로 이어간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불교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종교이다.
필자가 연재하고 있는 범망경에서는 대승의 불자들이 실천해야 할 신구의 3업業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승불교의 종교 생활은 빌거나 기도하는 데에 있지 않다. 대승불교에서는 <개인> 또는 개인이 모여 만든 <공동체>의 업業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지 다양한 각도에서 제안하고 있다. 그리하여 몸소 각자 실천하도록 권하고 있다.
범망경에서는 불자라면 실천해야 할 윤리 덕목을 크게 네 덩어리로 묶고, 다시 각각의 덩어리마다 10가지씩 마음먹기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발심하여 불도를 이루겠다는 마음>, 둘째는 그렇게 발심한 마음을 <기르고 키워가려는 마음>, 셋째는 계속해서 이런 마음을 <금강석처럼 굳세게 지켜가는 마음>, 넷째는 마침내 <본래의 마음자리 드러내기>이다. 한문으로는 ⑴발취심發趣心, ⑵장양심長養心, ⑶금강심金剛心, ⑷지地이다. 이런 단계로 본래의 마음자리를 회복해 가자는 제안이다.
2.
올 2025년은 양력으로 7월 25일부터 8월 22일까지 29일간이 윤달이라고 한다. 음력으로 6월이 두 달 연속하는데, 양력 6월 25일도 음력 6월 1일이고, 양력 7월 25일도 음력 6월 1일이다. 태양력과 태음력의 차이를 맞추기 위한 일종의 약속이다. 그렇지만 음력을 사용하던 민간에는 6월이 두 달이니, <본 6월>에는 본 달에 해야 할 농사일을 하고, 한 번 더 있는 <윤 6월>에는 그동안 미루었거나 특별히 의미 있는 일을 했다. 예를 들면 조상님의 산소를 돌본다든지, <보살계> <수계>를 한다든지 말이다.
<수계受戒>란 ‘계戒를 받는다’라는 뜻인데, 이때의 <계戒>는 일종의 약속 문서이다. 무슨 약속이냐 하면, 나도 불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들어가서 소속 공동체 대중들이 그동안 지켜온 규칙에 동참하겠다는 약속이다. 불교에서는 전통적으로, 비구와 비구니로 이루어진 <출가 공동체>와 남자 신도인 우바새와 여자 신도인 우바이로 이루어진 <재가 공동체>가 있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이렇게 네 공동체를 합쳐서 ‘4부 대중’이라 한다. <보살계>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출가와 재가 모두이다.
전통적으로 <출가 공동체>에서는 사분율이라는 율장律藏에 나온 약속 조목을 지킨다. 많은 조목이 있지만 엄중한 것으로 네 항목이 있다. 성행위, 도둑질, 살인, 깨치지 못했는데 깨쳤다고 말하는 거짓말. 이 네 가지 약속을 어기면 공동체에서 추방한다. 요즈음 사회법으로 말하면 <사형>에 처할 행동이다. 한편 <재가 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3귀의>와 <5계>를 약속하고 지키면 된다. 그런데 <보살계>는 사분율을 지키는 출가 불자나, 3귀의 5계를 지키는 재가 불자나 기존의 계를 지키면서 ‘플러스 알파’로 더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대승의 이타적 삶은 살겠다는 서원이고 발원이다.
3.
세상과 시대가 달라지면서 특히 대승불교가 유행하면서부터는 종전의 <금지>에 중심을 둔 공동체 약속보다는 <권장>에 중심을 둔 약속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타행利他行이다. 대승 경전 작가들은 ‘보살’이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고안하여, 남을 위해 때로는 자신의 이익마저 내주는 업業 짓기를 강조했다. 이를 <보살행>이라고도 한다. <보살로서 마땅히 해야 할 실천>이라는 뜻이다. 이런 <보살행>을 집약적으로 적어놓은 불경이 바로 범망경이다. 그동안 본 연재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듯이, 범망경은 <상권>과 <하권> 두 권으로 이루어졌다. <하권>에는 보살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10가지 중대한 약속>과 그보다는 좀 약하지만 대승 공동체가 지켜야 할 약속 <48가지 가벼운 약속>이 실려 있다. <상권>에는 <하권>에 나오는 그런 약속을 왜 지켜야 하는 지 이유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다.
