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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기도·법회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1.
교육이란 어느 시대이건 어느 공동체이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불교에는 교단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두 구릅이 있는데 하나는 ‘승려’이고 하나는 ‘신도’이다.
먼저, 승려 교육은 조계종의 경우는 법령으로 그 운영을 정해놓고 있다. 처음 출가하여 절에를 가면 ‘행자교육’을 받는다. 그 교육을 이수하면 시험도 보고 수계식을 거쳐 ‘예비 승려’인 사미와 사미니가 된다. 윗저고리에 밤색 동정을 넓게 둘러 ‘정식 승려’인 비구 비구니와 눈으로 보아도 구별되게 하였다. ‘예비 승려’ 기간 동안 ‘4년제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마쳐야 정식 승려가 된다. 정식 승려가 되고 나서도 각종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하여, 그에 따르는 계급(절에서는 ‘법계’라고 함)을 올려준다. 제도적으로는 형식이 잘 정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신도의 교육은 어떠한가? 역시 조계종의 경우는 법령으로 정해놓기는 했다. 그런데 현장의 말사에서 여러 이유로 거의 실행되지 않는다. 각 말사들은 법령의 취지를 숙지하고 형편에 맞게 신도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좀 규모가 있는 사찰에서 진행하는 ‘불교(교양)대학’이 있는데, 이 역시 신도 교육의 한 축이다.


2.
불교를 자신의 종교로 받아들여 신행생활을 하려는 재가의 ‘발심자’ 내지는 ‘입교자’는 당연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 첫 시작은 수계이다. 수계는 출가자(승려)가 구족계를 수지하듯이, 재가 불자(신도)는 삼귀의를 하고 오계를 받아 지키겠다는 약속하는 행위이다. 그럼 신도들을 위한 이런 수계식이 각 절에서 종단이 정한 절차에 따라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가? 각 말사의 주지들은 이 점을 잘 살펴 정기적으로 또는 수요에 따라 수계식을 열어 새 신도들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계명(또는 불명)도 받아 그 이름으로 서로 불러야 한다.
당연 수계식에 앞서 재가 불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을 교육해야 한다. 그 기간과 시간, 그리고 내용에 대해서는 종단이 정한 바에 준해야 한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기 전에, 당신께서 앞으로 믿고 의지해야 할 부처님이 어떤 존재인지, 또 가르침이 어떤 내용인지, 또 승단의 구성과 청정함을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줘야 하다. 이어서 재가 불자 즉 신도가 지켜야 할 계율도 설명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교육’이다. 수계 이전에 이런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수계 이후에도 역시 교육이 계속되어야 한다. 정기적인 ‘법회’야말로 바로 이런 교육의 현장이다. 여기서 우리는 ‘불공’, ‘기도’, ‘법회’의 용어에 대해서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첫째, 불공은 말 그대로 부처님과 보살님 그리고 호법 신중님께 공양을 올리는 종교의례이다. 공양으로는 마지(밥)가 대표적이고, 이에 곁들여 향, 등, 다, 과이다. 시간적으로는 매일 마다 각 전각에서 상시적으로 사시(오전 10시-11시)에 진행되는 ‘사시불공’이다. 불보살상이 모셔져 있는 곳이면 반드시 마지를 지어 불공을 올려야 한다. 이것은 절에 사는 출가 불자 즉 승려의 의무이다. 이 시간을 활용하여 재가 불자 즉 신도들도 동참할 수 있다. 종무소에 가면 소정의 현금 내지는 공양미를 올려 ‘축원’을 올릴 수 있는 절차 있으니, 신도들은 이런 기회를 활용해서 공양을 올리면 된다.
요즈음 불교TV를 보면 <보례진언>을 시작으로 약 1시간가량 진행되는 사시불공을 볼 수 있는데, 일상에서 각 절에서는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정법계진언>으로 시작해서 바로 마지를 올리면 된다. 전통적으로 그렇게 해 왔다.
둘째, 기도에는 종류가 다양하다. 요즈음 절에서 유행하는 기도를 살펴보자. 음력 초하루에서 초삼일 까지 하는 ‘신중기도’ 때로는 ‘화엄성중기도’라고도 한다. 대개는 가족의 당면한 소원을 비는 기도이다. ‘인등기도’도 있다. 각 전각에 불을 켜서 소원을 비는 형태인데, 보통 음력 보름에 진행된다. 또 음력 18일에 지장전에서 진행되는 ‘지장기도’도 있고, 음력 24일 진행되는 관음전의 ‘관음기도’도 있다. 경우에 따라 절마 매월 정해진 날자에 진행하는 ‘다라니기도’도 있다. 이런 기도들은 모두 특정한 소원성취를 비는 기도이다.
