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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재가 불자의 신행 기준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1.
불교에는 경전의 수도 매우 많고, 그 경전 속에서 전하는 이야기도 다양합니다. 예를 들면, 극락세계는 서쪽으로 아주 멀리 한 참을 가면 있다고 말하는 경전도 있고, 그런가 하면 극락세계는 자기의 마음에 있다는 경전도 있습니다. 어느 책에서는 인도의 사라쌍수 밑에서 부처님이 열반하셨다고 하고, 또 어떤 경전에서는 지금도 부처님께서 영상회상에 항상 계시면서 설법을 하신다는 경전도 있습니다. 어느 말이 맞는지 도저히 갈피를 잡기 어려운 것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면 불교 신앙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요? 결국은 역사적인 전통을 고찰해보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불교는, 분류 방법이야 어찌했든, 남방 불교와 북방 불교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북방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은 법신法身 부처님인데, 법신 부처님이 중생과 세간의 상황에 맞게 몸을 나타내시는 것이 화신化身 부처님이고, 또 중생들이 수행을 깊이 함에 따라 그에 상응하여 체험되는 부처님은 보신報身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현재 한국불교는 법・보・화 3신불을 믿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에서는 인간의 본성은 부처님과 똑같이 청정하지만, 현실적으로 번뇌의 업장으로 그 청정함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번뇌의 싸인 연기 ‘현상’은 모두 공하고 무상하지만, 본바탕이므로 영원하다고 신앙합니다. 그래서 연기의 소산인 ‘현상’에 휘둘리지 말고, 본바탕을 저마다 몸소 체험하여, 그 본바탕에 갖추어진 불가사의한 능력을 한껏 누리면서 세상살이하자고 가르칩니다.


2.
본래 청정하건만 무상한 현상에 휘둘리는 원인은 ‘어리석음’ 때문인데, 시간을 한정하지 말고 쉼 없이 저마다의 ‘어리석음’을 제거해야 합니다. 설사 금생에 안 되면 내생에, 그렇게 하기를 세세생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어리석음’이 제거될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화엄과 남종선이 갈라집니다. 남종선의 전통에 있는 당나라 선사들은 ‘반조返照하라’ 하고, 송나라 선사들은 ‘화두話頭에 집중하여 일체의 사량분별을 쉬라’고 합니다. 반면 화엄에서는 ‘관법觀法을 바탕으로 보살도를 실천하라’고 합니다. 즉 법계성法界性을 깨치면서 더불어 6바라밀 내지는 10바라밀 더 나아가서는 󰡔화엄경󰡕에 펼쳐지는 보현의 보살행을 실천하라고 합니다.
이런 법보화 3신의 전통에서  불자들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재가 불자’이고, 또 하나는 ‘출가 불자’입니다. 법신을 믿는 점에서는 두 불자는 모두 같지만, 절에 살면서 보살행을 하느냐, 가족과 함께 살면서 보살행을 하느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차이는 사람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생명 운동의 긴 역사’ 속에 놓인 당사자 본인의 업력의 차이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바른 공동체에 먼저 입단한 ‘출가 불자’와 ‘재가 불자’가 동등할 수는 없습니다. ‘재가 불자’는 ‘출가 불자’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지도를 받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재(齋 법회)에 동참하여 정기적으로 대승계를 점검하는 일이다. 󰡔범망경󰡕의 수지 독송과 실천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3.
