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범
숲해설가
전국이 가마솥이다.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한반도가 아열대화된지는 오래지만 올 여름은 더욱 뜨겁다. 그러나 식물에게 여름은 성장의 시기이다. 뜨거운 태양빛을 받으며 왕성한 광합성으로 몸집을 키운다.
한국의 여름을 대표하는 나무들을 지난 7월호 느티나무, 배롱나무, 회화나무에 이어 살펴본다. 이 땅의 여름을 지켜온 나무들은 저마다의 서사와 독특한 생태로 지친 현대인에게 서늘한 그늘과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담장 넘어 피어난 주황빛 그리움, 능소화
여름이 깊어지면 한옥의 고즈넉한 돌담이나 도심의 단단한 시멘트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 강렬한 주황색 나팔 모양의 꽃을 피우는 덩굴나무를 만나게 된다. ‘하늘을 능멸할 만큼 높이 자라는 꽃’이라는 대담한 이름을 가진 능소화凌霄花다. 과거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어 ‘양반꽃’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능소화는 스스로 줄기를 곧게 세우지 못하는 덩굴성 나무다. 대신 줄기 마디마디에서 ‘흡착근吸着根’이라는 미세한 뿌리를 내어, 벽이든 다른 나무든 단단히 달라붙어 위로, 위로 기어오른다. 연약해 보이는 꽃잎과 달리 줄기의 부착력은 놀라울 정도로 강인하여 한여름의 거센 태풍에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한때 “꽃가루에 갈고리가 있어 눈에 들어가면 실명한다”는 소문으로 수난을 겪기도 했으나, 산림청의 연구를 통해 이는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위험한 독성도 없으며 바람에 날리는 구조도 아니다. 들이치는 장대비속에서도 당당히 고개를 들고 있는 능소화는 한여름의 더위를 비웃듯 찬란하게 피어난다.
이 화려한 주황빛 뒤에는 조선 시대 궁궐을 배경으로 한 애틋한 설화가 깃들어 있다.
옛날 궁궐에 ‘소화’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무수리가 있었다. 임금의 은혜를 입어 빈嬪의 자리에 올랐으나, 구중궁궐의 시기와 질투 속에서 임금은 다시 그녀를 찾지 않았다. 소화는 매일 담장 밑에서 임금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다 여름날의 더위와 그리움 속에 지쳐 세상을 떠났다. “담장가에 묻어 달라. 내일이라도 임금님이 오시면 마중해 나갈 수 있도록…”이라는 유언을 남긴 그녀의 무덤가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능소화다. 담장 너머로 고개를 길게 내밀어 길가를 향해 피어나는 것은 임금을 향한 기다림이며, 시들지 않은 채 꽃송이째 툭 떨어지는 낙화는 순정한 마음의 표현으로 읽힌다. 빗속에 떨어진 주황빛 꽃송이는 보는 이의 가슴을 아련하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백성의 아픔을 달래준 하얀 밥송이, 이팝나무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는 단연 이팝나무다. 5월 말에서 6월이 되면 전국에 도포를 입은 것처럼, 혹은 스님 바리때 가득 담긴 이밥(쌀밥)처럼 하얀 꽃을 소복하게 피워낸다.
이팝나무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유래가 전해진다. 하나는 24절기 중 입하立夏 무렵에 꽃이 피어 ‘입하목’이라 부르던 것이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조선 시대에 쌀밥을 ‘이李씨 왕조가 먹는 밥’이라 하여 ‘이밥’이라 불렀는데, 배고픈 보릿고개 시절 이 나무의 하얀 꽃송이가 마치 고봉으로 쌓아놓은 쌀밥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다. 멀리서 보면 나무 전체에 소금이 뿌려진 듯, 혹은 눈이 내려앉은 듯 장관을 이룬다.