셋째, 법회가 있다. 영어로는 ‘다르마 토크 dharma talk’라고 번역되듯이, 진리의 말씀 즉 3장(경장, 율장, 논장)을 이야기 하는 집회이다. 이와 더불어 역사적으로 유명한 스님들의 말씀(어록)을 되새기고 배우기도 한다. 주로 출가 불자 즉 승려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었다. 대표적이고 전통적인 것으로 출가자들이 매월 음력 15일과 29일에 경·률·론 삼장 중에서 율장을 읽고 제대로 지켰는지를 점검하는 법회이다.
신도들이 동참할 수 있는 법회는 전통적으로 그리 많지 않았다. ‘초파일 연등법회’와 ‘우란분절 천도법회’ 정도이다. 위에서 말한 소위 ‘다르마 토크’에 해당하는 법회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들어온 ‘정토종’과 ‘일련종’의 절에서 시작되었고, 백용성 스님께서 창설한 ‘대각교’에서도 신도들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출발하면서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을 출범을 거치면서 현재에 들어 신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3.
위에서 간략하게 보았듯이, 신도들이 절에 가서 하는 종교행위는 크게 셋이다. ‘불공’에 동참하기, ‘기도’에 동참하기, ‘법회’에 동참하기이다. 여기서 ‘동참(同參)’의 말뜻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같이 참여한다’는 뜻이다. 한편 우리는 ‘독불공’이라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불공’은 집집마다 따로 따로 올렸다. 심지어 정월달에 올리던 ‘신중불공’의 경우도 그랬었다. 당연한 것이 기도를 올리는 당사자들의 사정과 소원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도들이 늘어나고, 너무 번거로워지다보니 ‘동참’으로 진행하는 새로운 풍속이 생겼다. 소위 ‘축원카드’를 만들어 주소를 읽고 식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명하며 축원을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는 큰 한지에 ‘소장’을 쓰고, ‘피봉’에 넣어 불단에 올렸다가 당사 주지가 불전에 고해 올렸다. 세월에 달라져 ‘축원카드’를 읽는 방식으로 변했고, 여러 장의 축원카드를 연속해서 읽어대는 식으로 요즈음 널리 퍼져있다. 이것이 ‘동참’이다.
그런데 특별한 목적이 있을 경우에는, 단독으로 불공, 기도, 법회를 개최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그 예의 하나로 돌아가신 분의 ‘사십구재’와 ‘생일불공’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요즈음 유행하는 ‘시험기도’는 시험합격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으니 동참불공을 하더라도 축원문의 내용도 같아서, 결과적으로 비용도 절감 되고 동참자들이 동병상린의 심정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유행하는 백중 전에 7주에 걸쳐 일곱 번 시식을 올려 동참기도하고, 백중날에 법회를 하는 것도 그런 심정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풍경이다.
법회를 단독으로 설판하는 사례는 요즈음 흔치 않다. 다만 옛 전통과 달라진 풍경은 양력으로 진행하는 정기법회이다. 좀 큰 절에서는 일요일 정기법회를 열기도 한다. 법회에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부처님의 말씀이 중심되어야 한다. 소위 3장이다. 경전과 율장과 논장이다. 여기에 더 보태 조계종의 경우는 선종을 표방하니 조사어록이다. 여기에 실린 말씀을 법회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다. 이때에 말씀을 담당하는 법사(法師)는 삼장에 밝은 사람이어야 한다. 대개는 출가 불자인 승려가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재가 불가 즉 ‘거사’가 할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경전이 『유마경』이고, 이때의 법사가 유마 거사이다.
참고로 ‘거사’는 ‘세속에 거쳐하면서 불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거기에는 남녀노소는 물론 성별이나 신분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요즈음 남자 신도만을 ‘거사’로 부르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거사에는 여자도 있다. 이와 더불어 여자 신도를 ‘보살’이라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불자’ 또는 ‘불자님’으로 부르는 것이 법도에 합당하다.
신도들은 위에서 말한 ‘기도’, ‘불공’, ‘법회’에 동참하여 저마다 신행생활을 해간다. 불교에서는 특히 화엄교학에서는 ‘신-해-행-증’의 신앙 절차를 애용하고 있다. 첫째는 부처님으로 향하는 믿음이고, 둘째는 부처님의 말씀을 배워 익히는 것이고, 셋째는 그 배움을 삶에서 몸소 실천하는 노력이고, 넷째는 이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체험되어야 한다.
삼귀의 오계 수지를 통해 불자가 되면, ‘신’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부지런히 법회에 참여하여 ‘해’가 성취되도록 해야 한다. 세속에서 생업에 종사하면서 믿음과 배움을 실천하여 ‘행’을 성취하여 마침내 ‘증’을 성취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법회’는 매우 중요하다. 법사는 부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려 노력해야 하고, 동참 대중은 잘 배워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