‘재가 불자’가 되는 방법은 ‘종단’에 ‘등록’된 ‘절’에 출석함으로 시작됩니다. ‘출가 불자’들이 모여 사는 곳을 ‘절’이라 하는데, ‘절’은 ‘종단’에 ‘사암 등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출가 불자’들이 소속 교구 또는 본사가 있듯이, ‘재가 불자’도 소속 ‘절’이 있습니다. ‘재가 불자’는 대부분의 생활은 가정을 기반으로 생업에 종사하면서, 일정한 날짜에 소속한 ‘절’에서 열리는 ‘법회’와 ‘재’에 주기적으로 참석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소속된 사암을 근거지로 하여 ‘종단’이 공인하는 ‘3귀의 5계’를 수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앞에서도 밝혔다시피, ‘재가 불자’는 ‘출가 불자’에게 신앙적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기본 입장입니다. 이것을 전제로 하면, ‘재가 불자’들이 제대로 된 종교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출가 불자’가 수행하는 절을 찾아야 한다는 건 중요합니다. 그러면 훌륭한지 아닌지를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정기적으로 ‘점검 체계’를 운영하면서, 자신들의 종단에서 제시한 종지종풍宗旨宗風을 제대로 계승하는 ‘출가 불자’가 주석하는 절이 좋은 절이다. 그런 절을 골라서 재적 사찰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구룡사 신도 여러분들은 참 좋은 수행 공동체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4.
예부터 ‘재가 불자’들이 절에 가는 경우는 재齋를 올리러 가는 것입니다. 음력 초하루와 보름, 지장재일, 관음재일, 약사재일, 산신재일, 그리고 장례와 천도를 비롯한 사자의례死者儀禮 등에 절에 갑니다. 생축生祝으로 절에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재에 사용되는 각종 의식문儀式文을 자세하게 검토해보면, 그 내면에는 법보화 3신 신앙이 깔려 있다. 이 신앙이 때로는 화엄의 옷을 입고, 때로는 미타 정토의 옷을 입고, 때로는 남종선의 옷을 입고 여러 모습으로 의식儀式에 표출된다. 재齋가 공양을 올린다는 뜻은 이미 알고 계실 터이니 더 설명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불보살님과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면서, 그때 올려지는 염불의 내용을 잘 이해하면서, 그 내용을 실천하면 재자 불자의 제 앞가림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불교계에 요구되는 것이 개인의 기도 성취와 수양을 넘어서서, 대對 사회적인 역할도 점차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재가 불자들은 스님들의 지도에 따라 사회봉사에도 형편껏 동참해야 합니다. 이런 내용이 󰡔범망경󰡕에서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지적인 요소보다는, 무엇을 적극적으로 즉 선한 일을 권하는 계율로 중심축이 바뀐 것이 󰡔범망경󰡕의 특징입니다. 이것이 󰡔범망경󰡕이 세상에 출현한 이유인 것입니다.


5.
이제까지 우리는 ‘생명 운동의 긴 역사’ 속에서 ‘업業’에 끌려서 수동적으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업’과 맞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수동적이고 자연적이었던 삶과 결별해야 합니다. 이제는 ‘업’의 힘이 아닌, ‘서원’의 힘으로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세상을 살면서 그 ‘서원’을 실현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깨침을 완성합니다.
이렇게 자기 본질을 완성하는 과정의 부산물로 너와 내가 행복해집니다. 그렇지만 불자들의 궁극 목표는 모든 ‘업장業障’을 소멸시켜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바탕인 법성을 ‘깨쳐야 하고’, 그것도 완전하고 철저하게 깨쳐야 한다. 이런 깨침을 ‘돈오’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돈오’하기 위해서는 티 없는 ‘무공용無功用’의 무심한 보살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무분별지가 발동되어야 하고 무심해야 합니다. 이런 우리의 전통 불교 신앙은 그 기준을 부처님 말씀 중에서 경으로는 󰡔화엄경󰡕을, 율로는 󰡔범망경󰡕을, 논으로는 󰡔대승기신론󰡕에 두어왔습니다. 이것이 우리 전통의 3장藏입니다. 이런 경율론 3장의 의지하여 저마다의 제 마음에 작용하는 법성을 체험하고, 그런 체험을 바탕으로, (1)보시하고, (2)지계하고, (3)인욕하고, (4)정진하고, (5)지관 수행을 하라고 가르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