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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간 중국의 천재

공종원(언론인)


최근에 한 신문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지능지수가 280을 넘는 중국의 수학천재가 미국의 명문 MIT대학의 전체 장학금 제의도 뿌리치고 절로 들어가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미국 유학을 앞둔 류즈위(柳智宇)라는 이 청년은 베이징 근교 서산(西山)에 있는 룽취안스(龍泉寺)에 들어갔다는 것이 지난 10월 9일 중국신문들의 보도다.
한 천재 청년의 불가 귀의가 이렇게 중국 국내외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우선 그 청년이 보통 천재가 아니라는 점이 화제를 유발한 원인이었던 것 같다. 류즈위는 베이징대에 오기 전인 우한(武漢) 화중(華中)사범대학 제1부속고교 재학 중에 이미 천재로 널리 소문나 있었다. 2006년 제47회 수학올림피아드에서 만점을 받아 베이징대 수학과에 수시전형으로 입학한 바 있었다.
둘째는 그가 이미 소년시대부터 불교에 심취하여 불자로서의 수련을 계속해 왔다는 점이다. 류즈위는 대학시절에 교내불교 동아리인 찬쉐서(禪學社)에 참여하여 활동했고 독서클럽인 경두서(耕讀社) 회장을 맡아 불교서적에 심취했었다.
때문에 한 천재청년이 일찌감치 불가에 귀의해 수행생활에 매진하려는 결정은 어떤 면에서 매우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류즈위의 불가귀의는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명문대학에 들어가 공부한 사람이 외국 유학을 거쳐 더욱 대성하여 사회에 공헌하고 인류문화 발전에 공헌해야할 터인데, 그런 사회적 책임의식을 전혀 갖지 않고 국가 민족의 기대를 무시한 채 사회를 등지고 불가에 귀의하여 스님이 되려한다는 비난의 소리가 빠질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일부에서는 그가 따 놓은 당상처럼 보이는 사회적 성공이나 돈과 명예는 물론 가정과 직장의 속박까지 모두 과감히 던져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 점에서 그의 탁월한 안목과 용기에 부러움을 표하기도 하다.
그런 논의는 모두 당연하고 또 가치 있는 논의이기도 하다. 우리는 특히 외국인의 입장에서 적잖게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천재가 다른 분야에 진출하지 않고 불교에 심취하여 불가에 귀의한 것은 앞으로 중국불교 발전에 적잖게 공헌하리라는 예상도 하고 한편으로 우리 불교의 현실을 돌아보면서 그 부러움이 더 커지기도 한다.     
물론 중국불교는 일제하와 중국공산화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문화대혁명 기간에 중국불교는 거의 인멸의 상황에 직면한 바도 있었다. 그래서 중국의 선맥은 모두 단절된 것이나 진배없다는 소리까지 들리곤 했다. 개혁 개방이 이루어지고 중국의 약진이 눈부신 오늘에도 중국불교의 수복과 발전은 요원하다는 비하와 비관까지 내뱉는 이들이 있다. 공산당의 지배가 그만큼 불교의 자유로운 신행과 연구를 방해하고 있다는 비관이다. 중국이 비록 문화재보호와 관광수입 확충이라는 차원에서 수많은 불사를 벌이고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불교유적 복원에 나서고 있지만, 이미 붕괴된 불교의 내실있는 발전은 쉬운 것이 아니라는 비아냥 조차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중국불교는 자체의 힘을 축적하고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조짐도 보인다. 불교 조직과 사찰경영이 모두 당의 지배아래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과 무관하게 절 안에서 또 불교인 가운데서 불교를 연구하고 충실히 하려는 내밀한 노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운 대사라든가 조박초 거사 같은 이들이 중국불교의 정신을 유지 보전하려던 노력들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때문에 필자는 중국의 청년 천재가 불교에 귀의해 불문에 들어온 류즈위 같은 경우는 중국과 중국불교에 심대한 자극이 되리라고 본다.
불문에 들어가 수련하는 이가 수가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아둔하고 무지한 사람은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해치며 불문의 이미지만 나쁘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최고의 청년 천재가 불문에 귀의한 것은 사회적으로 불교의 이미지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국불교 자체에도 자극을 주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천재는 수행과 공부를 통해 불지를 개발하게 되면 불교발전에도 크게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국 중국불교의 발전을 예상케 하며 중국국민의 문화와 심성에도 크게 도움을 줄 것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 불교도 이제는 인재발굴과 불조의 가르침을 바로 세우려는 건실한 노력에 대한 반성이 따라야겠다. 스님들이 공부하지 않고 권력과 돈과 명예만을 추구하여 영일이 없고 심지어 부처님의 진리가 아닌 세속 이데올로기에 경도하여 사회를 혼란시키는 대중운동에만 부화뇌동하는 결과, 불자들과 사회의 신뢰를 잃고 이미지만 상하게 하는 허깨비 놀음만으로 날을 보낸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천재가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않고 기꺼이 불문에 귀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도록 불가의 자정운동도 필요할 때다.