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숙 작가
칼럼니스트·문학심리상담사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인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스치는 만남 자체를 모두 인연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가까운 지인이라고 해서 인연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당한지 모르겠다. 필자는 인연이라는 단어를 쓰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쌓이고 서로 간 삶의 이야기가 적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연을 맺기까지는 좋은 의미의 얘깃거리가 차곡차곡 쌓이고 어느 정도의 서사가 성립되어야 한다. 인연은 선연과 악연으로 나뉘는데 대체로 나쁜 인연을 서로 ‘인연을 맺었다’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상대가 좋은 인연으로 생각되어 작은 행복감이 밀려오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 돌이켜볼 때 악연으로 판단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뒤끝이 좋지 않은 만남을 의미하는 것인데 우리는 대부분 만남이 당연히 좋은 인연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러나 상호 이해관계가 배제된 순수함으로 출발한 투명한 인연을 원하지만, 살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을 경험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노력하여 좋은 이미지로 끝매듭을 마무리하면 좋을진데 서로의 업무 완료 시점이 가까울수록 본색을 드러내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다.
핸드폰 카톡에 저장된 많은 사람들이 과연 우리 인연의 정원에 들어와 있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인과 인연의 경계선은 생각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각기 다를 것인데 우리 생활 속에 상대의 존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이라면 인연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싶다. 그런데 어쩌면 인연의 테두리에 이미 들어와 있는 소중한 사람을 인연으로 생각지 않고 무심코 놓치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인연이 깊어지면 숙명이라는 단어로 종종 표현되기도 하는데, 필자의 좋은 인연으로 첫 번째 떠오르는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 지금의 문인으로 나를 태어나게 해준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이 문득 그리워진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하고 희망과 성장의 날개를 달아준 사람이면 우리의 기억에 좋은 인연으로 남을 것이고 반대로 그늘과 상처를 남긴 사람이라면 악연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 친구와의 인연, 연인이라는 이름의 인연 등 수많은 인간관계를 통해 우리는 하얀 햇살이 비추는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때론 좋은 인연이 다가와도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무성의하게 대접해 스쳐 지나가게 했을 수도 있는데, 첫 만남부터 인연이 다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훗날 누군가에게 그리움으로 남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
좋은 인연이 되려면 그걸 지키기 위해 정성과 공을 들여야 한다. 그냥 거저 첫 만남부터 좋은 인연으로 서로의 관계를 연결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 고객의 아픈 부위를 치료하는 의사 태도와 성향에 따라 아픔의 경중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상대와 대화할 때 진심을 다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의 소유자는 누군가의 인연의 정원에 초대받기에 충분할 것이다. 왠지 불편함이 생기고 대면을 피하고 싶은 그 누군가와는 인연이 아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으로 기억 속에 남기는 게 현명하다. 유리처럼 쉽게 깨질 관계라면 서로 인연의 문을 두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연장전이 없는 한 번의 경기로 마감하는 인생이라는 경기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조우하고 여러 가지 색깔의 부딪침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분명히 소중한 인연은 끝까지 우리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영혼에 메아리가 없는 스치고 지나가는 만남이 아니라 그리움이 따르는 만남은 소중한 인연으로 반드시 우리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우리를 행복한 삶으로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