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연세대 명예교수, 철학 전공)
1.
아무 일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생긴다. 당연한 말이다. 무슨 일이든 해야 그 결과가 생긴다. “모 아니면 도이다”라는 윷판에 견주어 하는 말인데, 세상살이도 그렇다. 불경 속에는 대단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논리도 그렇고 주제도 그렇다. 핵심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이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가 없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범망경 <상권>에서는 이런 도리를 좀 더 논리적이고 넓은 주제로 풀어갈 뿐이다. 단어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첫째는 발심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열 가지로 늘어놓은 것이 범망경에 나오는 <10발취심十發趣心>이다. ‘발취심’이란 발심취도發心趣道를 줄여서 한 말이다. 마음을 내어 도를 향해 나아간다는 뜻이다. 비유하자면 학교에 가기 위해서, 학교에 도착하기 위해서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발을 옮겨 등굣길에 나서는 것과 같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도란 무엇인가? 다른 말로 바꾸면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인 셈이다.
8월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교는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입니까?
2.
속담에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라는 말이 있다. 실천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지혜의 말씀이다. 마음을 먹었으면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그것도 꾸준히. 범망경에 나오는 <10장양심十長養心>에서 장양長養이란 꾸준히 기른다는 뜻이다. 화분에 꽃을 기르더라도 꾸준히 살펴야 하듯, 일 년 농사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인생도 그렇다. 마음을 먹었으면 꾸준히 노력해야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마음을 먹고, 먹은 마음을 꾸준히 이어간다는 게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게다가 마음이란 쉽게 변할 수 있어서 항상 단속하고 살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만져지지도 않는다. 여기에는 ‘꾀’가 필요하다.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거울로 비춰봐야 옷차림도 고칠 수 있고 얼굴도 볼 수 있듯이, 내 마음도 거울 앞에 세워야 한다. 그런 거울이 바로 바깥세상이다. 세상과 단절되어서는 내 마음을 볼 수가 없다. 세상에 비추어야 내 마음이 보인다. 그렇다고 세상에 들러붙어서는 세상을 볼 수 없다. 거울을 보려면 적당한 거리도 있어야 하고, 조명도 필요하며, 무엇보다 거울을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 마음 관리의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용어들이 범망경의 <10장양심>에 소개된다. 세상살이 좀 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집약되어 있다.
꾸준히 길러 가꾸어야 할 마음으로 ‘자애로움’이 있다. 이 단어를 거울로 삼아 내 마음을 거기에 비추어 보는 것이다. 나는 자애로운가? 나는 자애의 마음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는가? ‘자애’라고 입으로 소리를 내어 보고, 손으로 써보고, 그게 어떤 마음인지 말로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가엾이 여김(비참·悲)’도 그런 거울이다. 가치 있는 것에 공감하여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 나에게 그런 마음이 있는가? 그런 마음이 어떤 느낌인지 스스로 느낄 수 있는가? 불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살아낸 세상살이에 공감하여 기뻐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한다. 그분의 일생을 생각하는 것이다. “참 잘 사셨구나. 제대로 인생길을 가신 분이구나. 인생의 참맛을 깨치신 분이구나. 참으로 공경 받을 만한 분이구나.” 이렇게 부처님을 생각하는 게 염불念佛이다.
또 이런 거울도 있다. 남에게 뭔가를 주고 싶은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아야 한다. 먼저 느끼고 알아야 그런 마음을 낼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남이 참 좋아하겠구나’, ‘그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 이익이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어떤 느낌인지 알아야 한다. 남과 함께하는 데서 오는 감정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동행同行’이라는 단어도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지혜라는 단어도 역시 마음을 비춰보는 거울이다. 우선 말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말을 해보고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3.
이렇게 마음을 비춰보는 노력이 쌓이면 마음은 점점 단단해진다. 외부의 조건이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숨어 있던 악한 마음이 살짝 일어나더라도 곧바로 알아차린다. “아이쿠! 이건 아니지!” 하며 휘둘리지 않는다. 마치 금강석처럼 단단해진다. 단단히 먹는 마음을 범망경의 <10금강심十金剛心>에 소개하고 있다. 단단해진 마음으로 목표를 향해 정진하면 끝내는 <10지十地>의 마음에 도달하게 된다. 한 자리 깔고 내는 마음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본마음 말이다. 범망경에서는 그런 마음을 열 가지로 요약하고 있으니, ① 평등혜 체성지, ② 선혜 체성지, ③ 광명 체성지, ④ 이염 체성지, ⑤ 혜조 체성지, ⑥ 체성 화광지, ⑦ 만족 체성지, ⑧ 불후 체성지, ⑨ 화엄 체성지, ⑩ 입불계 체성지이다.
