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상
화광전통미술연구소, 중국국가박물관수복연구원
사찰에 가보면 대부분의 불교미술들은 방치하다시피 걸려 있거나 파손의 정도 또한 심한 경우가 허다하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로서는 이러한 기후에 대처하는 보존방법과 수복 기술이 절실히 요구 되는 현실이다. 그리고 수복을 함에 있어서도 그에 따른 전문성이 요구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간적인 여유도 필요하다.
필자가 종사하고 있는 중국의 박물관에서는 여러 형태로 보존처리와 수복, 임모(모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이 수, 당나라에서부터 청나라까지 다양하다. 시대마다 각기 재료의 성질도 다르고 보존처리 방식도 다르다. 몇 년을 거쳐서 시행을 해오는 그림도 있고 탈락이 심하지 않은 문화재는 몇 개월에 거쳐서 마무리가 되는 것도 있다.
작업실은 몇 곳이 있는데, 각기 특성이 있다. 서예를 좋아하는 나라이니만큼 글자의 수복을 하는 곳, 그림의 수복을 하는 곳, 수복이 끝나면 보채를 하는 곳, 그 수복이 다 끝나면 현상모사와 복원모사를 하는 곳 등 세분화 되어있다. 재료 또한 많은 양질의 재료를 갖추고 있어서 어떠한 수복과 임모(모사)가 가능하다.
수복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따지자면 아프고 병이 들어있는 이에게 치료를 통해 생명력을 다시 불어넣어 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아픈 사람도 치료시기를 놓치면 병을 고치기가 쉽지 않듯이 그림 또한 수복을 해야 할 시기를 놓치면 상당히 문제가 심각해진다.
필자가 참여하여 당나라(618년 - 907년) 시대의 그림을 수복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미 생명력이 끝난 그림이었다. 곳곳이 삭아서 없어지고 물감은 아교기가 없어서 부스러져 내렸으며 형체 또한 정확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난감 그 자체였다.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서 그 시대 비슷한 형식의 그림을 찾아서 안료를 분석하고 천을 짜깁기해서 기본 형태만 만드는데도 많은 기간이 흘러갔다. 부스러져 내린 좁쌀 크기의 안료를 퍼즐처럼 맞추는 일은 인내 그 자체다. 서로 비슷한 부분의 색감도 있고 이 부분에 이러한 색감이 맞는지 판단을 해나가는 일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필자의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서화의 수복은 그 시간이 늦어지면 많은 손실을 가져온다.
불화를 수복하는 경우에도 수복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 난감한 경우에 처하는 경우를 간간히 보게 된다. 일정 기간이 지난 불화들은 마치 사람들이 예방주사를 맞듯이 반드시 중간중간 수복과 보채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불화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의 눈에는 멀쩡하게 보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게 되면서 그 불화들은 심각한 병에 걸리게 되고, 점점 죽어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찰 대부분의 불화들이 이러한 처지에 있다 할 것이다. 큰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불화들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의사의 역할을 하는 수복전문가가 많지 않은 것도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다른 분야의 수복전문가들은 많지만, 불화의 수복과 임모(모사) 전문가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일반 서화를 수복하는 전문가들이 불화를 진단하고 수복하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개념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불화를 그려보지 않고 안료의 쓰임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수복을 하고 보채를 해나간다는 말인가.
아교와 안료는 날씨와 기후에 상당히 민감하다. 같은 아교를 써서 그림을 그려도 그 미세한 농도의 차이는 전문가가 아니면 구분을 하기 힘들다. 이러한 재료들을 서화 수복을 하는 사람들이 불화에도 그대로 적용을 해서 수복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원 그림의 해체를 거쳐서 클리닝, 아교 보강 등 많은 수복을 거친 후에 안료의 도채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안료의 도채는 화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이 파운데이션을 바르듯이 가볍게 도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원 그림의 안료 위에 같은 색채의 안료를 덧칠할 때와 짜깁기를 했을 때 안료를 칠하는 강도와 아교의 농도 또한 분명히 다를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무시하고 단순히 색감표에만 의존하여서 물감을 칠하다 보니 외부에 변화가 생기면 오래도록 버텨 나가지를 못 할 것이다. 또한 전에 도채가 되었던 안료와도 서로 부피와 무게 등을 일정하게 맞추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더 불화 수복을 할 때는 불화수복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불화는 선의 예술이다. 다양한 선들이 있고 선 하나하나에 불모들의 감정과 신심 또한 깊숙하게 베어져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연습하고 연마를 해서 그러한 선들을 긋는데, 선에 대해서 느끼지 못하고 감정이 없는 사람들이 수복을 하다보니 뭔가가 개운치 못한 느낌을 갖는다. 물론 과학적인 수복의 방식도 필요한 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일부의 과학적인 조사와 처리를 빼고는 결국 모든 것을 사람의 손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불화의 수복은 지금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처리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과도한 욕심 때문에 그림들을 종종 망치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그림 보수 한 것들을 보면 여기저기 짜깁기를 하고 심하게 덧칠 해놓은 경우를 보게 된다. 이는 과도한 욕심이 불러온 결과로, 자칫 원 그림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지금 기술적으로 처리가 힘든 부분은 후대에는 해결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그러한 문제점을 보수를 하면서 기록을 해 놓으면 후대에 많은 도움이 되어서 더 좋은 그림의 상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화를 수복하는 전문가도 필요 할 것이고 이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도 필요할 것이다. 단순히 불화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수복과 임모(모사)를 병행하여 가르친다면 더 많은 불화 수복의 전문가들이 배출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이에 동일시되는 임모(모사) 또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수복이라는 것은 죽어있는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 넣지만, 그 상태가 영원토록 지속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정부분 호전은 될 수 있으나 시간이 경과하면 또 다른 문제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태가 안 좋은 불화들을 수복할 때에는 반드시 임모(모사)가 병행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임모(모사)라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그 임모 작품이 원 작품을 대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불화라는 특성이 그러한 생각을 더 들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천년만년 원래의 불화를 모셔놓고 예불의 대상처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불화의 수복과 임모(모사)가 더디게 발전을 했을 것이다.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사랑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사찰에서 불화나 문화재를 볼 때 관심을 가지고 손으로 만져보듯 눈으로 자세히 관찰해보자. 마치 의사가 환자의 건강상태가 어떤지, 병은 없는지 진찰을 하듯이. 그러면 어딘가에서 그 친구들이 아프다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발문>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사랑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사찰에서 불화나 문화재를 볼 때 관심을 가지고 손으로 만져보듯 눈으로 자세히 관찰해보자. 마치 의사가 환자의 건강상태가 어떤지, 병은 없는지 진찰을 하듯이. 그러면 어딘가에서 그 친구들이 아프다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 설명>
필자가 모사한 고려불화 「아미타여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