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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를 위한 불교적 대안

최 연
아시아문화연대 이사장


온 나라가 ‘공정’이란 화두로 요란하다.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집권 후반기를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일갈한 뒤 ‘공정사회’에 대한 논란이 큰 파장으로 온 나라를 덮치고 있다.
8.8개각 때 후보자들의 공정하지 못한 비도덕적이고 탈법적인 행태들이 만 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면서 결국은 후보자들이 도중 낙마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는데 대통령의 ‘공정사회’ 제안은 이러한 심각한 사태에 대한 무마용일 것이라는 관측들이 많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다음에 나타났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 차관 워크숍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김태호 씨의 국무총리 낙마와 유명환 전 장관의 사퇴에 대하여 일갈 하시기를 “보통 때 같으면 오래된 관습이라고 통과될 수 있는 문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공정사회를 기준으로 보면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이 말은 혹시나 ‘체질화된 불공정’을 ‘공정 강조기간’에나 문제되는 보통 때의 ‘관습’ 정도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국민적 정서와는 엄청난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이 한결같이 위장전입과 위장취업 그리고 탈세까지 일삼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은 관습 정도로 생각할 뿐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사실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준다.
대통령도 서울시장 시절에 아들과 딸을 자신의 빌딩을 관리하는 ‘건물 관리인’으로 허위등재한 후 8800만 원의 급여를 준 사실이 들어나, 대통령 후보 때 ‘탈세’와 ‘횡령’이 아닌가 하고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국민적인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은 못 먹고 못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짓이 아니라 관습적으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행해졌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대통령의 딸은 세계적인 명성의 줄리아드 음대 출신으로 ‘줄리아드 음대 출신의 건물 관리인’에게 월급이 지급되었다는데 국민 누가 이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일반 국민들은 위장전입 한번하면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물리던지 벌금형을 받기가 일쑤인데 저들에게는 실정법마저도 적용되지 않는 그저 관습일 뿐이다.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70.4%가 한국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대답했다고 하는데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불교적 대안은 없는가?


첫째는 인간의 불평등의 굴레인 카스트 제도를 전면 부인한 것과 같은 평등사상이다.
부처님께서 설파하신 온전한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에 있어서의 평등, 기회에 있어서의 평등 그리고 분배에 있어서의 평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런 노동 없이 불로소득만 챙기는 천민 자본가들과 10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저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 과목 당 100만 원의 과외를 받는 아이와 끼니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가 같은 울타리에서 함께 공부하는 사회,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법부의 판결이 내려지는 사회, 부자에게는 특혜가 주어지고 서민에게는 엄중함이 잣대가 되는 조세제도가 횡횡하는 사회는 분명 부처님이 이루시고자 하신 평등한 사회는 아닐 것이다.


둘째는 모든 구속과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사상이다.
물론 ‘자유’라는 것이 사회적인 기본질서를 망각한 일탈을 의미하지 않고 인간이 자주적으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보장받는 것을 말한다.
인간으로서 삶의 가치를 구현함에 있어서 불필요한 사회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말한다.
정부시책에 반하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형사처벌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인들을 퇴출시키고 권한도 없는 총리실에서 눈에 거슬린 정치인, 네티즌, 공무원 등을 불법으로 사찰하는 그런 사회는 분명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가 보장 받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셋째는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미물과 자연까지도 함께 어우러져 상생하며 살아가는 평화사상이다.
국민의 70% 이상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을 토건 카르텔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최근 밝혀졌듯이 크루즈 배를 띄워놓고 배안에 카지노장을 열어 도박을 하겠다고 아름다운 강들을 저리 파헤쳐 그 곳에서 밀려나는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강물에 기대어 살아가던 물고기를 비롯한 모든 생물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4대강 개발을 국민적 동의도 구하지 않고, 시비를 가릴 진지한 토론도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강행하는 것은 절대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으로는 볼 수가 없다.
나아가서 계속되는 말 바꾸기로 국민적 신뢰를 잃은 ‘천안함 사건’은 초기에 70%의 국민들이 북한의 소행으로 믿었으나 최근에는 70%가 믿을 수 없다고 하고 있고, 러시아가 좌초일 수 있다는 자체 조사보고서를 슬쩍 언론에 흘렸더니 초청받지도 않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급히 러시아를 방문하고, 미국 정보국 출신인 전직 주한미국대사 그래그는 통킹만 사건의 조작으로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운을 띠우며 천안함 사건을 한국에서의 전쟁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수단으로 삼지 말라며 공개토론까지 한국 측에 제의하였고, 야당의 증인 출석에 응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렇듯 반 평화적인 조건들을 작위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사회는 분명 평화가 보장받는 사회라고 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욕망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소욕지족의 사상이다.
모든 불행은 욕망으로부터 온다.
재화의 많고 적음이 정의의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는 그 구성원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화를 모으려 하고 이미 획득한 기득권을 계속 누리기 위해 또 다른 편법을 사용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욕망이 더 큰 욕망을 낳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은 적게 가지되 만족할 줄 아는 삶으로 극복될 수 있다.
많은 것들을 그대로 두어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로 두고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존재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갖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육, 의료, 복지 등은 개인의 재력과 관계없이 사회가 기본적으로 보장해 주는 그런 사회를 말한다.
무상 급식, 무상 교복, 무상 준비물을 통해 없는 집 아이들이 기죽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교육, 돈이 없어서 생명을 연장할 수 없는 참담함이 없는 의료체제, 소수자에게도 불편함이 없이 사회의 제반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그러한 사회가 진정한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