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2021년 1월호부터 필자는 <‘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했다. 32개월에 걸쳐 총 32회의 원고를 썼는데, 한 회마다 200자 원고지로 20매 남짓의 분량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2020년 1년간은 총 12회에 걸쳐 <꼭 읽어야 할 화엄경>이라는 주제로 썼다. 그러고 보면 약 4년에 걸쳐 화엄경을 주제로 《월간 붓다》 독자님들과 만나는 셈이다. 이런 인연을 만들어주신 발행인 정우 스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필자가 원고를 쓸 수 있도록 주선해주시고 잡지 제작까지 해주시는 ‘중도기획’ 신원식 대표님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1923년 창간)를 편집하고 간행하는 일을 돕고 있지만, 한 권의 책을, 그리고 그것도 매달 연속해서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잡지를 어떻게 만들까? 기획해야 하고, 여러 명의 필자에게 원고를 청탁해서 모아야 하고, 그런 다음에는 지면을 배치하면서 그에 합당한 사진을 넣고, 오탈자를 수정하고 비문非文을 고쳐야 한다. 이렇게 편집이 끝나고 나면, 출력실로 보내고, 그것을 인쇄소로 넘기고, 그것을 다시 제본소에 넘기면 책의 제작이 완성된다. 이렇게 제작된 책이 독자들 개개인에게 가기까지는 ‘책 유통’에서 여러 단계의 절차가 필요하다.
쌀 한 톨에만 천지의 은혜가 담겨 있는 게 아니다. 매사가 그렇다. 하나하나가 은혜롭고 고맙지 않은 게 없다. 그런 고마운 일을 ‘나’도 하고 ‘남’도 하여, 그래서 세상이 움직여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고마운 사람들이다.
2.
아시다시피 화엄경은 총 80권 39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의 제39품의 이름은 「입법계품」인데, 여기서는 선재 동자라는 ‘구법求法’ 즉, 불법의 진리를 탐구하고 몸소 실천하는 어린 수행자가 등장한다. 그 과정에서 선재 동자는 여러 선지식을 만나는데, 그 수가 무려 53명이나 된다. ‘53선지식’이라는 용어도 화엄경에서 유래한다. 53분의 선지식 중 맨 마지막으로 만나는 분이 ‘보현보살’이다.
한편, 보현보살을 만나 불법을 수행하도록 권한 보살은 문수보살이다. 선재 동자가 수행하기로 마음먹게 된 동기도 문수보살과의 만남인데, 막판에 즉 제52번째로 미륵보살을 만나 공부를 마치자 미륵보살이 소개한 선지식도 문수보살이다. 화엄경 속에서 문수보살은 여러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런 문수가 끝내는 보현보살을 소개한다. 문수와 보현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화엄경 법문을 엮어간다. 그러다가 보현보살의 법문으로 화엄경의 긴 이야기가 끝이 난다.
그 끝부분은 여러분도 많이 들어보신 소리이기에 원문까지 인용해 본다.
刹塵心念可數知 찰진심념가수지
大海中水可飲盡 대해중수가음진
虛空可量風可繫 허공가량풍가계
無能盡說佛功德 무능진설불공덕
봉선사의 운허 스님께서는 <한글대장경>에 이렇게 번역하셨다.
세계 티끌 같은 마음 헤어서 알고
큰 바다 물이라도 마셔 다하고
허공을 측량하고 바람 맨대도
부처님의 공덕은 말로 다 못해
독자님들이 절을 찾아 마지 불공을 올리는 과정에서 “앙고시방삼세〜”로 시작하는 ‘축원’은 아마도 귀에 들리실 것이다. 그리고 ‘어디 어디에 사는 아무아무개 보체’ 하는 소리 역시 자기가 사는 주소와 가족의 이름이니 더욱 잘 들릴 것이다. 그러면 위의 인용문과 같이 ‘축원’하기 전에 부처님을 찬양하여 찬송하는 게송이 귀에 들렸는지?
‘축원’하기 전에 부처님의 공덕을 찬송하여 아뢰는 절차가 있다. 그것을 불교 의례 용어로 ‘탄백’이라 하는데, 그 ‘탄백’의 내용이 위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마지막 넷째 구절이 핵심이다. 부처님의 공덕을 찬송하고 찬탄해야 하는 것이 부처님의 제자 된 자의 임무인데, 부처님의 공덕이 셀 수 없이 많아 일일이 다 말 못 한다는 자기 고백이다. 바닷물을 다 마실 수 있어도, 크나큰 부처님 공덕은 다 말 못 한다는 고백이다. 허공을 측량할 수 있어도, 또 드넓은 허공도 묶을 수 있어도,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는 어림도 없다는 고백이다. 이런 찬탄讚歎 고백告白을 불교 의례에서는 줄여 ‘탄백歎白’이라 한다.