①에서 ⑩까지 명칭 뒤에 모두 ‘체성지體性地’라는 용어가 붙어 있다. 이 말의 뜻은 ‘사람의 본바탕에 갖추어진 성질’인데, 이런 성질을 대지大地에 비유한 것이다. 땅에서 모든 식물이 자라고 그것을 먹고 모든 생명체가 살아간다. 그렇듯이 ‘사람의 본바탕에 갖추어진 성질’에서 열매가 영글어간다. 작은 출렁임도 없고 티끌만큼의 오염도 없는 상태가 된다. 설사 살짝 출렁거리거나 악한 마음이 생겨도 단단한 마음으로 인해 그런 것들을 순식간에 태워 없애버린다. 뜨거운 용광로에 모든 것이 녹아내리듯이 말이다.
이런 마음의 상태를 범망경의 <④ 이염 체성지> 수행에서는 ‘선정(定)’이라고 한다. 모든 잡념이 녹아내리는 그런 고요함이다. 이런 고요함을 느끼도록 힘을 기르는 방법을 열 가지로 압축하여 소개하고 있다.
① 신각信覺·② 사각思覺·③ 정각靜覺·④ 상각上覺·⑤ 염각念覺·⑥ 혜각慧覺·⑦ 관각觀覺·⑧ 의각猗覺·⑨ 악각樂覺·⑩ 사각捨覺이다. 이런 일종의 ‘방편인 수행 방법(方便道)’으로 마음마다 선정의 과보를 체험한다.
이 사람은 선정에 머무는 동안 번뇌를 태우는 불꽃을 일으켜 세속법을 보고 공空을 실천한다. 만약 관찰(念)이나 선정(定)에서 나오면 중생과 함께하는 마음을 내는 선정에 들어가 ‘사랑(慈)’을 내고, (몸소) 수행 방법(道)을 익히고 수행 방법(道法)으로 중생을 교화하니, 이를 이름하여 법락인法樂忍, 주인住忍, 증인證忍, 적멸인寂滅忍이라 한다.
4.
이상의 10종류(品類)의 수행법 중에서 ①·②·③은 순서대로 문·사·수聞思修 등 ‘3혜三慧’에 해당한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들은 내용을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런 실천으로 인해서 선정(定)을 체험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④에서 ⑩까지는 넓은 의미의 ‘7각지七覺支’에 맥이 닿아 있다. 이 말은 범어의 ‘사쁘다 보드히-앙가Saptā bodhy-aṅga’를 한자로 번역한 것인데, 우리말로 풀어보면 ‘깨달음을 이루는 일곱 가지 요소’이다.
본래의 7각지 순서와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염각지(念覺支, Smṛti)는 앞의 모든 과정이 바르게 이루어지는지 깨어 있는 마음으로 살피는 것을 뜻한다. 둘째 택법각지(擇法覺支, Dharma-vicaya)란 지혜로 참된 가르침과 거짓된 가르침, 선법과 불선법을 명확히 구별하고 선택한다는 뜻이다. 셋째 정진각지(精進覺支, Vīriya)란 선택한 법을 쉼 없이 닦아 나가는 용기와 노력의 뜻이다. 넷째 희각지(喜覺支, Prīti)란 수행으로 얻는 깨침의 즐거움(法喜), 즉 내면의 기쁨을 뜻한다. 다섯째 경안각지(輕安覺支, Praśrabdhi)란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져서 거친 번뇌가 가라앉은 상태를 뜻한다. 여섯째 정각지(定覺支, Samādhi)란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흔들림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일곱째 사각지(捨覺支, Upekṣā)란 대상에 치우치지 않고 평온하며 평등한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
이상과 같은 이야기는 초기 경전에 자주 등장한다. 한문으로는 잡아함경雜阿含經 속에서, 팔리어로는 상윳따 니까야Saṁyutta Nikāya 속에 자주 나온다. 그런데 필자가 이런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인용문의 밑줄 친 부분 때문이다. 선정에 들어서는 작은 번뇌도 모두 녹여 없애지만, 선정에서 나와서는 중생을 구호하고 교화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승이다. 《범망경》은 대승을 믿는 불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안내하는 지침서이고, 자신을 돌아보아 남과 함께 세상 사는 길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런데, 이상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모두 수단이다. 역시 중요한 것은 목표이다.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목표로 절에 다니는가? 출가는 왜 했는가?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