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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 해탈 의지 배어 있어

그리스인 조르바


조 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산다는 게 감옥이지. 암 그것도 종신형이고말고. 빌어먹을.”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만나 처음 한 말이다. 조르바는 방랑자다. 카잔차키스(1883~1957)는 그리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의 앞마당인 에개해에서 가장 크고 유서 깊은 섬 크레타 출신이다. 고향으로 돌아가 광산과 벌목업을 하기위해 배를 타려던 중 항구에서 둘은 처음 만나 동행하게 된다. 그 때부터 카잔차키스는 업주고, 조르바는 고용인이다. 조르바는 카잔차키스를 ‘두목’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조르바는 말한다.
“당신은 내가 인간이란 걸 인정해야한다. 인간이란 무엇이냐, 자유다.”
한마디 한마디에 불교적 해탈의 의지가 배어있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정교회의 국가 그리스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이 소설에서 자신의 스승은 ‘붓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정교회 수도자들의 면모를 낱낱이 파헤쳐놓고 만다.
지난 2002년 국내에 상영될 당시 기독교의 반발이 컸던 <예수의 마지막 유혹>이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도 카잔차키스의 원작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소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죽어가면서도, 사랑하는 여성과 연예하고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는 장면 등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강조하는 내용 때문에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기독교계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았다.
교황은 지난 1954년 이 소설을 가톨릭교회의 금서 목록으로 지정한다. 그러자 카잔차키스는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을 인용해 로마 바티칸 교황청에 ‘주여 당신에게 호소합니다’란 제목의 이런 글을 보낸다.
“성스러운 사제들이여, 여러분은 나를 저주하나 나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여러분께서도 나만큼 양심이 깨끗하시기를. 그리고 나만큼 도덕적이고 종교적이시기를 기원합니다.”
그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못지않은 대문호로 추앙을 받으면서도, 서구에서도 노벨상을 받지도 못하고,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한 것은 이처럼 기독교의 역린을 건드린 때문이다.
카잔차키스는 크레타섬에서 중등교육을 마치고 아테네대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파리로 유학해 베르그송과 니체 철학을 공부했다.
28살에 그리스로 돌아와 알렉시우와 결혼했고, 1차 발칸전쟁이 발발하자 군대에 자원입대해 베니젤로스 총리 비서실에 복무하기도 했다. 34살 때엔 고향 크레타 섬으로 돌아와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인 알렉시스 조르바의 모델이 된 요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갈탄 채굴 및 벌목사업을 했다.
36살 때는 베니젤로스 총리에 의해 공공복지부 장관에 임명돼 1차대전 평화협상에 참가하기도 했으나 제니젤로스의 자유당이 선거에 패배해 장관직을 사임한 뒤 유럽 여행에 나섰다. 그는 이혼하고 오랜 벗이었던 여인과 결혼해 작품 활동에 더욱 매진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가 쓴 <붓다>와 같은 해인 943년 60세에 세상에 내놓았다.
이 소설은 소설가 이윤기씨에 의해 1980년에 번역돼 국내에 소개됐는데, 올들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새롭게 부각했다. <남자의 물건>이란 책의 저자인 명지대 김정운 교수가 이 소설을 읽고 조르바의 자유가 그리워 교수직을 때려치우고, 시골의사 박경철씨도 조르바에 반해 수차례 그리스 여행에 나서는 등 명사들의 조르바붐을 일으켰다.
나 또한 올해 30여 일간 그리스를 다녀왔다. 카잔차키스의 고향인 크레타섬의 관문인 공항의 이름은 카잔차키스 헤라클레온 공항이었다. 헤라클레온은 지명이고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다.
크레타섬은 그리스 최고신인 제우스의 탄생지다. 제우스 뿐 아니라 제우스의 형제인 포세이돈과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 또한 그의 형제와 남매로서 이 섬에서 태어났다. 크레타는 유럽 문명의 시원이기도하다. ‘유럽’은 제우스가 보쌈해서 이 섬으로 데려온 ‘에우로페’가 어원이다. 제우스와 에우로페 사이에서 미노스가 태어난다. 그가 바로 기원전 3650~기원전 1170년의 미노아 문명을 연 장본인이다. 이렇게 그리스 문명, 아니 서구 문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신들과 인물들이 즐비함에도, 관문에 카잔차키스의 이름을 붙인데서 크레타인들이 얼마나 카잔차키스와 조르바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크레타인들만이 아니다. 그리스 본토나 에개해 섬들에선 어디서나 ‘조르바’란 상호를 단 레스토랑이나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크레타가 터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싸운 독립영웅들과 이 섬의 역사적 인물들을 기리려 세운 크레타역사박물관에서도 카잔차키스의 방은 가장 인기가 있다. 이곳에 꾸며놓은 카잔차키스의 서재는 그가 직접 그린 자화상이 걸려 있다.
그의 무덤은 헤라클레온 시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있다. 바다와 섬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조망지다. 정원처럼 꾸며진 묘지 입구엔 그가 불교에 심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카잔차키스는 어찌 보면 전형적인 먹물이다. 평생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기어이 하고야 마는 조르바와는 달리 어려서부터 도덕과 관념의 틀 속에 가둬진 모범생이다.
조르바는 어려서 버찌가 먹고 싶어서 견딜 수 없자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은화 한 닢을 훔쳐 시장에서 버찌 한 소쿠리를 사서 도랑에 숨어 배가 아프고 구역질이 나올 때까지 먹었다는 인물이다.
그래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생각만 많고 실행을 못하는 먹물인 카잔차키스를 보고 힐난한다.
“내가 보기에 두목은 배고파 본 적도, 죽여 본 적도, 훔쳐 본 적도, 간음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알 수 있겠어요.”
그리고 왜 여자가 좋으면 좋다고 말도 못하는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지, 여자의 사랑을 받아들이지도 못하느냐고 추궁한다. 그런 조르바에 대해 카잔차키스는 자신이 넘볼 수 없는 ‘걸림 없는 인간상’을 본다. 카잔차키스가 묘사한 조르바는 선禪적이기도 하다.
“나는 등을 다시 기둥의 못에다 걸고 조르바가 일하는 걸 지켜보았다. 그는 완전히 일에 빠져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건 오로지 일뿐이었다. 그는 대지와 곡괭이와 갈탄에 호흡을 일치시키고 있었다. 그의 망치와 못은 나무와의 싸움에서 단합했다.”
못질을 할 땐 못질 할 뿐, 갈탄을 캘 땐 갈탄을 캘 뿐, 연애질을 할 때는 연애질을 할 뿐이다. 번뇌 없이 ‘오직 할 뿐’인 조르바의 경지를 묘사하고 있다. 카잔차키스가 그린 조르바의 마지막 모습은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피안으로 건너가는 도식과는 거리가 멀다. 마지막의 한 찰라까지도 현재의 감정에 충실한 모습이다.
“그는 창틀을 거머쥐고 먼 산을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웃다가 말처럼 울었다. 이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을 동안 죽음이 그를 찾아왔다.”
조르바의 죽음을 이렇게 묘사한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써놓았다. 크레타섬의 묘지엔 아래의 글이 그리스어로 쓰여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