과거 우리 민족에게 여름의 시작은 모내기를 해야 하는 분주한 시기인 동시에 지난 가을 거둔 곡식이 떨어져 굶주림에 시달리던 ‘보릿고개’의 정점이었다. 이 가혹한 계절에 이팝나무는 농민들에게 신령스러운 존재였다. 이팝나무 꽃이 풍성하게 피어나면 그해 모내기철에 물이 풍부하여 풍년이 들고, 꽃이 제대로 피지 못하면 가뭄이 든다고 믿었다. 실제로 이팝나무는 수분이 풍부한 곳에서 잘 자라므로, 꽃이 피는 시기에 비가 적당히 와서 나무가 건강하다는 것은 곧 모내기 저수지의 물이 충분하다는 과학적 반증이기도 했다.
가뭄으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을 때 고을 현감들은 이팝나무 아래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우제를 지냈고, 장마가 길어지면 기청제를 지내며 백성의 굶주림을 달래달라고 빌었다. 하얀 꽃송이를 바라보며 배고픔을 달래고 가을의 풍요를 꿈꾸었던 백성들의 소망이 이 나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뙤약볕 속에서 윤기 나는 침묵, 동백나무
남부 해안가와 섬 지방의 여름을 지나다 보면 화려한 꽃 잔치가 끝난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고요한 나무를 만나게 된다.
눈 속에서 붉은 꽃을 피우는 겨울의 대명사로 알려진 동백冬柏나무다. 그러나 정작 동백나무가 제 생명의 내공을 가장 뜨겁게 제련하는 계절은 다름 아닌 한여름이다.
겨울과 봄날의 붉은 열정을 모두 토해낸 동백나무는 여름이 오면 철저히 초록의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남도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칠팔월, 동백나무의 잎은 마치 왁스를 칠한 듯 가죽처럼 두껍고 윤기 나는 두터운 빛깔을 띤다. 이는 한여름의 강력한 자외선과 뜨거운 열기로부터 수분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동백나무만의 강렬한 생존 전략이다. 타들어 가는 태양 아래서도 동백의 잎은 시들지 않고 오히려 기품 있는 짙은 녹색으로 반짝인다.
사람들은 겨울의 동백꽃만을 기억하지만, 그 가혹한 추위 속에서 피어나는 붉은 꽃봉오리는 사실 이 뜨거운 한여름의 뙤약볕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만들어진 결실이다.
모두가 화려함만을 좇을 때, 동백나무는 묵묵히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흡수하여 제 안의 단단한 씨앗과 내년의 꽃눈을 벼린다. 시련과 더위 속에서도 결코 윤기를 잃지 않고 제 자리를 지켜내는 동백의 초록 잎은, 지친 현대인에게 “지금의 견딤이 결국 먼 훗날 가장 찬란한 꽃을 피워내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여름 나무가 건네는 초록의 위로
한국의 여름은 가혹하지만, 그 가혹함을 이겨내게 하는 것은 언제나 대자연이 베푸는 푸른 온정이었다. 담장 너머로 지고지순한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주던 능소화, 굶주린 백성들의 영혼을 따스하게 채워주던 이팝나무의 하얀 이밥, 그리고 뜨거운 뙤약볕 속에서 다음 계절의 찬란함을 준비하며 묵묵히 윤기를 더해가는 동백나무의 깊은 침묵에 이르기까지.
이 나무들은 단순히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에 그치지 않는다. 수백 년 동안 이 땅을 거쳐 간 수많은 조상의 삶과 애환, 웃음과 눈물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서사시이자 문화유산이다.
에어컨 바람과 콘크리트 빌딩 숲에 갇혀 계절의 변화를 둔감하게 받아들이는 현대의 우리에게, 여름 나무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속삭인다. 아무리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좌절하지 않고 제 안의 푸름을 온전히 밀어 올리는 법을, 그리고 그 푸름을 나 혼자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지친 타인에게 서늘한 그늘로 내어주는 넉넉함을 말이다.
이번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왕성한 성장을 하고 있는 나무들을 찾아 숲으로 가보자. 숲에서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는 것은 물론, 눈을 돌려 주변의 거대한 초록 줄기를 가만히 안아보자. 나무들이 써 내려가는 성장의 소리도 들어 보고 그들이 품어내는 피톤치드도 맘껏 들이켜 보자.
숲과 나무들이 건네는 다양한 위로가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