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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하는 법
                                          











                                조계종 9대 종정 노천당 월하대종사



 오늘 이 자리를 이와 같이 빛을 내 주시고 저희 통도사에 오신 것에 대하여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법어에 들어가기 전에 총림에 대한 간단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무 네 그루가 잎이 나서 오붓이 커 멀리서 보면 한 나무 같이 되어 있는 것을 떨기 수풀이라고 하는데, 글자 그대로 총(叢)자가 떨기 총자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떨기나무를 밑에서 보면 네 그루인데, 멀리서 보면 한 나무같이 되어서 만약에 그 네 나무 중에서 한 나무만 없어진다든지 벤다든지 하면 그 만큼의 흠집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은 총림에 대한 비유로써, 첫째 총림에는 선원(禪院)이 있어야 되고 염불원(念佛院)이 있어야 되며 또 율원(律院)과 강원(講院)이 있어서 마치 그 네 그루 나무가 수풀이 되고 그 수풀에는 뭇 새가 와서 쉬어가고 안식처를 삼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총림이라고 하면 모든 불자(佛者)들이 와서 새가 되고 안식처를 삼는 것과 같이 이 안에서 승려의 격(格)을 갖추고 모든 법을 이 안에서 배우는 것을 비유해서 총림(叢林)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네 그루는 어느 것 할 것 없이 다 중요한 것입니다만,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역시 선원입니다.
선원이란 참선을 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밝혀서 만천하(滿天下)에 떨칠 수 있는 기상을 갖추는 것이 참선의 근본적인 목적이겠습니다.

염불원에는 염불을 해서 염불삼매(念佛三昧)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염불의 최고 목적을 달성하려면 유심정토(唯心淨土) 자성미타(自性彌陀)의 경지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곧 염불이 유심정토요, 자성미타라 함은 오직 우리 마음에 정토가 있는 것이고 아미타부처님이 자기 성품 속에 있는 것이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같이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수행 면에서 염불과 참선은 본질에서 보면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수행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목적은 같이 동일(同一)합니다.
참선이나 염불을 할 때에는 마치 불을 일으키듯이 화두 드는 일이나 염불삼매에 드는 일을 꾸준히 계속해 가야만 불을 일으킬 수 있지, 조금만 소홀히 해도 우리는 불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참선하는 얻는 화두(話頭)를 틈 없이 계속 나아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자나깨나 조금이라도 쉬지 말고 간절히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늙은 어미가 자식 생각하듯 간절히 말입니다.
그것을 구구하게 말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현재 화두를 들고 앉은 것인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이러한 구별이 없는 경지에 이르러서 어묵동정(語?動靜)과 행주좌와(行住座臥)에 일여(一如)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두 그것이 도반이요, 참 형제인 것입니다.
수행자가 그런 경지에 이르기 위하여 또 배우고 수행하고 가르치기 위해 배우는 장소를 총림이라 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을 일러서 방장(方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율이라고 하는 것은 승려라면 누구든지 행하게 되어 있고 어떤 몇몇의 사람인 특정인이 지키게 되어 있는, 요사이 말로 어떤 율사(律師)만이 하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총림에 사는 대중이라고 하면 누구나가 행하는 행위가 모든 것의 모범이 되는 것이지 요즘처럼 율사가 따로 있고 율이 따로 있어서는 안 되고 총림에 사는 대중이면 누구나 율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강원(講院)은 부처님의 말씀인 일대시교(一代時敎)를 배우고 조사(祖師) 스님네의 말씀을 따라 공부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네 수행처는 각기 그 특징을 따라 열심히 정진하여 조화(調和)되어 가지고 그 속에서 모든 불자들이 와서 안식처를 삼는 것과 같이 또한 수행납자(修行衲子)들이 와서 수행하는 총림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먼저 방장이 훌륭하고 덕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한 저같이 부덕한 사람이 방장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이 잘못되고 쑥스러운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 불교에는 탁마상승(琢磨相乘)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서로서로 부족한 점을 덕으로 채워주는 행위를 말하는데, 그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본 총림이 명실공(名實共)히 총림으로서 손색이 없도록 오늘 여기 오신 스님네들, 신도 여러분 모두가 본 총림에 미흡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깨우쳐 주시기를 바라오며 더욱 큰 용기를 내어 그것을 실행해 갈 생각입니다.



參禪只在起疑團 / 참선지재기의단
疑去疑來似火團 / 의거의래사화단


참선은 다만 의단(疑團)을
일으키는데 있어서
의심해 가고 의심해 와서
마치 화단(火團)과 같이 할지니라.



-영축총림 개설 특별법어 중에서 (2528. 7.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