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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사회와 승가의 화합정신

방경일 / 작가, 불교칼럼니스트

승가의 의미
승가(僧伽)는 ‘화합 단체’를 뜻하는 상가(sa?gha)라는 단어를 한자로 바꾼 말이다. 좁은 범위의 승가는 남자 스님인 비구(比丘)와 여자 스님인 비구니(比丘尼), 예비 남자 스님인 사미(沙彌)와 예비 여자 스님인 사미니(沙彌尼)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지지만 넓은 범위의 승가는 사미니를 거쳐 비구니가 되기 전 단계에 있는 여자 스님인 식차마나(式叉摩那), 남자 신도인 우바새(優婆塞)와 여자 신도인 우바이(優婆夷)의 일곱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네 부분이든 일곱 부분이든 승가의 기본정신은 화합이다. 화합을 중요시하지 않는 단체는 없겠지만 화합이라는 말이 단체의 이름으로 사용된 경우는 화합중(和合衆)으로도 번역되는  승가가 유일하다. 2500여 년 동안 지속된 불교의 역사에서 승가의 화합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많았지만 요즘 생겨나는 일들은 양상을 약간 달리하고 있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 
소위 진보집단이 정치권력을 담당했던 지난 10년 동안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수직적 사회에서 수평적 사회에로의 이동이라고 본다. 수직적 사회의 최고덕목이 서열과 권위라면 수평적 사회의 최고덕목은 평등과 다양성이므로 이는 패러다임(Paradigm)의 일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불자들의 집단인 승가(僧伽)역시 일반사회의 구성요소들 가운데 하나이므로 그 영향에서 벗어나 있을 수 없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사람들의 사고나 견해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하므로 승가의 구성원들도 사고나 견해가 많이 달라졌거나 달라져가고 있다. 특히 우리 불교는 광범위한 인식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 스님이나 신도들이 가지게 되는 패러다임 역시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붓다의 입멸 이후 꽃핀 남방불교의 아비달마나 북방불교의 각종 종파들도 그런 배경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종교적인 바탕에 평등과 다양성이 더해짐으로써 현재 한국의 승가는 화합이라는 기본 덕목을 유지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재가자들의 변화
불교신도들의 사고와 견해가 많이 변했다.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정보의 흡수가 빠른 신도들은 스님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들은 출가자와 재가자의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다. 필자는 불교가 출세간의 종교임을 인정한다.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의 거의 대부분이 전문 수행자인 출자자를 위한 것이지 필자와 같은 재가자를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출가자들의 전문성은 2500여 년 동안 담보되어졌다. 하지만 재가자도 고등교육의 일반화와 인터넷이라는 정보통신수단의 발달을 통해 불교교리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21세기에 들어서 출자자가 독점하고 있던 교리적 전문성은 완전히 해체되어 버렸다. 사실 재가자라도 개인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출가자의 불교지식을 능가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불교학을 향한 이런 열린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승가의 핵심 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는 스님들의 사고나 견해도 많이 변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주지 직책에서 해임된 어느 스님이 지방노동청에 낸 체불임금과 퇴직금 지급의 조정신청이다. 불교계 언론에 의하면 해당 노동청이 ‘사찰의 주지 스님의 경우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했다고 볼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하는 가운데 당사자가 신청을 취하했다고 한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된 것처럼 보이는 이번 일은 재가불자들의 일반적인 관념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식이다. 하지만 교사나 공무원이 스스로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노동조합을 만들었듯이 스님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신도들을 위해 하는 염불이나 기도 등을 근로기준법상의 금품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로 볼 수도 있다. 아무튼 이번 일은 비록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포교나 수행에 대한 스님들의 사고나 견해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스님들의 의식변화를 대변해주는 또 하나의 케이스는 간화선사의 손상좌가 남방불교권의 나라에서 위빠사나를 배워 와서 가르치고 있는 경우다. 당사자는 신도들에게 적합하기 때문에 가르친다고 하지만 화두선과 위빠사나의 수행 과정과 목적을 고려해 볼 때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스스로가 소속되어 있는 곳이 선종을 표방하는 종단이고 문중의 모든 스님들이 간화선 수행자이면 해당 종단을 나가든가 아니면 적어도 해당 문중을 떠나고 난 다음에 위빠사나를 주창하는 것이 상식적인 처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해당 스님의 사고와 견해가 상식적인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두 가지 실례는 승단의 화합, 나아가 승가의 화합을 깨뜨리는 경우에 해당되지만 과연 수용될 수 없는 것인지, 수용될 경우 생기는 이점이 더 클 수는 없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스님들의 직위나 직책에 따라 적절한 임금을 지급하고 종단이나 사찰의 회계는 동일한 회계기준을 적용해 신도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현재의 폐단을 일소하고 승가의 화합을 강화시키는 방법일 수도 있다. 또, 위빠사나의 경우도 한국 종단들이 수용하는 것이 남방의 종단이 들어옴으로써 생기는 출가자(한국인 스님)과 재가자(한국인 불자)사이의 불협화음을 막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 불교의 특성상 스님들은 승가의 구심점이므로 사고나 견해가 급변하는 스님들이 출현한다는 것은 승가의 화합에 적신호가 들어왔다는 것을 말한다. 