본 연재의 위에 나온 <1>의 마지막 문단에 소개했듯이, 대승의 불자라면 네 가지 마음을 먹고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 대승 공동체 구성원이 실천해야 할 당위當爲의 구체적 조항이 <하권>에 나오는 <10가지 중대한 약속>과 <48가지 가벼운 약속>이다. 역시 반복적으로 말했지만, 대승에서는 말한다. <인간 마음의 본바탕>에는 <자・비・희・사慈悲喜捨> 네 가지 마음이 가득하고 힘차게 움직인다고 한다. 인간이란 원래가 그렇다는 것이 대승불교의 인간관이다. <인간 마음의 본바탕>은 <심지心地>를 염두에 두고 번역한 것으로, 범망경은 <심지법문心地法門>이다. <인간 마음의 본바탕>에서 나온 경전이다.
이런 대승의 인간관은 화엄경 「여래출현품 제37」에 자세하다. 인간이란 본래 도덕적으로 청정하기가 부처님과 다름이 없건만, 삶 속에서 번뇌가 그 청정함을 가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수시로 형편껏 그 가림을 벗겨내고 닦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실천이 필요한데, 그 실천 덕목을 범망경 <상권>에서 총 40가지로 설명하고, 이어서 <하권>에서는 지켜야 할 규범을 ‘열 가지’와 ‘마흔여덟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4.
범망경 <하권>에 나오는 대승 공동체의 행동 강령을 나도 지키겠다는 약속이 <보살계 수계>이다. 나도 보살로서 이 세상에서 이타적 삶을 살아가겠다는 자발적 약속이다. 약속으로서의 <보살계 수계 법회>는 특정한 일자나 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특별한 날에 했다. 임금이 있던 봉건사회에서는 국왕이 베푸는 특별 행사로 <보살계 수계 법회>가 열리기도 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윤달>에 하는 풍습이 생기기도 했다. <보살계 수계> 대상은 <4부 대중> 모두 이다. 즉 재가이건 출가이건 불자라면 누구나 <보살계>를 받을 수 있다.
<보살계>를 받아 지키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으로, 수 개월간 본 연재에서 필자는 ⑵장양심長養心, 즉 <기르고 키워가려는 마음>을 설명해 가고 있다. 여기에 열 가지가 있는데, ①자심慈心, ②비심悲心, ③희심喜心, ④사심捨心, ⑤시심施心, ⑥호어심好語心, ⑦익심益心, ⑧동심同心, ⑨정심定心, ⑩혜심慧心이다. 이번 8월호에는 ⑩혜심慧心을 소개할 순서이다.
먼저, ⑩혜심慧心의 말뜻을 풀이하면, 지혜를 유지하는 마음 수행이다. 그 내용에 대해 범망경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불자야 ‘지혜로운 마음[慧心]’이란, ‘지혜로운 소견[慧見]’의 마음을 지음이다. 여러 사견(邪見 이사혹利使惑)과 결환(結患 둔사혹鈍使惑) 등의 번뇌는 결정코 영원한 게 없음을 관한다. 순인順忍 중에 이미 공의 이치를 증득했기 때문에 이사혹과 둔사혹 모두가 동일하게 공하기 때문이다. 5음陰도 아니며, 18계界도 아니며, 12입入도 아니며, 중생도 아니다. 일진一眞의 아我도 아니며, 인과도 아니며, 3세법도 아니다. 지혜의 성품에서 광명을 일으키니, ‘완전한 지혜의 불꽃’을 활용하여 만법을 훤하게 밝혀 본래 텅 비고 고고하여 그것을 받을 자가 없음을 보게 된다. 그 지혜와 방편은 ‘장양심長養心’을 낳는다. 이 마음은 기공공도(起空空道 공空에서 가假로 나아가되, 가假와 공空에 자유자재하여 걸림이 없는 수행 길)에 들어, ‘무생심’을 낸다.”
이상의 인용문이 전하는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체의 번뇌는 공하다는 인식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다. 탐・진・치 등으로 대표되는 번뇌란 모두가 인연 속에서 만들어진 공한 존재이니, 실체가 없는 무상한 존재이다. 그런 것이 생성소멸하는 인과 관계를 철저하게 이해하여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가짐 즉 <지혜로운 마음[慧心]>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떨쳐, 그런 번뇌에 얽매지 않는 마음, 그것이 <지혜로운 마음[慧心]>이란다.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자신도 남도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기도나 제사가 아닌 자신의 업을 닦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