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한스님 / 봉담선원장
함양 천령산으로 처소를 옮긴 뒤 몇 가지 행복한 버릇이 생겼다.
가장 큰 행복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애오로지 혼자 새벽 명상을 하는 것이다. 아무도 깨어나지 않은 깊은 새벽, 홀로 일어나 간단히 새벽예불을 한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고요에 잠기는 맛은 정말 꿀맛이다. 새벽 고요가 주는 참맛은 내가 그대로 무한 우주가 되는 것이다. 대우주의 의식 공간에 내 의식이 겹쳐지면서 고래처럼 유영하는 맛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새벽 명상을 마치고 산책길에 나서 씀바귀와 곰취를 뜯어다 산중 식구들과 쌈 싸먹는 버릇도 큰 재미다. 처음엔 먹는 나물과 먹지 못하는 풀을 잘 구별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그러나 이젠 제법 약초가 되는 풀을 잘 알아본다. 앞으로 가을이 깊어지면 산나물 대신 어름과 맹감, 머루, 다래 등을 따다가 산식구들과 나눠먹을 생각으로 벌써부터 즐겁다.
검정고무신을 신고 산속의 흙길을 산책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아무리 폭삭폭삭한 운동화일지라도 고무신을 신고 흙길을 걷는 감촉엔 비할 수 없다. 감촉이 제아무리 좋은 운동화일지라도 아스팔트 길이나 시멘트 길을 조금만 걸으면 벌써부터 무릎 관절이 아프고 팍팍해진다. 그러나 고무신을 신고 흙길을 걸으면 찜질방에 든 듯 온몸이 살살 풀리며 포근해진다. 발바닥과 흙이 맞닿는 부드러운 촉감 때문이다.
만년필로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참 행복한 버릇이다. 이전엔 컴퓨터로 편지 쓰는 것이 참 좋았다. 우선 쓰기가 편하고, 글씨도 인쇄한 것처럼 정연하고 깔끔해서 무척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렇게 쓴 편지가 너무 삭막하게 느껴졌다. 정이 없고, 사무적이고 딱딱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만이라도 편지는 반드시 내 손으로 손수 써 보내자고 다짐했다. 천령산 생활을 시작한 뒤로 그 다짐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넓은 팽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읽는 것도 행복한 산중 버릇이다. 내가 머무는 곳에서 십여 리 정도 걸어가면 곰실熊谷 마을이란 곳이 있는데 그곳에 아주 오래된 노거수 팽나무가 한 그루 있다. 꼭 오래 잊고 산 내 고향 당산나무 같다. 그래서 이따금 시집과 소설책을 들고 가 그 팽나무 돌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다. 그러다보면 고향에 든 안락함이 내 어깨를 따스히 감싼다.
비 내리는 날 창문 밖으로 자란자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도 참 재미있다. 비는 사람의 몸뿐 아니라 마음도 적셔준다. 마음에 비를 맞고 살기가 참 어려운 세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 먼지가 많이 쌓였다. 천령산 생활을 시작한 뒤로 내 마음에도 먼지가 참 많이 쌓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수행을 게을리 했다는 뜻이다. 비가 내리는 날은 으레 오랫동안 창밖을 내다보는 연유다. 그러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촉촉이 귀를 적신다. 그 때마다 삼독三毒의 먼지가 깨끗이 씻겨 내린다.
비 내린 다음 날 마당에서 풀 뽑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햇볕 쨍쨍한 날엔 안 뽑혀 나오려고 그렇게도 안간힘 쓰던 잡풀들이 빗물로 배를 가득 채운 날은 그 동안 고집 부려 죄송하다는 투로 살살 잘도 뽑혀 나온다. 그러면 나는 그 풀들을 모아 그들이 새로 발 뻗고 살 땅으로 옮겨 준다. 녀석들도 뽑힘의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땅으로 이사를 시켜주니 퍽 좋아 한다.
비와 걸레로 처소 곳곳을 청소하는 일도 참 재미있는 산 생활이다. 왕골비로는 방과 툇마루를 쓴다. 그리고 대비로는 마당과 산책로를 쓴다. 싸르락싸르락 대비로 마당과 산책로를 쓸 때 나는 소리는 영락없는 마음의 비질 소리다.
가끔씩 함양 읍내에 나가 재래시장에서 장보는 일도 퍽 즐겁다. 외떨어진 산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가끔은 사람살이가 궁금해지고 사람냄새도 뭉클 그립다. 그럴 땐 함양 중앙시장에서 일마다 서는 5일장에 간다. 사람냄새가 지천으로 깔려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정이 흐른다.
그러다보니 장 친구도 생겼다. 함양군 병곡면 원산리에서 산약초를 팔러 오는 ‘이야무치 아지매(아주머니)’다. 성은 ‘이’씨고 이름은 ‘야무치’다.(진짜 이름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산약초를 캐서 팔러 다녔다는 ‘이야무치 아지매’는 스스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한다. 그러나 산약초에 관해선 박사다. 그 힘으로 6남매를 대학공부까지 시켰다며 자식자랑도 밉지 않게 한다. 
마지막으로 내 천령산 생활을 더욱 즐겁게 하는 것은 매일 아침마다 하는 ‘오금희五禽喜’ 체조다. 사슴과 곰, 원숭이, 봉황, 호랑이 등 다섯 동물의 동작을 본떠 만든 오금희 체조는 어느 노장 스님께서 전수해주신 활력 기체조다. 이 체조는 정말 좋다. 한 번 할 때마다 온몸의 근육이 풀어지고 혈액과 기 순환이 잘 된다. 특히 오십견엔 특효약이다. 이 체조는 1, 3, 5, 7 홀수 숫자로 해야 효험이 있다. 그 규칙에 따라 몇 순배 정직하게 오금희 체조를 하고 나면 온몸에 열이 솟구치고, 땀이 배며, 생기가 뻗친다. 그러고 보니 사람과 동물은 원래 한 족속이었다.
이렇게 오금희 체조로 하루의 산문山門을 열고나면 참 행복해진다. 인생 전체가 ‘좋은 느낌’으로 꽉 차 오른다. 삶의 매 순간순간을 그렇게 ‘좋은 느낌’으로 산다는 것이 ‘행복’ 아닐까? 수행자의 사치를 버리기 위해 천령산으로 처소를 옮긴 나는 오늘도 그렇게 ‘똘중의 행복 10제’와 함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