과학의 도전
과학의 도전도 승가의 화합에 부담이 되고 있다. 흔히 과학이 불교를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하는데 최근 10여년 사이에 급격하게 발달한 뇌과학의 경우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다. 뇌과학자들은 두뇌의 신경세포들이 만들어낸 시냅스의 작용에 의해 우리의 마음과 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므로 마음이나 의식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나 육체와 정신의 배후에 불성이나 진여와 같은 본체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 등의 불교이론은 잘못된 주장이거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들 뇌신경학자들 가운데 불교신자를 자칭하는 사람들은 근본불교야말로 불설이지 대승은 비불설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극단주의자들은 대승경전을 모조리 불태워버려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렇게 과학에서 시작된 압박이 대승불교의 정수임을 자부하는 한국 승가에 작지 않은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타종교의 압력 
타종교의 압력은 승가의 화합을 해치는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개신교계 장로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공식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불교신자들에게 압력이 들어오고 있다. 개신교 행사가 단체장 명의로 개최되는가 하면 인사에서의 차별까지 염려해야 될 상황이 되었다. 이런 환경에 처한 불자들은 자신의 종교에 회의를 품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천주교계 사람들의 은근한 권유로 마음이 흔들리는 불자들이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본인은 불자이지만 천주교 신자인 자녀들의 권유로 인해 노년기나 임종 시에 천주교 신자로 개종하는 경우다. 신심이 약해서라고 비난하며 방치하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 많다. 개종은 개종을 부르고 개종자는 불교를 비난하는데 앞장서게 되므로 타종교가 불교에 가하는 압력은 승가의 화합을 깨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해결책은 수행력
출가자가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은 바로 수행이다. 이 부분은 아직도 출가자들이 “속인이 뭘 안다고…….”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재가자들 가운데 극소수의 사람들은 전문적인 수행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대학교수도 박사도 수행력을 갖춘 스님들 앞에서 속칭 ‘엎어지는’ 것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해당 부분이 참선이든 염불이든, 혹은 기도든 절(拜)이든 상관없이 특정 부분의 수행을 통해 일정한 경지에 오른 스님들은 자연스럽게 권위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평등과 다양성을 주장하는 재가자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수행력을 갖춘 스님들이 있는 곳에서는 해당 스님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결속력이 생겨나므로 그 지역 승가의 화합에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다. 지역 단위에서 화합이 잘 되면 전국단위에서 화합이 잘 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의 수평적 사회에서 승가의 화합정신은 수행력이 뒷받침 될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발문>
수행력을 갖춘 스님들이 있는 곳에서는 해당 스님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결속력이 생겨나므로 그 지역 승가의 화합에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다. 지역 단위에서 화합이 잘 되면 전국단위에서 화합이 잘 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의 수평적 사회에서 승가의 화합정신은 수행력이 뒷받침 될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