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頂宇 스님
본지 발행인 | 구룡사 회주
통도사가 있는 양산은 기온이 섭씨 41도, 42도까지 올라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체온이 36.5도인데 41도, 42도라니 얼마나 덥겠습니까. 그 더위가 북상해서 며칠 내로 서울 지역도 그렇게 더울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서울은 40도를 넘기지는 않고 있습니다. 구룡사는 서울 도심지에 산도 있고 숲도 있습니다. 양재천과 여의천이 한강으로 이어지기 때문인지 그나마 이곳은 조금 선선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룡사 앞마당 함지박에 연꽃을 심어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꽃을 좀 피우더니 장마철 비가 오고 기온이 떨어져서 그런지 한동안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초입에 홍련 두 송이가 만개하려고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달 밝은 밤이라도 밤에는 피지 않는 꽃이 연꽃이고, 아무리 날이 흐려도 낮에만 피는 꽃이 연꽃이라는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어린이 놀이터에는 보름 전부터 피어 있던 꽃 한 송이가 있습니다. 그 꽃 이름이 상사화입니다. 봄이면 난초 잎처럼 잎이 먼저 올라왔다가 어느 날 사라져 버립니다. 그 자리에 꽃대가 올라와 열흘 정도 꽃을 피웁니다. 상사화는 잎이 먼저 나왔다가 꽃이 필 때가 되면 그 잎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여 ‘상사화相思花’라는 꽃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식물에는 생혼生魂이 있고, 동물에는 각혼覺魂이 있으며, 인간에게만 영혼靈魂이 있다고 합니다. 생혼은 단순히 태어난다는 뜻만이 아니라 식물도 하나의 생명으로서 반응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꽃나무를 바라보다가 서양의 어느 철학자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꽃나무를 보자. 만일 그 꽃나무에 물을 주고 빛을 충분히 받게 해 주며 영양분을 공급하면, 잘 자라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아무리 좋은 나무라 해도 어둠 속에 방치하거나 벌레가 잎을 갉아 먹도록 내버려두고, 물을 주지 않아 말라붙도록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시들어 버린다.”
난초도 그렇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자주 들여다보고 대화를 나누어 보면 훨씬 더 오래 꽃을 피우는 것을 봅니다. 사람도 꽃나무와 다르지 않습니다. 꽃나무에 물을 주고 빛을 비춰 주어야 잘 자라듯이, 사람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며 소통해야 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3대가 함께 살아가는 집을 보면 서로 돌보고 살피며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 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가족과 이웃의 관계도 다시 한번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자연의 섭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먼저 건강한 꽃씨가 필요합니다. 그다음에는 비옥한 토양이 있어야 하고, 충분한 햇빛과 물도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세심한 농부의 보살핌이 있어야 비로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농부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열매를 거둘 수 있고, 그 열매에서 다시 씨앗을 얻어 다음에 그 씨앗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부처님의 한량없는 지혜와 자비를 담아내는 그릇과 같습니다.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다.”
믿음은 보리심菩提心의 시작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더불어 살아가는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원력과 보리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보살의 바라밀 수행도 모두 믿음이라는 토대 위에서 올바르게 쌓일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은 궁극적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증득하기 위한 수행과 정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물며 부모와 형제, 처자 권속으로 맺어진 그 인연은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들이 그동안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기회가 언제까지나 충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가까이 있기 때문에 소홀히 하기도 합니다. “아, 그 사람은 가까운 사람이니까 괜찮아.”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더 배려해야 하며, 더 친절하게 어울려야 합니다. 그것은 우란분재일을 맞아 우리가 영가를 향해 지니는 마음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와 별다른 인연이 없는 사람에게는 관심을 기울이고 친절하게 대하면서 정작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그 사람은 나하고 친한 사람이니까, 가까운 사람이니까 그냥 놔둬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친절하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불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자주 합니다. “법당에 오시거든 가까이, 가까이, 부처님 전에 다가오십시오.” 인생이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기회가 언제까지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을 인식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을 넘기면 오늘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지구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적도는 지구 둘레가 약 4만km 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북위 38도는 그보다 짧습니다. 3만 2천 km에서 우리는 하루도 멈추지 않고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 자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나만 멈춰 있는 듯 살아가지 말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출가하여 수행자가 된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출가한 지 60년이 넘었습니다. 6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 60년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겠습니까. 또 얼마나 제 자신과 대화했겠습니까. 얼마나 많이 다투고 부딪쳤겠습니까.
이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삼보전에 귀의했기 때문입니다.
법당에 와서 향을 올릴 때는 하나씩만 꽂으라고 권합니다. 새벽예불에 나오면 부처님 전에 향을 사룹니다. 영단에도 올리고 관세음보살님 전에도 향을 올립니다. 인등실 부처님전에도 향을 올립니다. 구룡사 인등실에 아미타 부처님을 주불로 기도하며 지금과 같은 많은 불사를 이루어 왔습니다.
저는 틈틈이 극락전에 가서 영단에도 꼭 향을 사뤄 드립니다. 그곳에 모셔진 영가들은 인연을 지닌 분들이 많습니다. 구룡사와 인연을 맺고 신행 생활 하시다가 입적하셔서 극락전에 모셔지고 49재를 지내는 영가들입니다.
그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이 저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이 세상에 태어나 불자의 길을 걷는 것 자체가 어찌 작은 일이겠습니까. 오늘처럼 이렇게 더운 날에도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편안함과 한가함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명예나 재산을 구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오로지 나고 죽는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고, 번뇌의 속박을 끊으려는 것입니다. 번뇌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입니다.
그 탐·진·치貪瞋痴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고통받고 있는 중생들을 건지기 위해 출가자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재가불자로서도 신심과 보리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심이란 불성을 믿고 인과를 믿는 것입니다. 인과와 윤회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 보리심입니다. 인과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입니다. 좋은 원인을 지으면 좋은 결과가 따르고, 좋지 않은 원인을 지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중생심은 늘 밖으로 구하려는 마음입니다. 바깥으로만, 바깥으로만 치달으니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홍서원은 다릅니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이 사홍서원이 바로 초발심이며 보리심의 원행입니다.
우리는 이타심과 이타행을 늘 마음에 간직하면서 자기 성찰을 통해 인성을 완성해 가야 합니다. 그것이 수행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를 소중하다고 하셨습니다. “젊음이여, 건강이여, 목숨이여.” 젊음과 건강과 목숨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그런 젊음과 건강과 목숨이 언제까지 우리 곁에 있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나와 인연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중국의 태허太虛선사께서는 “어떻게 해야 마음공부를 잘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도를 이룰 수 있습니까?”하는 물음에 한결같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먼저 사람이 되어라.” 형상만 사람이라고 해서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엄경華嚴經』 「십행품十行品」에도 “이 중생들은 모두가 나의 복 밭이고 나의 선지식이다. 찾아 나서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았는데 몸소 나를 찾아와 바른 법에 들게 하는구나.”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에게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는 소중한 선지식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평등한 지혜를 가지고 바른 법을 갖추어 널리 선행을 닦으며, 마침내 열반에 들 수 있도록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한 중생이라도 만족하지 않는 이가 있다면 나는 결코 세상의 깨달음을 이루지 않으리라.” 『화엄경』 「십행품」에 담긴 보살의 행원을 되새기면서, 여러분도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중한 인연으로 간직 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