화엄경의 핵심 게송들이 불교 의례 속에 적잖이 인용되는데, 위의 게송이 대표적이다. 위의 게송 뒤에 나오는 마지막 한 게송으로 화엄경 80권의 설법이 대미를 장식한다. 역시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이러한 공덕 바다 누가 듣고서
기뻐하며 믿는 마음 내는 이들은
위에 말한 공덕을 얻게 되리니
여기에서 의심을 내지 말아라.
제80권의 마지막 대목에서 보현보살이 게송을 읊는데, 예부터 이 대목을 <보현보살찬불게>라 하여 별도의 책으로 만들어 유통시킬 정도로, 조선 시대 이래 우리나라 불교계에 널리 알려졌다. 총 95수首의 게송이 이어진다. 위에 나오는 “세계 티끌 같은 마음 헤어서 알고”로 시작되는 게송은 제94째의 게송이다.
3.
이번 달부터, 그간 연재하던 <‘신·해·행·증’으로 읽는 화엄경>을 마무리해가면서, 독자님들께 「보현행원품」을 소개하려 한다. 화엄경 제49권에 나오는 「보현행품 제36」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보현행품 제36」과 「여래출현품 제37」은 서로 짝이 되는 품品으로, 제36품은 원인이 되는 수행을, 제37품에서는 수행에 따른 결과를 각각 보여 주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보현행품 제36」에서는 ‘성냄[瞋]’을 금지하는 수행법을 제시한다.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면 백만 가지의 장애가 생긴다고 말하고 있다. 「보현행품 제36」에서는 “백만 가지의 장애”라고 쓰였지만, 경전 본문에는 줄여서 100가지만 들고 있다. 100가지 중 그 첫째로 꼽는 장애는 무엇인가?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면 보리 즉 깨달음을 보지 못하는 장애가 생긴다고 한다.
이렇게 소개되는 무수한 ‘장애’가 사라지면, 그렇게 사라지는 게 원인이 되어 결과로서 우리 자신 속에 간직된 불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내용이 「여래출현품 제37」에 소개된다. 여래가 출현한다. 어디에서? 자신 속에서.
그러면 위에서 필자가 소개하겠다고 말한 「보현행원품」이란 무엇인가?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40권으로 구성된 화엄경의 맨 끝에 붙어있는 제40권의 내용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엄경의 종류에 대해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화엄경은 모두 세 종류가 있다. ⑴첫째는 중국 동진 시대 불타발타라 스님이 번역한 60권으로 된 책이고, ⑵둘째는 당나라 시대 실차난타 스님이 번역한 80권으로 된 책이고, ⑶셋째는 역시 당나라 시대 반야 스님이 번역한 40권으로 된 책이다. ⑴과 ⑵는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⑶은 ⑴과 ⑵에 들어 있는 마지막 품 즉, 「입법계품」만을 따로 떼어내어 하나의 책으로 만들었다. ⑶은 내용상 ⑴과 ⑵에 들어있는 「입법계품」과 역시 대동소이한데, ⑴과 ⑵에는 전혀 없고, ⑶에만 유독 들어있는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을 따로 떼어 하나의 책으로 만든 것이 「보현행원품」이다.
4.
위의 <2>에서 ‘축원’하기 전에 ‘탄백’을 올린다고 했다. 그 ‘탄백’의 내용 중에 “부처님의 공덕은 말로 다 못해”라는 구절에 주목하시기 바란다. ‘부처님 공덕’을 내가 성취하여 내 것이 되게 하는 방법을 보현보살께서 일러준다. 어디에서? 바로 「보현행원품」에서.
첫 구절이 이렇게 시작된다. “만일 이러한 공덕을 성취하려면, 마땅히 열 가지 넓고 큰 행行과 원願을 닦아야 하느니라.” 그러면 그 열 가지란 무엇인가? 이하에 번역문을 소개하면서, 다음 달에는 그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하려 한다.
하나는 부처님께 예경함이요.
둘은 부처님을 찬탄함이요.
셋은 여러 가지로 공양함이요.
넷은 업장을 참회함이요.
다섯은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함이요.
여섯은 법문 설해주기를 청함이요.
일곱은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 청함이요.
여덟은 부처님 따라서 배움이요.
아홉은 중생의 뜻에 늘 따라 줌이요.
열째는 모두 회향함이니라.
ananda@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