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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朱木), 천 년을 버틴 생명

 


홍성범
숲해설가


강원도 태백산을 오르다 보면 해발 1,400미터를 넘는 능선에서 위풍도 당당한 나무들을 만나게 된다. 가지마다 붉은 기운을 머금고 굽이진 줄기를 품고 있는 주목나무다. ‘천 년을 사는 나무’라 부르는 주목나무. 마치 산신령처럼 산을 지키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주목나무는 한국의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침엽수다. 그중에서도 태백산의 주목은 특히 아름답고 장엄하기로 유명하다.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겨울 하얀 눈 속에서도 푸름을 잃지 않고, 세찬 바람에도 몸을 낮추고 다시 뿌리 깊이 서는 그 모습이 마치 삶의 고난을 꿋꿋이 견뎌낸 존경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태백산 주목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156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높은 산악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 쉽게 접근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자연 그대로의 위엄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장군봉 일대에는 수령이 수백 년에서 1,000년에 이르는 노목들이 많다. 어떤 나무는 줄기 둘레가 성인 두세 명이 팔을 벌려야 겨우 감쌀 수 있을 정도다.
한 노학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주목은 인간에게 침묵을 가르친다. 바람에도 말하지 않고, 눈보라에도 웃지 않는다. 그저 거기 있는 것만으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제로 주목나무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태백산의 눈보라, 바위틈에서 싹을 틔운 인내, 그리고 수많은 세월을 견딘 생명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목처럼 성장 속도가 느린 나무도 드물다. 허리는 1년에 1mm 정도 굵어지고, 100년 동안 자란 키는 고작 10m 정도이며 허리둘레는 60cm 남짓이다.
주목은 비록 느리게 성장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모든 나무의 주인인 주목이 된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목나무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의 두위봉에 있다. 수령이 1,400살이 넘는다고 한다.
주목은 태백산 외에도 덕유산, 소백산에 자생지가 있어 각각 지방기념물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고사목이 많이 생겨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주목을 보면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위엄이 느껴진다. 사풍이 몰아치는 한겨울 살을 에는 눈보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상에 우뚝 서 있는 주목을 만나는 것은 겨울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 의연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주목나무를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외모로 드러나는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다른 나무에 비해 성장 속도 늦으면서도 장수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리라. 주목나무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긴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 나무는 100년이 되기까지는 10m 내외의 높이로만 자라다가 그 뒤 100년이 되는 시점부터 생장이 빨라진다고 한다. 긴 시간 내실을 견실히 한 후에 비로소 천년을 대비하는 신비로운 성장방식이다.
나무 성장에 관한 상식을 깨고 천년을 살아오면서 외형적인 성장만을 추구하지 않고 내면을 튼실하게 가꿔온 나무가 주목인 것이다. 주목의 나이테는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그 간격이 촘촘하다. 우리 인간도 외형보다는 내실을 차분하게 준비하고 큰 도약을 준비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임을 주목에게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주목나무는 형태와 품종이 다양하기 때문에 인기 있는 정원수다. 주로 해발 700m 이상의 고산지대 경사지에서 서식하는 아한대성 수종이나, 저지대에서도 잘 적응한다. 대한민국 전역에서 자라며, 러시아 동부, 일본, 중국 동북부 등에 분포한다.
어릴 때는 극음수이다가 커가면서 양수가 되는 특징이 있다. 어릴 때는 초식동물이나 눈보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른 관목의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주목나무 품종은 100여 개에 이른다. 주목나무는 꽤 친숙한 나무지만 주로 특정 시기에만 관심을 끈다. 추운 겨울에 짙은 녹색의 침엽으로 가득 덮인 주목나무는 활엽수의 앙상한 나뭇가지와 강한 대조를 이룬다. 이른 봄 산에는 금빛의 솔방울이 가득 열리고 노란 화분이 땅바닥을 덮는다. 늦은 여름부터 진홍색의 수분이 많은 열매가 열린다.
주목나무는 껍질과 줄기 모두 붉은빛이 강하다. 썩는 데만도 천 년이 걸려서 3,000년에 걸쳐 그 명맥을 유지한다는 주목나무는 줄기의 색깔도 붉어서 그 이름까지도 붉을 주朱를 써서 주목朱木이다. 줄기 껍질은 물론 속도 붉고 꽃도 붉다. 그래서 주목은 겉과 속이 같은 변치 않는 존재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오랜 기간 살면서도 변치 않는 마음을 간직하는 영원성의 상징인 주목나무는 벽사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주목에서 뽑아낸 붉은빛은 귀신을 쫓는 효력이 있다고 하여 궁궐에서 임금이나 궁녀의 옷감을 물들이는데 사용했다. 또 잘 썩지 않기 때문에 평양에서 발굴된 낙랑고분의 관처럼 왕실의 관을 짜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주목나무는 약재로도 귀하게 사용된다.
특히 주목의 껍질과 잎에서 추출되는 ‘탁솔(Taxol)’은 항암 물질로 알려져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남벌과 무분별한 채취로 인해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지금은 보호종으로 지정되었다.
태백산에는 이런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어느 시절, 한 무명의 선비가 태백산으로 들어와 오랜 세월을 수도하며 살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그가 머물던 자리에 주목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선비 주목’이라 불렀고, 지금도 그 자리엔 굽은 줄기와 붉은 가지를 가진 노목이 서 있다고 한다. 그 나무는 해마다 태백의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가지에 붉은 열매를 맺으며 마을을 내려다본다.


이 일화는 주목나무가 단지 나무가 아니라, 기억과 존재, 그리고 기도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태백산을 찾을 때 주목 앞에서 기도를 드리거나 조용히 명상을 하곤 한다. 그들에겐 주목이 하나의 성소이자 위로의 공간인 셈이다.
태백산을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나무는 얼마나 많은 눈과 바람을 견뎠을까. 그 시간 동안 한 번이라도 삶을 포기한 적이 있었을까.”


그 순간 주목나무의 붉은 기운이 마치 살아 있는 듯 내 마음을 감쌌다.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지만, 수백 년을 산 그 나무는 이미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주목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인내와 생명의 강인함,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겸손을 상징하는 존재다. 산을 오를 때마다 우리는 그 앞에서 다시 다짐한다.


“조금은 느려도, 조금은 휘어도 괜찮다. 우리도 저 나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